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까지의 길은 가깝고도 멀었다

어린이문학 연구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by 강이랑

수목원까지의 길은 가깝고도 멀었다

집에서 걸어서 30분쯤 되는 곳에 자연의 생태를 살린 수목원이 있다. 햇살이 아름다울 때, 문득 ‘그렇지, 오늘같은 날은 수목원이지.’란 생각이 들면, 곧바로 수목원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수목원까지는 산을 타고 올라가는 길과 대로변을 쭉 따라 우회에서 가는 길이 있다. 어느 쪽 길로 가나 걸어서 대략 30분 정도 걸린다.


중간까지 찻길을 따라 걷다가, 계수나무길이 이어진 철길을 지나고, 산길로 접어든다. 밤송이가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모습을 확인하며, 어디 밤 한 알이라도 안 떨어져 있나 유심히 살피며 걷는다. 밤 알 발견!


만족한 나는 밤 알 하나를 주워 주머니에 넣고 수목원으로 들어선다. 며칠째 내리친 비바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화초들을 바라본다. 비바람이 언제 몰아쳤느냐는 듯이 하늘은 찬란하게 빛나고, 화초와 나무들 잎이 싱싱하다.


꽃 정원에 도착해 둘러보는데 새빨갛게 피어난 탐스런 꽃이 눈에 띈다.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을 머물며 사진을 찍는다. 그러는 내 앞으로 여성 두 분이 지나가며 꽃이 예쁘다고 감탄하신다. 그중 한 분이 이름이 뭘까? 하신다. 나도 이름을 잘 모르겠다. 그러자 다른 한 분이 다알리아같다고 말씀해주신다. 다알리아라는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이 꽃이 다알리아라는 것을 알겠다.


“맞아요, 다알리아.” 그러고 나서 바로 아래쪽을 보니, 푯말에 다알리아라고 쓰여있다. 다알리아를 보면, 윤극영이 떠오른다. 윤극영이 만든 동요회 이름이 ‘다리아회’여서, 나는 사진을 찍어 같이 공부하는 공부모임에서 윤극영을 연구하는 선생님께 보내고 친구들에게도 보낸다.


그러다 다알리아꽃 이름을 알려준 분이 내게 어디 사느냐고 물으신다. 나는 근처에 산다고 대답하며, “걸어서 30분 걸려요.”하고 말한다. 그러자 두 분이 동시에 “가깝네요.” “머네요.”란 극과 극의 대답을 한다.

나는 처음에는 이 정도가 뭐가 멀까하고 생각한다. 초행길도 아니고, 내가 사는 동네에서 잘 아는 길이니 30분 정도는 내게 먼 길이 아닌 것이다.


두 분과 헤어져 나는 혼자서 수목원을 속속들이 탐색하며 걷기도 하고, 다시 꽃을 보러 가기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수련이 심어진 호수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친구와 통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 있다. 나는 서둘러 수목원 길을 가로질러 산길로 향한다. 칠흑 같이 어둡다. 컴컴한 산길을 포기하고 다시 대로변 길을 우회하는 길로 향한다.


이 날따라 대로변까지 가기 전의 찻길 인도가 새로 보도불럭 공사를 하는지 막아놓은 데도 있고, 모래가 깔려있기도 하고 가는 내내 장애가 있다. 나는 어두운 발길을 살피고, 찻길 이쪽으로 걸었다가, 다시 찻길 건너편으로 건넜다가 신경 쓰느라 대로변까지의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드디어 대로변에 접어들어 심신의 피로를 느낀 나는 잠시 버스 정류장 벤치에서 쉬었다 간다. 그러면서 “걸어서 30분 걸려요.”란 말을 했을 때 “머네요.”라고 말씀하신 분의 대답을 ‘이 정도가 뭐가 멀까.’하고 생각했던 걸 떠올린다. 그런데 지금은 멀다, 집으로 가는 길이 참으로 멀다. 수목원을 향해 갈 때는 가까웠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멀게 느껴질지 그때는 몰랐었다.

두 분 말이 모두 맞았다. 가깝고도 먼 것이 함께 들어있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이 하루 안에 있듯이 수목원까지의 길은 가깝고도 멀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 말에 대한 대답 속에 극과 극의 다른 대답이 되돌아올지라도 별일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극과 극이 오고 가며 존재하는 모습을 체험하며 내가 옳다고 단언하지 말자, 아니라고 단언하지 말자.

수많은 변수 속에 나란 존재가 놓여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산길에서 주워온 밤 알을 깎아 천천히 천천히 씹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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