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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가는 조권의 횡단보도

검정고시 준비하는 소녀의 한 마디

"임아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기어이 물을 건너시네......."

"기억나니? 공무도하가?"

"선생님, 잘 모르겠어요. 못 들어본 것 같은데요..."



30여 년 전, 나도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공무도하가',  백수광부의 아내가 불렀다는 그 '공무도하가'를 그녀는 모르겠단다. 교육과정으로 보면 고등학교 2학년 정도인데 숱하게 수업을 빠지거나, 학교에 안 다닌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다시 설명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강물에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어서 가지 말라고 돌아오라고 안타까워하는 심정이라고. 알겠냐고 물었더니 엉뚱한 답변을 한다


" 조권의 횡단보도가 생각나요. 거기서도  좋아하던 사람이 떠났을까 봐 뒤를 못 돌아보거든요"

"......"

"뭐? 조권? 횡단보도? "


이제는 안녕
난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하지
가지 말라 잡아볼까 기대를 했던
내가 내가 참 바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이 길을 참고 건너면
차마 애써 반대편에 도착해 뒤돌아보면
니가 가버렸을까 봐 겁이 나서
그 자릴 떠났을까 봐 겁이 나서
사라졌을까 봐 겁이 나서 겁이 나서
뒤를 돌아볼 수가 없어
.

니가 가버렸을까 봐 겁이 나서
그 자릴 떠났을까 봐 겁이 나서
사라졌을까 봐 겁이 나서 겁이 나서
뒤를 돌아 볼 수가 없어
혹시 네가 아직 그 자리에
나를 기다리던 그 자리에서
니가 가버렸을까 봐 겁이 나서
그 자릴 떠났을까 봐 겁이 나서...



띵 하고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 정말. 그런 느낌이긴 하네. 난 여전히 <공무도하가>하면 시험 문제로만 생각하는데, 그녀는 자신의 감정 그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유행가를 떠올리고 있었다니...      

시간 나는 토요일마다 난 야매 검정고시 과외 선생님 노릇을 해왔다. 소년원에 가기 전 단계인, 6호 처분을 받고 위탁 교정시설에 있는 소녀들의 검정고시를 도와주는 일.  6개월의 거주 기간 동안 시험에 통과하도록 도와주는 게 내 일이었는데 '공무도하가는 조권의 횡단보도'는 큰 사건이었다. 그 후, 이 느낌이 좋아서 수업 끝나기 10분 전, 내가 가져간 시집 1권을 아무 데나 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읽고 느낌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대부분 가장 짧은 시를 골랐다. 문장을 고르고 자기의 감정을 이야기할 때면, 문제 풀 때 지루해하던 눈빛은 사라지고 눈을 반짝이며 솔직한 감정들을 쏟아내곤 했다. 날 것 같은 감정 표현이지만, 시 구절에 실어 자기를 표현하는 순간을 지켜보며 문장이 가진 이상한 '치유의 힘'을 경험한 시간. 다행히 싫다고 하지 않아서 퇴소할 때까지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문제를 하나쯤 덜 풀어도 '감정을 이해하는' 연습만으로도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문장'을 사이에 두고 소녀를 조심스럽게 알아가는 느낌도 좋았다. 이런 게 힘없는 문장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었고.



사실, 이곳에 입소하는 친구들은 신산함을 일찍 맛본 아이들이다. 스물도 안된 나이에 소녀들이 살아온 세상은 굴곡이 많았에 나보다 사랑도 더 많이 하고, 배신도, 싸움도, 거절도, 아픔도 더 쎄~게 당한 그녀들. 어쩌면 시험문제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세상 쓴맛''으로 배워온 터라, 그녀들이 나보다 더 어른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한편, 동네에서 만났으면 경계하고 말 한마디 섞어볼 기회조차 없었을 텐데, 다른 공간에서 그녀들을 만나며 또 다른 세상을 배운다. 시험문제가 아니라, 진짜 삶을 알고 있는 아이들. 그러니 공무도하가를 두고도 조권의 횡단보도를 떠올렸겠지.



지금도 공무도하가 이야기가 나오면, 가수 조권을 보면 그때 일이, 그 소녀가 떠오른다. 그리고 잊지 못한다.  3년을 해온 일을 그만두던 날, 던진 그 무심한 한 마디도!


" 선생님, 꼭 밥 먹고 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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