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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Jun 26. 2024

학교 부적응학생도, FM이 될 수 있어

삶의 방황과 깨달음  


달의 뒷면 : 그림자 속 은밀한, 삶의 노출증
[ 삶의 방황과 깨달음 ]


또야? 학교 얘기로 더글로리? 라며 지겨워할 수도 있을만큼 많이 소비된 드라마이지만,

친숙한 공간이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보여준, 대체불가능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내 삶 속에서 학교라는 공간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과거의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 속 청소년으로 학교라는 공간을 끔찍하게 만드는데 어느정도는 일조하는 학생중 한명이었고,  현재는 14년차의 윤리교사가 되어 학생들의 학교 생활이 더글로리화(?)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해 학교폭력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학교현장에 근무하다보면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는 실제 상황에 도리어 미치지 못하는 수준일 때도 더 많다.


같은 이름, 같은 공간 - 다른 느낌, 달라보이는 공간

이 모든것을 만드는 근본은, 마음과 행동을 표현해내는 '말' 그리고 그 말을 담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철학을 공부하다보면 윤회 사상이 나온다.




 윤회는 인간이 죽어도 그 업에 따라 육도의 세상에서 생사를 거듭한다는 불교교리이다. 여섯 가지 세상은 가장 고통이 심한 지옥도, 굶주림의 고통이 심한 아귀도, 짐승과 새·고시·벌레·뱀들이 사는 축생도, 노여움이 가득한 아수라도, 인간이 사는 인도, 행복이 두루 갖추어진 천도 등이다. 인간은 현세에서 저지른 업에 따라 죽은 뒤에 다시 여섯 세계 중 한 곳에 태어나 내세를 누리며, 그 내세에 사는 동안 저지른 업에 따라 내세에 태어나는 윤회를 계속한다. 윤회는 열반과 극락 왕생을 통해서만 멈추어진다. 윤회설은 사람들의 현세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내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무엇인가 느끼고, 변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말과 글,

그리고 내가 저지른 업과, 그를 만회하고 거꾸로 학생들에게 내가 받은 이상을 돌려주기 위한 말과 글.


삶과 죽음을 통한 윤회는 아니지만, 새로운 사고 방식으로 다른 사람으로서 살수 있었던 자체가

한 인간의 '윤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의 차가운 감정을 깰 수 있었던 누군가의 '말'

엇나가는 학생들의 차가운 감정을 깨우기 위해 노력했던, 교사가 된 이후의 '말'


다른 이들도 내가 듣고, 읽고, 보았던 말, 추천받았던 글을 통해 위로 받고, 서로를 살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평범,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


“누나, 누나는 왜 굳이 평범해지려고 그래? 평범해지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평범한 사람은 하지 않아. 누나의 지금 모습도 충분해. 꼭 남들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비슷하게 살아야 할까?”


대학교 시절 철학 수업에 관심이 있는 후배와

사람들의 생각, 삶의 태도 등을 주제로 대화를 많이 나눴다.


자기 중심성이 다분한 질풍노도의 시기도 지났는데,

왜 스스로 특별한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평범해지고 싶었는지 의문이다.


내가 윤리교육과를 오게 된 이유, 교사를 하게 된 이유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특히 나를 위한 직업 선택이기도 했다. 외로움에 떠밀려 방황했다는 허울 좋은 핑계 속에서 나를 도와줬던 좋은 사람들, 무너졌을 때 나를 일어날 수 있게 한 많은 책의 문장들. 그것들에 보답하고 싶었다.




추운 겨울, 15살.

심장에 쇳덩이가 내려앉는 것 같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혈관 속에는 쇳가루가 지나 다니면서 내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싫었다. 될대로 되라고 하고 싶었다.

모든 것이 지쳤다. 나한테 웃는 낯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조차 꼴 보기 싫었다.


슬리퍼를 끌고 학교에 갔다.

매일 학교에 같이 가는 동부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 벨을 누르고, 같이 언덕 하나를 넘어 걸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기억나지 않을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누며 천천히.


 멀리서 흘긋 보니 너무 여유롭게 왔는지 정문은 닫혀있고, 그 앞에는 학생부 선생님, 후문에 도 학생부 선생님이 매를 들고 지키고 서 있었다. 매가 아직도 통용되던 과거의 학창 시절이었다.


아침에 지각하고 학생부 체육 샘한테 맞아서 손이 부어올랐다고 욕하던 다른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혼나고 맞는 것보다는 생각이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더 많이 지각하거나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을 택했다. 아예 수업이 시작할 시간까지 학교 뒤 컨테이너 박스 뒤 혹은  학교 교사들의 시선 밖 사각지대몰려 쓸데없는 이야기들로 떠들면서 숨어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중에 친구의 피어싱이 눈에 거슬렸다. 어차피 이 사각지대에 피어나는 담배연기 때문에 눈이 따가워서 거슬렸는지도 모른다.


1교시가 시작되면 선생님들도 대부분 들어가기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가면 그만이었다.

언젠가는 비도 왔다.

우산을 쓰면 눈에 띌 거 같아서 비를 맞으면서 친구들과 떠들며 기다리기도 했다.


그렇게 규칙 밖에서 규칙을 무시하며 지낼 때, 그나마 숨 쉴 수 있었다.


가정의 어둡고 힘든 분위기,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우리집 대문을 부술 듯 쿵쿵거리며 욕을 해대는 사채업자들과, 엄마에 대한 연민,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무엇도 할 수 없는 것만 같은 무력감, 내가 가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슬픔과 답답함.


경매를 붙이기 위해 그나마 값나가는 사물들에는 모두 스티커가 붙었다.

