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너구리였다니!

어린이문학 연구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by 강이랑

진짜 너구리였다니!

그러지 마라 했더니, 그만둔 아이들이 진짜 너구리였다!


가을, 자주 가는 들판에서 햇살을 쪼이며 산책을 하고 있는데, 한 부부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너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가 없다.


아내분이 너구리를 목격해서, 구청에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구청 담당자분에 따르면 원래 이곳이 너구리 서식지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너구리가 나올 수 있다며, 너구리가 무슨 해코지를 했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아내분은 그런 일은 없었기 때문에 아뇨라고 대답하자, 구청 직원분이 그럼 괜찮으실 테니 너무 염려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여름 저녁 내가 보았던 그 아이들이 너구리가 맞았던 것이다. 그 아이들이 저녁 무렵 사람들이 오고가는 공원 쪽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여름철에 만난 너구리는 나의 착각이 아닌 정말로 있었던 것이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더니 어떤 분의 블로그에 우리 동네 가까운 산에 너구리 가족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써놓으셨다.

아, 그랬던 것이로구나. 너구리 자매나 형제가 인간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우리 동네 작은 공원 산책로까지 나온 것이었구나, 고양이만이 아닌 너구리도 우리 바로 곁에 함께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사람만의 시각이 아닌 또 다른 생명체의 시각이 내 안으로 스며들며 나의 좁다란 시야가 좀 트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너구리에 대한 이야기를 써놓으신 분의 블로그를 다시 보니, 산 건너편 큰 공원 쪽에 너구리에 대해 적어 걸어놓은 현수막 사진이 있다. 종종 가는 그 공원에서 나는 왜 이 현수막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공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걸어둔 현수막으로, “너구리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적혀있고 작은 글씨로 “너구리는 야행성이며 잡식성 개과 동물입니다. 개구리, 들쥐, 뱀, 곤충 등을 잡아먹으며 도토리, 고구마 등도 먹습니다. 식욕이 대단해 한꺼번에 많은 양이 필요합니다.”라고 적혀있다.


그렇구나, 너구리들이 식탐이 많구나, 하고 나는 또 별 게 다 놀랍다. 인터넷 지식백과를 더 검색해 보았더니, 너구리는 개과 중에서도 유일하게 겨울잠을 잔다고 한다. 11월부터 3월까지 잠이 든다고 한다. 넉넉하게 겨울잠을 자기 위해서 그렇게 식탐을 부리나 보다.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탐사하고 보고한 어느 신문 기사를 보니, “하지만 완벽하게 겨울잠을 자는 건 아니다. 가을철에 배를 불려놓지 못할 경우 겨우내 먹을 것을 찾아다니기도 한다.”라고 적혀있다.

내가 마주친 그 너구리들은 올여름과 가을 배불리 먹고 지금쯤 겨울잠에 빠져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나는 묘하게 야생동물들과 인연이 있다.

수유리에 살 때는 북한산에서 멧돼지를 만난 적이 있고, 충주에 살 때는 논을 가로질러 가는 고라니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여름에 이곳에서 서로 다투고 있는 세 마리의 너구리를 보았던 것이다.

북한산에서 만난 멧돼지하고는 몇 초간 서로 대치한 경험이 있다. 다행히 커다란 바위 옆으로 바로 몸을 숨겨서 망정이지 정말 멧돼지가 맘만 먹으면 나는 하마터면 큰 위험에 처할 뻔했다.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다. 나는 이때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 멧돼지와의 만남을 판타지 작품 속에 담았다.


이번에 다시 너구리를 만난 것이다. 여름에 만난 너구리들하고는 서로 대화까지 나누었다. 내가 그들에게 말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정말로 그들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말했다. 그리고 그때 너구리들은 진짜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고, 나는 믿는다~!


11월 이 밤, 나는 잠시 겨울잠을 자고 있을 그 너구리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요 며칠 난 알 수 없는 식탐과 수면 욕심이 있었다. 가난한 나는 나답지 않게 식비에 돈을 쓰고, 잠 속에 빠져들었다. 나 또한 미니 겨울잠이었을까. 너구리들이 겨울잠에 들 듯이 그렇게 나도 미니 겨울잠을 자려했던 것일까. 쉼과 휴식을 넘어선 더 깊은 단계의 적극적인 휴면(休眠)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리고 미니 겨울잠을 자고 난 내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좀 더 관대하고 여유로워졌을까.


그리하여 그때 그렇게 다그쳤던 그 야생 너구리들에게도 좀 더 담대하고 따스하게 대할 수 있는 내가 되어 있을까. 너구리를 떠올리며 다시 올 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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