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는 신경 안 썼는데 EQ는 감성 수치라 그 수치가 높은 사람을 찾았다. 다른 사람이 어떤 걸 생각하고 있는가 공감 능력이 많은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 사유리의 한 마디 -
#1.
가끔, 일산으로 회의를 갈 때면 90km 구간을 꼼짝없이 차 안에서 운전을 하며 보낸다. 이런 날 친구가 되는 건 라디오. 금요일 퇴근 시간이 임박하자 정차 시간은 더 길어졌고 지루한 시간을 달래려고 이리저리 돌리다가 멈춘 채널에서는 '비혼 출산'으로 떠들썩한 사유리가 초대 손님으로 나왔다. 사유리와 같이 난자를 얼려두었다는 DJ의 라디오 방송. '난자 친구'였던 시절부터 둘 다 '엄마'가 되어 느끼는 공감대까지 자연스러운 수다가 이어진다.다음은 '비혼'출산에 대한 청취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코너. 문자로 온 청취자의 궁금증을 DJ가 대신 질문하는 데, 하이라이트는 사유리의 '정자 선택의조건'을 묻는 질문! 보통, 결혼하고 싶은 남자의 조건(건강, 재력, 학력, 시부모, 외모, 성격 등등)을 따지는 경우는 많이 봐왔지만, '정자의 조건'을 따지는 세상이라니! 귀가 솔깃해 채널을 돌릴 수가 없다. 과연 그녀의 정자의 선택 조건은 뭘까?
#2.
기증받을 정자의 정보는 생물학적인 건강에 관한 것이 많단다. 놀라운 건, 기증자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대의 질병과 알레르기 등도 알 수 있고 흡연과 음주 정도, 그리고 IQ와 EQ의 정보도 공개된다고 한다. 사유리는 기증 정자를 선택할 때 어떤 국적인지는 상관없었지만, 정자 기증 문화를 못 받아들이는 동양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서양사람들이라 서양의 어떤 사람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때 자신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조건은 '건강'과 '이것'이었는데......
"일단 술·담배 안 하고 몸이 건강한 게 우선이었다. EQ가 높은 것을 중점적으로 봤다. IQ는 신경 안 썼는데 EQ는 감성 수치라 그 수치가 높은 사람을 찾았다. 다른 사람이 어떤 걸 생각하고 있는가 공감 능력이 많은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와우! 정자의 조건 중 EQ가 있다니! 신선하면서도 놀랍다.우리 사회는 높은IQ지수에 대해 공개적인 분위기인데 반해, EQ 검사를 따로 한다는 얘기는 잘 듣지 못했다. 그런데 EQ가 정자 조건에 속한다니! 비혼 출산을 행동으로 옮긴 것만도 대단한데, 정자 선택의 조건으로 EQ를 따지는, 기준이 확고한 사유리가 남달라 보인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떤 조건들을 선택하게 될까?
#3.
IQ가 높은 것을 선호하는 사회지만, 살다보면 인관관계에서 EQ의 중요성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EQ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짧은 연애를 한 남자 친구가 있다. 똑똑하고 (한마디로 IQ높고), 야무지고, 친절하고 반듯한 친구는 한마디로 딱 어른들이 좋아할 타입이었다. 빈틈없는 모범생이었지만 왠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지는 친구. 잘해줘도 뭔가 불편하고 마음이 통하지 않는 듯해서 나 홀로 감정을 꾹꾹 누르며 참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술 먹고 전화를 걸어 사고를 친 나! “나는 수도꼭지가 아니니 잠그지 말라고!!”
이처럼 횡설수설 말도 안되는 소리를 쏟아붓고 잠이 든 나. 나중에 전해들었지만.....잘 기억나진 않는다. 억눌린 무의식이 저지른 일이었다. 이 일로 내가 화난 이유를 설명하는데 사람 좋게 웃으며 '미안'하다고 했지만 이해 하지 못하는 눈빛을 확인하는 순간 무서웠다. '아...... 이 아이랑 있으면 난 영영 외롭겠구나'. 감정도 '글'로 배운 듯 너무나 반듯한. IQ는 높을지 몰라도 EQ는 높지 않은 친구였다. 그후, 헤어지자는 직언 대신 '시간을 갖자'라고 돌려서 말했건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약속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자는 전화가 왔을 땐 조금 놀라고 많이 슬펐다. 슬픈 예감이 맞아서 슬픈 친구는 똑똑한 아이답게 그후,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 잘 먹고 잘 살고 있단다.
#4.
EQ가 어떤 느낌인지 확실히 알게 해 준 옛날 남자 친구를 '뒷담화'하며, 사유리가 말한 ‘정자의 선택 조건’을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가를 알아차리는 공감. 그것이 없다면 사람은 같이 있어도 외롭고 쓸쓸할 것만 같다. 그녀가 왜 정자의 조건으로 EQ를 선택했는지 격하게 공감하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