빨간 딱지는 집안 곳곳에서 나를 노려본다.


그까짓 거 스티커일 뿐 나를 해칠 수 없음에도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나의 심장을 비집고 비수를 꽂는다.


가끔, 겪지 않은 사람들 혹은 겪었어도 좀 더 강인한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더 바르게 살아야 되는거 아니냐, 학교 안이 그나마 안전하다.


하지만 내 목을 비틀어오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촛불을 켜는 일보다는 어둠에 잠식당하는 편이 더 쉬운 편이며, 더 편하다고 오해하기 십상이다.


학군이 좋지 않았다.

화장실에는 담배 연기 때문에 체육복을 갈아입는 친구들 눈과 목은 매번 따갑고, 복도에서 일진 친구들이 돈을 걷고, 약한 애들은 창문 뒤에서 대걸레로 맞고 있었다.


건방지게 생각했었다.어차피 교사로서 진정성 있게 일도 안하고, ‘척’만 할 뿐인데 내가 어른 같지 않은 어른에게 대답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넌 왜 네 맘대로 학교에 안나오냐? 너가 공부 좀 한다고 건방지게 구는데, 컨닝한거 아니야?

맨날 자면서 무슨 공부야? 싸가지도 없네- 대답 안해? ”


나에 대해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아는 척, 담임 선생님이 떠드는 얼굴이 역겨웠다.


학교에 거의 매번 늦었고, 도착한 이후에도 점심시간과 쉬는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에 자고 있었다. 어차피 깨워도 일어날것 같지 않았는지 어떤 선생님도 날 깨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급식 줄은 설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늦게 가도 애들이 우리 그룹 친구들에게 비켜주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는 내 마음대로 투명인간 취급 하기도 했다.


엉망진창인 삶.

마음이 엉망진창이라 삶까지 비슷하게 만들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분노에 잠식된다.



 달의 앞면  
[ 삶의 방황과 깨달음 : 나를 잡아준 사람들과 말 ]


다른 환경에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나는 사는 지역이 아닌 곳의 선지원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달라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기대와는 달리, 하루종일 잠만 자고, 놀러만 다녔던 중학교 시절이 부메랑처럼 내 성적으로 돌아왔었다.


전교 300명쯤 되는 곳에서 200등 이하로 떨어졌다.


우선은, 나 스스로도 나 자신을 믿지 못했던 것 같다.

나름대로 조금씩 변화하기는 했지만 아직 미묘한 불안과 반항심이 남아있었다.


고3이 되었다.

고3때 담임선생님은 특이하게도 학생 상담을 학교에서 하는 것도 모자라서 매일 순번대로 전화상담까지 하셨다. 처음에는 난생 처음 받아보는 지나친 관심에 부담스럽고 짜증나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지켜보면서 나라는 사람을 진심으로 '믿는다'는 느낌을 주는 담임 선생님에게  점점 그동안 굳게 닫혔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노량진 단과 학원을 가기 위해 철컹거리는 지하철 소리를 들으며 서있었다.


'누구는 300만원짜리 족집게 과외를 한다더라, 누구는 종합학원에 다닌다더라, 누구는....'


머릿속에서 애들에게 들은 잡담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학교를 멀리 지원한 나는 첫 차를 타야 고등학교에 겨우 지각하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는데

우리 엄마는 그 시각보다 일찍 나가서 청소를 하셨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럴 수록 내가 정신차려야지'라고 하면서 남들보다 열심히 해야 옳은건데.  

자꾸만 다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학원에 가지않고 어딘가를 정처없이 걷기만 하고 싶었다.

마음이 답답했고,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지쳐 포기하고 싶었다.

아무도 내가 전교 200등 이하인 상태에서 무엇이 되리라 기대하지 않는것만 같았고,

부모님조차도 날 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가지말까-라고 되뇌이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어, 그래. 쌤이야! 지금 시간에 학원 간다고 했었지? 잘 가고 있어? 힘들지?"

"네. 지금 가려고 지하철 타려해요. 뭐가 힘들어요, 괜찮아요."


선생님은 가벼운 농담을 건네면서 잘할 수 있다고, 똑똑해보이니 내신이든 수능이든 훨씬 더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조금 더 힘내라고. 항상 너가 잘할 거라 믿고 있다고 말해주셨다.


마음의 힘을 얻으면서 점점 학교에서의 나는 변해갔다.

1교시에서 7교시까지 모든 과목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집중력을 다했고,

쉬는시간과 아침 등교 시간 등 모든 자투리 시간은 무엇인가를 외우기 위해 사용했다.

전심을 다해 글을 읽고, 이해하고 또 이해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교과선생님들께 피드백을 받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기에 모든 교과 선생님들도 이전과는 나를 다르게 대하기 시작했다.


'진심은 언젠가 통하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마지막 만남 때 해주신,

오랜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고 내 마음에  남겨져 있는 말이다.

내가 포기하지않고 끝까지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고, 끝까지 무엇인가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해준 말.


흔한 말일 수 있지만, 진심을 담은 흔한 말은, 마음 위에서 흔하지 않은 무게감을 더한다.


수많은 눈물과 찌든 감정들이 지나가고, 결국 전교 200등 이하에서 전교 50등, 몇몇 교과목들은 전교 10등 내외로 우상향, 학급에서 수능1등, 의외의(?) 한국교원대 합격으로 내가 담임선생님에게 지속적으로 받은 '말의 힘'은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다른 지원과이긴 하지만 당시 전교 5등이던 친구도 운이 좋지 않아 떨어졌는데, 붙었다는 기적!)




*  다음편, 달빛 [Moon light] : 학교에서 돌려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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