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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봄 Dec 28. 2021

수평적 조직은 영어 이름이 아닌 '태도'에서 드러난다.

영어 이름 쓰면 수평적 조직문화인 가요?

스타트업 채용공고를 보다 보면, 이런 문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 수평적 조직문화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영어 닉네임을 사용해요.


글쎄, 과연 영어 이름을 쓴다고 수평적 조직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수평적 조직문화는 영어 이름이 아니라 ‘태도’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회사가 ‘수평적 조직문화’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신입에게도 의견을 묻고 존중하는 태도를 취한다.


    우리 회사는 연차가 낮거나 신입이라고 해서 무조건 탑다운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하지 않는다. 신입이라 할지라도, 각자가 주체적으로 업무를 맡아 진행하며 각 담당자들의 의견을 묻고 존중한다.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사실 나 역시 이런 분위기의 회사는 처음 겪어봤기 때문에 처음엔 많이 낯설었다. 내가 신입시절에는 대부분 주어진 일 중 아주 부분적이고 반복적인 일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느낀 것은 ‘신입이라 서툰 점은 감안하되,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일할 수 있게 존중해주자’는 애티튜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입이라고 무조건 그들의 의견이나 업무 방식까지 신입으로 단정 짓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2. 가이드라인은 주되, 세부 디테일은 담당자의 의견을 존중한다.


    단순 신입사원뿐만 아니라 회사에 새로 입사한 사람이 생기면 이 회사의 방향성이나 가치관 등에 대해 낯설고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또한, 신규 입사자가 아니더라도 스타트업의 경우 상황에 따라 빠르게 우선순위기 바뀔 수 있으니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은 전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해당 직무의 담당자로 배정되었기에, 가급적 담당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

    당연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금껏 담당자의 의견보다는 상사의 의견을 중시하던 회사에 다녀왔던 나로서는 새삼 놀라운 문화였다.


     3. 꼭 필요하지 않은 회의나 교육에는 의사를 묻는다.

    '회의는 최소화로, 간단한 건 자리에서 조율하고 끝내요.' 보통 회의는 어떤 식으로 하냐는 나의 질문에 돌아온 답이다. 불필요한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나 간단하게 끝날 일인데 회의실까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쏟는 것이 아깝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불필요한 시간들이 쌓여서 실무 시간을 방해하고, 그래서 야근을 하게 된다고.

    그래서 우리 회사는 1시간이 넘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회의실을 가지 않고 자리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회의를 할 때 꼭 필요한 구성원들로만 참여시키며, 애매한 경우에는 본인에게 선택권을 준다. 무작정 회의에 소환되어 도대체 내가 왜 참여했는지도 모르겠는 미팅들 때문에 야근만 늘어났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니 얼마나 효율적인 방식인지 정말 와닿았다.


     4. 정보의 격차를 최소화한다.   

 거의 모든 정보를 모두에게 공유한다. 특정 부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면 인턴부터 C레벨까지 모두에게 공유를 해서 일부 직원들만 아는 일은 없다. 그래서 지금 회사의 상황이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지 등에 대해 모두가 동일하게 알고 있기에 리소스가 불필요하게 쓰는 일이 없다.


     5. 회식 대신 티타임을 가진다.

    우리 회사는 점심시간에 다 같이 티타임을 가지는데,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C레벨부터 인턴까지 다 같이 둘러앉아 특정한 주제 없이 대화를 나눈다. 개인적인 이야기, 취미에 관한 이야기, 업무에 관한 이야기. 이런 시간들을 가지다 보면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성향도 파악이 되고 자연스레 친밀감도 쌓여 업무 요청을 하기에도 편하다. 그리고 수다를 떨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 직장 선후배로서의 고민도 자연스럽게 털어놓을 수 있다. 길쭉한 회의실 책상에서 딱딱하게 앉아있거나 술자리가 아닌, 원형 테이블에서 편하게 앉아 다 같이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웃다 보면 리프레쉬된 정신으로 오후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내가 서두에 우리 회사가 수평적 조직문화에 '가깝다'라고 적은 이유는, 완벽한 수평적 조직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결국 누군가가 의사결정을 하고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사람이 있어야 원활히 굴러가고, 그러려면 확실한 의사결정권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소통은 수평적일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가 최종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하대하거나 아랫사람처럼 대해도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나 역시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 영어 이름을 쓰겠다는 회사도 다녀봤다. 하지만 진짜 수평적 조직문화는 호칭만 바꾼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는 수평적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회사보단 '진짜 수평적으로 대해주는' 회사가 더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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