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문학 연구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새로운 거처를 찾아
일본 유학 생활을 하면서 네 번 거처를 옮겼다. 첫 하숙집은 학교 국제교류센터의 도움을 받았다. 여성 숙소와 남성 숙소가 있는 2층으로 된 가정집이었다. 주로 유학생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중국, 싱가포르
유학생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싱가포르 친구인 다이마스 군은 일본인 여자 친구가 있고 영어가 유창했다. 버섯과 야채 볶음 요리를 잘 만들었고, 『해리포터』의 열렬한 독자였다.
다른 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다이마스 군은 아동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나는 영미문학을 전공한 저명한 아동문학 연구가이신 미야케 오키코 선생님께 말씀드려, 다이마스 군은 우리 학교에서 아동문학개론 청강생으로 수업을 듣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여자 대학교인지라 다이마스 군은 유일한 남학생인 데다 외국인이어서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다이마스 군이 결혼하고 나서도 일본인 아내분과도 함께 만나고 친하게 지냈다. 다이마스 군은 아주 멋진 뱀을 반려동물로 키우고 있었는데 집으로 놀러 갔을 때 만지도록 해주었다. 근육질의 아주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뱀이었다.
그 이후 일본 친구들이 소개를 해주어 두 군데 더 하숙집을 옮겼다. 모두 공동 숙소였다.
처음에 일본으로 떠났을 때, 설마 9년을 있을 줄은 몰랐다. 모든 것의 시작은 학사 논문이었다. 나는 이때만 해도 내 세계의 중심은 창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졸업 논문으로 논문을 쓰면서 방향이 정해지고 말았다. 논문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석사 논문도 쓰고, 세 번째 공동 하숙집에서 박사 논문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는 박사 논문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공동 숙소가 아닌 곳으로 거처를 옮길 필요가 있었다. 나는 논문을 쓰기 위해 새로운 거처를 찾아내야만 했다.
새로운 거처는 후나야마 아사코라는 분의 집이었다. 후나야마 씨는 마루베니라고 하는 대기업에서 비서를 하셨던 분인데, 근처에 있던 국제아동문학관에서 외국인 연구원들을 위한 숙소를 제공하길 바란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자신의 집 2층을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고 유학생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편의를 봐주셨다.
마침 내가 유학을 갔을 때 국제아동문학관에 아동문학평론가이신 박숙경 선생님이 연구원으로 와있었다. 박숙경 선생님을 따라 후나야마 아사코 씨 집을 놀러 간 기억이 있었다. 나는 후나야마 아사코 씨네 2층 집이라면 논문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 후나야마 아사코 씨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내 사정을 얘기하고 2층 집을 빌려줄 수 없겠냐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2층은 이미 누가 살고 있었다. 나는 후나야마 씨와 담소를 나누고 집을 나오는데 후나야마 씨가 옆집은 작고한 어머니가 계시던 집으로 지금은 창고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모든 짐들을 그곳에 모아두어 사람이 살 수 없지만 한번 볼 거냐고 물어보신다. 들어가 보니 화장실도 옛날 수세식이고 지은 지 70년 된 다타미가 깔린 아주 오래된 집이었다. 뜰도 있었다. 나는 물론 이대로 개의치 않았다.
한 달 후 새로운 거처로 이사를 가보니, 후나야마 씨는 방 한 칸에 모든 짐을 다 옮기고, 다타미가 깔린 두 개의 방을 제외하고 작은 방과 화장실과 부엌을 완전히 새롭게 현대식으로 바꿔놓으셨다. 뜰로 나가는 큰방도 쓸 수 있게 해 놓으셨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 집에서 박사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후나야마 씨는 영어와 프랑스어에 유창하시고, 영어 소설 읽기, 프랑스어 공부 모임, 음악회 등 그 밖에도 많은 공부 모임을 만드시고 이끄셨다.
그리고 직접 구워 만드신 영양 만점인 파운드케이크며 여러 밑반찬, 과일과 과자나 음식 재료 등을 나누어 주셨다. 여러 공부 모임에도 불러주시고, 지인들을 소개해주시고, 재미난 곳에도 데려가 주시고, 맛있는 것도 사주셨다.
한참 내가 논문에 집중할 때에는 조용히 편의를 봐주셨다. 정말이지 내가 만난 손에 꼽히는 참 어른이셨다. 이렇게 멋진 어른을 나는 박사 논문을 위한 새로운 거처를 찾아 나선 길에서 만났다. 큰 고비에 부딪혔을 때, 나 스스로 맞닥뜨릴 마음만 있다면 마침내 길이 열린다는 것을 나는 한 번은 유학길에서, 또 한 번은 후나야마 아사코 씨를 통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