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어느 명절 전날이었다. 추석 연휴를 앞둔 휴일에 영업이 거의 끝나가는 저녁이었다.
여느 때처럼 '주인아저씨'가 우리 가게에 왔다. 카페 주인은 내가 맞지만 나와 남편은 ‘건물 주인’아저씨를 ‘주인아저씨'라고 그렇게 불렀다.
아저씨는 이 건물 꼭대기 층에 살고 계셨고 커피를 좋아하셨고 우리 가게를 정말 좋아해 주셨다.
건물 주인이자 우리 카페 찐 단골손님이었던 주인아저씨는 오실 때마다 항상 부드럽고 젠틀한 태도로 나를 대해 주셨다. 따뜻한 말씀도 모자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가게 걱정을 늘 해주시는 분이셨다.
그날 저녁도 아저씨께서 일을 마치고 윗니가 드러나는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혼자 오셔서 두 잔을 주문하신 아저씨는 늘 드시던 아메리카노 한 잔과 따뜻한 청귤차 한 잔을 주문하셨다.
‘어디 가져가시는가 보다'하고 따뜻한 커피와 수제청귤차를 정성껏 만들어서 건네드렸다. 그런데 아저씨는 ‘잠깐만요~’ 하시더니 청귤차 하나를 먼저 받아들고 가게 건너편 골목 쓰레기장 앞으로 성큼성큼걸어가시는 것이었다.
나는 무심히 가게 통유리창 너머로 아저씨를 보고 있었다. 환한 얼굴을 하신 주인아저씨는 가게 건너편 골목의쓰레기장 앞에서 공공근로를 하시는 어르신에게 다가가시더니 직접 구입하신 따뜻한 청귤차를 어르신께 건네고 인사를 나누고 가시는 것이 아닌가.
때는 명절이었다. 쓰레기장은 쓰레기로 가득했고, 늘 그랬듯 음식물쓰레기와 일반쓰레기가 뒤섞인 냄새들로 지독했을 터인데 .. 그날도 어르신은 이곳에서 몇 시간이고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을 하시고 계셨다.
매일매일 가게 통유리창으로 건너편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가까이 있는 내가 물 한잔 건네지 못했었구나. 나는 부끄러워졌다.
두 분의 대화를 듣지는 못했지만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그 잠깐의 순간에 주인아저씨는 내가 본 어떤 얼굴보다도 더 환하게 웃고 계셨고, 쓰레기장에서 일을 하시던 어르신도 정말 환하게 웃고 계셨다.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찰나의 순간을 목격한 나는 정말이지 우리 주인아저씨를 존경하게 되었다. 명절 전날 그 어르신에게 그 따스한 차 한 잔이 어떤 의미였을까? 잠시 허리를 펴고 환하게 웃으시던 어르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주위에 따뜻한 순간을 나눌 수 있는 주인아저씨를 생각하니 그런 ‘어른’이 우리 곁에 있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저씨의 그 따뜻함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
물빛 이름으로 [나의 작은 카페 이야기]를 써나가기 시작한 지가 얼마 전 같은데…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그동안 카페 운영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활동을 병행하느라 이 매거진을 완성하지 못했었어요.
지금은 저의 소중했던 카페를 폐업한 지 1년이 지났네요. 지금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 않지만 삼십 대 초-중반의 그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따뜻했던 어른, 주인아저씨 그리고 주인아주머니가 늘 생각이 납니다.
아저씨의 친절과 배려 그리고 진심어린 말과 응원 속에서 저는 삼십 대 초, 중반의 시기를 잘 견디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같은 건물에 살고 계신다는 생각만으로도 일하면서 정말 든든하게 지냈는데, 막상 가게를 떠나올 때는 눈물이 날 것 같아 편지를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아저씨처럼 아주머니처럼 넉넉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음 한켠에 고마움으로 가득 한 아저씨에 대해 언젠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열 번째 글로 매거진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하고 있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또 다른 매거진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