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쉼, 쉼과 일의 사이에서
1인 카페를 열고나서 직장생활을 할 때와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다른 사람이나 동료 없이 오로지 ‘혼자’ 일을 한다는 점과 ‘주말’이 없다는 점이다.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정해진 출근 시간에 맞추어 출근을 하면 직장 동료들과 상사와 함께 종일 있었고, 점심시간에도 함께 식사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손님이 없는 날이면 하루 종일 몇 마디 말도 못 하고 일만 하다가 집에 오는 날도 있었고 당연했던 주말도 없어졌다. 나는 인력을 채용할 여력도 없는 작은 카페 사장이기에 주 6일은 문을 열고 월요일 하루만 쉬기로 결정했다.
카페에서 혼자 일을 하고부터는 혼자 가게 문을 열고 혼자 일을 하는 게 처음엔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에서 동료나 상사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어졌고, 간혹 “남자친구는 있어요? 결혼은 언제 해요? 애 낳을 거면 빨리 낳아야지.”등의 지극히 무례한 질문에 화를 참으며 답을 할 필요도 없고, 조퇴나 연가를 쓰기 위해 상사에게 나의 개인적인 사정을 이야기하고 겨우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어졌다. 매일 먹어야 하는 식사 시간에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며 급하게 밥을 구겨 넣을 필요도 없어지니 이런 점에선 내 가게에서 혼자 일하는 것이 훨씬 좋았다. 성향상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스타일이라 비록 육체는 힘들어도 정신적으로는 조직생활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없어 속이 시원했다.
하지만 매일 작은 카페 안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직장을 다닐 때완 또 다른 차원의 고단함이 분명 존재했다. 노동 시간은 1인 가게에서 일할 때가 훨씬 많았는데도 버는 돈은 직장생활에서 벌던 돈의 절반 가량이었고, 그렇게라도 벌면 다행이었다. 어떤 일이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만 있을 수 있으랴.
하루 종일 가게 안에 있다는 것, 내 주말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립감이나 답답함을 느끼게 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사무실 안에 공적인 공간이 많이 있었고, 퇴근 시간이 있었고, 주말이 있었기 때문에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쉴 공간이라는 게 존재했었나 보다.
그래서 쉬는 날이 다가오면 그 하루를 ‘어떻게 하면 최고의 하루로 만들까.’에 많은 신경을 썼다. 일주일에 6일을 혼자 작은 공간-특히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버티고 하루를 쉬려니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
‘그동안 못 쉬었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쉬어야 해!’ 또는 ‘하루밖에 못 쉬니까 하루 동안에 모든 피로를 풀어야 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월요일에 느끼는 바깥바람은 차원이 달랐다!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바람을 쐬러 가면 마치 자가격리를 하다가 6개월 만에 외출을 한 사람처럼 가슴이 뻥 뚫렸다. 살면서 처음 느끼는 그런 개방감이었다.
월요일의 바람은 내게 특별했고, 내 일상에서 꼭 필요한 바람이었다. 똑같이 보던 산과 들과 차창 밖 풍경도 월요일에 보는 차창 밖 풍경은 달랐다. 아마 내 마음의 크기만큼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가게로 해가 잘 들어오지 않아서 그런지 유독 쉬는 날 밖에 나와 햇살을 밭는 시간이 참 좋았다. 기분 좋은 햇살을 받으며 강가를 걷거나 서점에 가거나 좋은 카페를 들렀다. 혼자이기도 했고, 남편과 함께이기도, 엄마와 함께이기도 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 내 마음에 들어왔고 이전에는 몰랐던 커피 맛이 느껴졌다. 커피 업무를 하니 아이러니하게도 가끔은 다른 사람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는 일이 즐거워졌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이 커피는 이래서 맛이 없고, 나는 이런 취향의 커피를 좋아하고 하는데에 집중을 했다면 지금은 커피 대접을 하는 일을 하다 대접을 받으니 마냥 행복했다. 그래서 쉬는 날은 일터가 아니라 가보고 싶은 카페를 찾아 시야를 넓히는 시간도 가졌다.
내게 너무 당연했던 주 2일의 휴일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고, 일주일에 하루를 쉬게 되니 쉼의 소중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어떤 사람도 쉬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 하루일지라도 ‘쉼’과 ‘충전’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든 사람은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즐길 권리가 있다.
-세계 인권선언 제24조
어느 서점에 붙어 있던 글귀이다. 세계 인권선언 제24조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던데. 그만큼 사람들이 권리로서 휴식과 여가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인 ‘쉼’을 우리는 너무 죄악시하거나 게으르게 보는 풍토가 만연해있지 않나. 하루를 쉬는 내게 왜 가게를 닫느냐고 물어봤던 어르신들의 질문이 야속하게 느껴지면서 이런 풍토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쉬는 날을 꼭 필요로 한다. 쉬는 날 특별한 공간이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 등 어딘가로 떠나 그곳에서 마음껏 바람과 햇살을 맞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열린 공간에서 좋은 대화를 하고 신나게 놀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지쳤던 마음이 치유되곤 한다.
만약 물리적인 휴일이 주는 쉼이 아니어도 마음의 여유가 단 하루도 없다면, 즉 마음의 쉼이 없다면 그 마음 또한 답답한 안개 속을 걷는 것이리라.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쉬어야 한다.
우리는 늘 마음도 소비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내일 또 마음을 소비하기 위해서는 어떤 충전을 통해서라도 마음을 행복과 여유로 가득 채워야 한다. 그래야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다시 일할 기운을 얻는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고 계속 소비되는 일을 한다면 어느샌가 병들어가는 나를 발견하고 나는 결국 소진되어버린다. 그리고 소진된 나는 다시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소진이 되기 전에 알아차리고 나를 잘 돌봐야 한다.
내게 주어진 휴일에 세상에서 가장 잘 쉬는 방법은 뭘까. 아무리 고민해봐도 쉬는 것에 익숙하지 않는 나는 그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고민은 반대로 내가 일을 하는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과 같다고 느꼈다. 그저 반복되는 일과 쉼 사이에서, 밸런스를 잘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모든 날에 너무도 지치지 않도록,
결국 쉼과 일, 일과 쉼은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연속선 상에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잘 쉬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지고 내 스스로가 조금 더 유연하고, 조금 더 편안하게 나의 휴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제대로 쉴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을 내던지지 않고 돌보아주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모두가 잘 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