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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하루 Dec 08. 2019

장거리 끝, 다시 시작

2년 3개월 간의 장거리 부부 생활을 마치며

집에 다시 돌아온 지 한 달이 좀 지났다. 두 집 살림이었던 짐들이 이제 제법 한 공간에서 다시 어우러졌다. 2017년 여름부터 2019년 가을까지, 우리 부부는 일본의 끝과 끝에서 떨어져 지내왔다. 2년 3개월 간의 장거리 부부 생활을 마치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6년의 긴 연애 끝에 결혼한 우리는 여느 부부처럼 평범한 신혼 생활을 보냈다. 다만 결혼을 계기로 첫 직장을 관두고 홋카이도로 이주해야 했던 나는 신혼 생활 내내 진로를 고민했다. 결혼 2주년이 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전 직장에서 진로 고민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런데 장소는 규슈. 일본의 북쪽과 남쪽으로 정반대 방향에 있어 비행기로 3시간 가까이 걸린다. 우리가 지금의 결혼 생활을 그대로 유지한 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남편을 데리고 가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불가능했다. 남편 또한 오랜 준비를 걸쳐 이직했고, 이제 막 새내기 딱지를 떼고 직장 3년 차에 접어들었다. 남편은 좋은 직장을 관둘 수 없었다. 게다가 연세 많은 부모님만 두고 멀리 간다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남편의 입장, 상황 모두 이해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뜻을 굽히진 못했다. 결국 남편의 반대와 나의 설득을 반복하다가 '2년'이란 기간을 정하고 장거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가 따로 지낸다고 하자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앞에서는 요즘 같은 시대엔 다양한 부부들이 있다고 위로해줬지만 뒤에서는 사이 좋은데 굳이 남편 두고 멀리까지 왔을 리가 없다고 쑥덕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맘 속으로 괜한 걱정 마시라고 외쳤다. 왜냐하면 일말의 불안감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아주 조금이라도 그런 류의 걱정이나 불안감이 있었다면 애초부터 장거리 생활은 시작도 못했을 거다. 내가 이렇게 자신만만했던 건 장거리 생활에 '면역력'이 있기 때문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우린 결혼하기까지 5년 가까이 장거리 연애를 했다. 한마디로 '장거리'에는 도가 텄다. 너무 힘든 장거리 연애였지만 그럼에도 굳건히 5년을 지켜왔기 때문에 한 번 할 거 두 번이랴 못 하겠냐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장거리 생활을 선택했다. 장거리 생활이 왜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잘 견뎌낼 자신감이 있었다. 장거리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 불안감, 걱정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좀 더 심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 3개월이 지났다. 우리는 잘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그래도 쉽지만은 않았다. 퇴근 후에는 늘 스카이프를 켜 둔 채 생활했고, 한 두 달에 한 번씩 규슈와 홋카이도를 오갔다. 갑자기 훌쩍 남편이 보고 싶어서 거금을 하늘에 뿌리며 홋카이도로 날아간 적도 있고, 규슈로 돌아오기 전날 고열로 몸져누운 남편을 혼자 두고 오는 게 너무 미안해서 비행기 안에서 통곡한 적도 있다. 태풍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결항되었을 때는 하루 더 같이 있을 수 있다며 하늘에 감사해하기도 했다. 그러다 점점 장거리 생활에 지쳐왔을 즈음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흘러있었고 다시 남편이 있는 홋카이도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아무도 없는 컴컴한 집으로 퇴근할 때면 나는 왜 굳이 사서 고생하고 있을까, 매일 같이 자문하기도 했다. 인생 뭐라고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알콩달콩 지내면 그게 행복이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자괴감에 빠지는 날도 셀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쉽지 않은 결정을 하고 행동에 옮긴 후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와 같은 선택을 했거나 혹은 이제 막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직장에는 내가 입사하고 나서 차례로 두 명이나 나처럼 남편과 떨어져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이곳으로 온 동년배 친구들이 있었다. 또, 나처럼 일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국제결혼을 한 선배도 남편을 두고 후쿠오카로 오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다시 남편이 있는 삿포로로 돌아온 이 시점에 반대로 이제부터 남편과 떨어져서 장거리 생활을 시작하는 친구도 있다. 


부부가 떨어져서 생활한다는 건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당사자들이 느끼는 고독함, 외로움, 불안, 걱정 같은 감정적인 피로는 물론이고 집세도 두 배, 생활비도 두 배, 왔다 갔다 할 교통비 등등 금전적인 부담도 크다. 게다가 "그래도 부부는 떨어져 살면 안되지", "여자가 결혼도 했는데 왜 굳이 남편 두고?" 등등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때로는 감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남들과 다른 길을 주저하지 않고 그들만의 보폭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려는 모습을 감히 스스로 위로하고 싶고 또 그런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다.  


결혼까지 했는데 남편보다 일을 더 중시하는 '욕심 많고 이기적인' 아내가 아니라, 내가 나다움을 추구함으로써 우리가 좀 더 우리다운 부부의 길을 걷고자 끊임없이 모색하는 그런 '용감한' 아내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우리의 지난 2년 3개월의 시간을 돌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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