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비빌 언덕이 있나?

#1. 가난한 세 자매에겐 비빌 언덕이

드라마 '작은 아씨들'을 분석하는 유튜브를 돌려보다 가난한 세 자매에겐 ‘비빌 언덕'이 있었다, 라는 시선으로 풀어낸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과연 그런가. 잔뜩 빚만 진 아버지와 딸의 수학 여행비를 가지고 도망간 엄마. 이처럼 부모 덕은 못 본 세 자매지만 인주에겐 도일이, 인경이에겐 오혜석 고모할머니와 종호가, 인혜에게는 부자 친구 효린이가 나름의 비빌 언덕이었다는 것.       

비빌 언덕이란 어린 송아지의 뿔이 자라기 시작하면 간지러워 언덕에 비비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세 자매는 비록 가난하고 부모 덕은 못 본 처지이지만,  비빌 언덕이 있어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 언덕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는 해석. 과연 그랬다.     




# 2. 나에게도 있었을까?

비빌 언덕. 나에게도 있었을까.

처음 기억나는 건 어릴 때 친구에게 서예를 배우던 순간이다. 원하는 만큼 붓글씨가 잘 써지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더니 서예수업이 있는 날마다 친구가 방과 후 남아서 가르쳐 주곤 했다. 친구 얼굴도 생각나진 않지만 학원에 가는 대신 친구에게 배우던 그날의 교실 분위기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때. 입시 준비를 하며 욕심은 나는 데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나한테 짝꿍이 선뜻 명문대에 다니는 자기 언니를 소개해주었다. 언니는 대학 생활 이야기며,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가끔씩 편지를 보내면서 격려도 해주고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다. 자신의 '언니를 선뜻 빌려준' 짝과는 졸업 후 연락도 안 하고 지냈지만 내 인생 멘토가 되어준 짝꿍의 언니랑은 오랫동안 연락을 하며 지냈고 결혼 때도 특별한 어른용 선물을 보내 주었다.       


방송작가 생활을 할 때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임신을 하고 배가 불러서도 평상복만 입고 다니던 내게 선배 작가 언니는 임부복을 사주고 출산 때 필요한 체크리스트까지 내 손에 쥐어주었다. 싹싹한 후배도 아니었고 언니한테 잘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쨌든 그 옷 하나로  출산 때까지 버틴 후, 친척에게 물림까지 한 임부복은  특별한 추억이다. 또 임신한 나를 위해 흡연자를 내쫓고 점심마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늘 먼저 물어보며 밥상을 챙겨준 피디도 있었다. 그녀와는 지금도 밥 먹는 모임으로 만나고 있다.      

  

당시는 나 살기 바빠서 그렇게 고마운 일인지도 잘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그들은 모두 나의 '비빌 언덕'이었다. 계속되는 인연이든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든. 내게 손 내밀어 준 사람들이 나의 '비빌 언덕'이 되어준 덕분에 인생의 허들을 만날 때마다 가볍게 슬쩍슬쩍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온전히 나 혼자가 아녔음을. 엄청 고마운 일이었음을 지금에야 제대로 느끼고 있다.     



  

#3. 누구에게나 허락되지는 않는

세상 누구나 그렇지는 않다, 는 걸 알게 된 건 휴먼 다큐를 할 때다. 가난한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기부를 돕는 휴먼 다큐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만난 첫 사연의 주인공은 공사장에서 노가다로 일하는 19살 난 친구. 중등교육까지 의무교육인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해 한글을 모른다니. 고아도 아닌데....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현장 답사에서 만난 가족은 상상 이상이었다. 여러 번 결혼을 했다는 엄마와 아버지가 다른 어린 여동생을 둔 그는 가장이었다. 빚에 쫓겨 이사를 다니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바람에 초등학교를 제대로 못 다니고 그 나이까지 한글도 제대로 못 배운 사연. 엄마는 말로는 안쓰럽다 하면서도 유일한 돈벌이를 하는 아들의 노가다를 당연한 듯 여겼다. 공부보다 돈벌이가 먼저인 아들. 어쩌면 돈벌이 수단이 되어버린 아들. 가난도 가난이지만 더 마음 아픈 건 부모도 그에겐 비빌 언덕이 되어 주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금세 시들고 포기하는 상황을 얼마나 반복하게 될까 싶어서.      


또 다른 주인공은 남편이 암 투병을 하던 어느 가족이었다. 남편 간병도 하고 돈도 벌고 자녀 둘도 돌보는 실질적 가장인 부인은 하루 종일 부업거리를 끌어안고 살고 있었다. 좁은 집안은 물품으로 가득 찼는데, 전기 드라이버로 조립할 때마다 나는 소음에 옆방에 누워있는 남편은 짜증을 내고 아이들은 아빠의 큰 소리가 날까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엄마의 몸은 하나인데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보는 내내 답답했다. 촬영을 끝내는 날 피디가 밥을 사주러 갔는데 비싸다며 메뉴 하나 맘껏 고르지 못했다는 아이들 이야기를 전했다. 간식 하나 맘껏 먹지 못하는 아이들과 쉴 틈이 없는 엄마. 작고 사소한 일조차 힘겨운 그들에겐 비빌 언덕이 너무나 없었다. 세상의 ‘비빌 언덕’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던 거였다.


편집을 끝내고 방송을 앞둔 어느 날, 주인공 남편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가족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 남편이 없는 가정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나한테 4번 이상 잘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지안이의 대사처럼 '세상은 친절하지 않은 곳'이라는 경험을 먼저 해버린 사람들. 하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던 그 프로그램은 '비빌 언덕'이 허락되지 않는 사각지대를 알게 했다.   



     

#4. 있었는지 조차 몰라도 좋아. 비빌 언덕.

‘비빌 언덕’의 시선으로 작은 아씨들의 최종회를 지켜보았다. 전개는 스펙터클 했다. 세상 악랄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세 자매는 '수많은 비빌 언덕'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막판에는 통장에 몇 백 억씩 꽂히며 자매들을 옥죄던 가난에서도 풀려나는 결말. 시원하면서도 정말 비현실적인 드라마다. 그럼에도 내가 하나 건진 게 있다면 거대한 산맥 같은 든든한 빽은 없더라도 누군가 ‘비빌 언덕’만 되어 줘도 숨 쉬고 살만하다는 사실이다. 마음이 빡빡할 때는 당장에 고마움조차 잘 느끼지 못할지라도. 내 인생을 돌아보면 동네 야트막한 언덕이나 오르기 편한 제주 오름 같은 비빌 언덕이 쭈욱 계속되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통장에 몇 백억 꽂힐 일이 없는 내가 욕심을 내자면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각지대 없이 누구나 그런 비빌 언덕이 있으면 좋겠다. 있었는지 조차 모르게 작은 비빌 언덕이어도. 그래도 좋다.(끝.)    

작가의 이전글 가장 최악일 때 나를 만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