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떤 하루 May 16. 2019

확신과 의심 사이

나는 주로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하거나, 외부 번역문의 한국어 교정을 본다. 내가 한일 번역보다 일한 번역을 잘하거나 교정을 잘 봐서가 아니라, 그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인이니까 한국어로 번역하고, 한국어 보는 거쯤이야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사실 순전히 '번역'만 하는 것과 '교정'을 보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특히나 외부 번역을 교정 보는 일은 말 그대로 '교정'만 보면 되지만, 사내 번역가인지라 내가 '번역'한 내 글을 '교정'봐야 하는 경우가 가장 고민스럽다. 일반 원고든 번역문이든 글에는 쓴 사람의 언어 습관이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되도록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칠수록 자연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정말 질 높은 성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중 체크가 필수지만, 사내 번역처럼 시간과 인원이 제한된 환경 속에서는 번역가가 내 글의 교정까지 봐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번역은 원문의 의미와 문맥,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여 가장 적합한 도착어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단어가 더 자연스러울까, 아니야, 이 표현이 더 들어맞는 거 같아'. 어떤 단어, 어떤 표현이 더 정확하고 적합한지 여러 안을 들면서 최종적인 선택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확신'이 서지 않으면 만족스러운 번역을 완성할 수 없다. 매 순간 백 프로의 확신을 가지고 번역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가장 근사치에 있는 '확신'을 가지고 번역을 해야 한다.


반면, 교정은 '의심'의 눈으로 글을 봐야 한다. '이 단어가 그 뜻이 맞나?', '이게 맞춤법이 제대로 된 건가?', '띄어쓰기는?' 등등  나의 척도가 아니라 최대한 객관적인 눈으로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라는 말이 아니다. 의심의 눈으로 보되, 문제가 없으면 지나칠 줄도 알아야 한다. 번역가마다 실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번역가가 본인이 가진 기량을 최대한 발휘해서 번역했다고 믿고 싶기 때문에 오탈자나 오역, 번역투가 아닌 이상, 한 사람의 노력으로 완성된 번역문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번역의 완성에는 번역가의 '확신'이 있어야 하고, 교정의 기본에는 교정자의 '의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번역한 글을 내가 교정 봐야 한다는 것은 즉, 방금까지 머리 쥐어뜯으면서 겨우 '확신'이 선 번역을 다시 '의심'의 눈으로 뒤집어야 한다는 말이다. 가끔은 고통스럽기까지 한 과정인데, 나는 주로 시간을 좀 두고 번역문을 묻혀뒀다가 다음날 신선한 눈으로 다시 들여다보면서 다듬는다. 이리 굴려도 저리 삶아도 답이 안 나올 때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구한다.


내가 번역하고 다듬은 문장들은 결과적으로 한국어로 완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내 문장들과 씨름하다 보면 매번 어떻게 하면 한국어를 좀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다다른다. 한동안은 그 갈증을 조금이라도 채워보려고 한국어 관련 책들을 무턱대고 읽기 시작했다. 도움이 정말 많이 되고 있다. 나아가 이제는 내 언어 습관을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글도 많이 읽어야 하고 내 글이 읽히는 것에도 두려워하지 않아야겠다. 


좀 더 좋은 번역을 하고 싶은 번역가의 고군분투는 현재 진행 중.

작가의 이전글 생각하는 번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