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쩌다 파친코 북토크

<파친코 북토크>, 이민진 작가의 그 한마디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집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다 평범합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도 특별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살면서 특별한 그런 순간들을 맞이합니다.
우리의 평범한 이야기들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영광입니다


- <파친코> 출간 기념  이민진 작가 북토크,  (2022.8.10.)     




1.  첫인사는 수해 피해자를 위한 애도     

지난 8월 10일, 파친코를 쓴 이민진 작가 북토크는 <파친코> 개정판 출간을 기념하며 마련된 행사였다. 수도권에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린 뒤라 예정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행사는 일정대로 진행되었다. 1시간 전부터 긴 줄을 섰는데 이날 1,300명이 왔다고 한다.         

이민진 작가의 첫인사는 감사인사와 함께 수해 피해자를 위한 애도였다. 정확한 사망자와 실종자의 수를 언급하며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진심 어린 애도. 순간 울컥한 건 나도 예상 못한 일이다. 엄청난 수해 피해에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불편했던 마음이, 작가의 뜻밖에 애도에 묘하게 위로받는 듯했다. 인사만으로 이민진 작가의 글이 ‘사람’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2.  용기 있는 질문자들       

1부는 사회자와의 대담, 2부는 현장 독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한국 독자들과의 첫 만남인 만큼 작가는 독자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듣고 싶어 했는데 실제로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1층과 2층, 네 곳에 마련된 마이크 앞으로 직접 나와 질문하는 조금 부끄러운 형식인데도 불구하고 용기 있는 질문자들의 줄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고, 단연 MZ 세대가 많았다. 재미있게 읽은 소설에 대한 직접적인 궁금증이 있는가 하면, 정체성을 찾는 법,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처하는 법,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란 무엇인지, 변호사에서 소설가로 전직한 상황, 소설가가 되고 싶은 꿈의 실현 방법, 대부와 파친코를 비교하며 구조적 유사성을 의식하고 소설을 썼는지 등의 다양한 질문들이었다. 어쩌면 이 질문들은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든 젊은이들이 좋은 어른에게 인생의 답을 찾고 싶어 하는 절박함이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  




3. 작가와 사실

어떤 질문이든 작가는 유머를 섞어가며 성심성의껏 답을 했다. 답변 가운데 '편견', '사실', '평범'의 키워드가 내겐 남는다. 작가가 생각하는 글쓰기란 '사실'을 기록하는 일이라고 한다. 말과 다르게 기록을 남기는 '글'은 위험 부담이 있지만 시대마다 위험을 무릅쓰고 글을 쓴 사람들이 있어 왔다는 사실. 하지만 소설은 사실을 '감정적'으로 전달하는 일이 중요한데,  파친코 초고는 사실만 있고 너무 재미없어서 전부 버리고 다시 시작했다는 '실패'담을 고백하면서 '사실'이란 '약점'까지 드러내는 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질문으로 우리의 식민지 역사를 다음 세대가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우리는 다음 세대를 어떻게 도와야 할까?라는 물음에도 작가는 ‘사실’을 강조했다.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단순히 좋은 편, 나쁜 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실제 있었던 일을 ‘사실’로 전달하고 안 좋은 일들도 사실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스스로 ‘혐오의 감옥’이나 ‘피해자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다.




4. 편견과 정체성

‘편견’에 대한 이야기도 와닿았다. 편견과 혐오의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가 편견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을 때 속으로 ‘내가 언제 편견을 만들었다고?‘ 반문했는데.....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말이 ‘편견’을 만들 수 있다며 스스로 ‘편견’을 말하지 않는 것이 첫걸음이라는 얘기에 나도 반성하게 된다.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 남자는 이렇다, 저렇다' ‘한국 엄마는 이렇다, 저렇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럼  '한국 남자를 몇 분이나 아십니까?'라고 질문한다. 되도록 웃으면서 이런 질문을 하는데 그 이유는 편견을 만들어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은 시대라 '정체성'에 대한 질문도 많았다. 여전히 정체성 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에 대한 질문에 정체성이란 나에 대한 내부적 정의와 외부적 정의 사이에서 진실을 만나는 것이라고.  이민진 작가는 세계적인 유명 작가라는 타이틀에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로 유머러스하게 그녀만의 '정체성'을 들려주었다.            


정체성이란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내가 누구인지 만나는 지점이다. 저는 여러분의 칭찬에 감동을 받았지만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 실수가 많고, 거북이 같이 느리고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똑똑했다면 30년 동안 한 작품만 구상하지는 않았을 거다. 소설을 네 권쯤은 집필했을 것 같다.(웃음)  



5. 질문자의 이름을 묻는 일 따위     

30년 동안 구상한 작품을 완성한 끈질김, 초고를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철저한 자료조사와 진실을 추구하는 자세, 거기에 유머까지 곁들인 작가의 태도는 물론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낀 나의 감동 포인트는 다른 것이다.


이민진 작가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질문자와 눈을 맞추고 이름을 묻고 불러주었다. 작가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름을 묻고, 답변 후에도 이름을 불러 제대로 답변이 됐는지를 확인했다. 수많은 ‘질문들’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사람’에 집중하는 태도. 놀랍고도 감동적인 장면이다. 누군가에겐 ‘이름을 묻고 불러주는 것! 따위는 별 일 아닐 수 있겠지만 내 눈엔 그 점이 크게 보인다. 한국에서만 30만 부가 팔리고 애플 TV에서 드라마로 제작돼 유명세를 타는 세계적인 작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한테 비슷비슷한 질문을 받았을까 싶은데도 마치 처음 듣는 질문인 듯 질문자 한 명 한 명 그 '사람'에게 집중하며 답변하는 장면과 유쾌한 분위기는 현장 북토크 참가자만이 느낄 수 있는 '직캠 명장면'이다.         




6. 우리 모두 한 집에 산다    

2시간의 북토크를 지켜보며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그녀의 ‘일관성 있는 태도’ 읽힌다. 첫 만남에서 수해 피해자들에게 애도를 전하고,  편견을 만드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되묻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질문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묻고 부르는 일.  '사람'이 중심이고 타인과 내가 연결돼 있다는 작가의 태도는 그녀의 소설 <파친코>의 세계와도 겹치는 부분이다.  


그런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봤기에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 망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4대에 걸친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닐까. '역사가 우리를 저버렸지만 상관없다'는 파친코의 강렬한 첫 문장처럼 역사가 할퀴고 간 자리에서도 살아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요즘 파친코 속 세상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이야기로 읽힌다. 이익에 눈먼 권력자들과 여전히 불평등한 세상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이야기로.  "이 세상에는 불공평한 게 너무 많고 그럴 때마다 평범한 사람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면서 작가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라고. 인생은 아름다운 모험이라고". 그리고 이민진 작가는 '우리는 모두 한 집에서 살아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집에 살고 있습니다.
그 집에 거주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응원합니다.   




7.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     

작가의 인터뷰를 유튜브로 많이 찾아봤지만 현장이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그날의 질감들을 기억하려고 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묻고 불러주던 그날을. 유머를 잃지 않고 균형 잡힌 시선을 보여준 그날을. 그리고 작가가 말한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나만의 '특별한 순간'을 담아서. (끝.)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다 평범합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도 특별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살면서 특별한 그런 순간들을 맞이합니다.
우리의 평범한 이야기들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영광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여기, 밥상 차리는 시인이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