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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스이 Jun 03. 2021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크레파스, 오일파스텔

 오일파스텔을 접하게 된 건 작년 봄이었다. 퇴사 후 취미가 필요했다.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마음을 좀 안정시킬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마음의 안정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시시각각으로 느끼는 불안과 우울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만한 것이면 되었다. 마침 오일파스텔이 유행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지나가던 문구점에서 딱 하나 팔고 있던 펜텔 오일파스텔을 집었다. 


 언박싱! 새로 산 물건의 포장을 뜯는 건 언제나 설렌다. 비닐 커버를 벗겨내고 종이로 된 케이스 뚜껑을 조심스레 열었다. 고운 색을 뽐내는 둥근 막대들이 나를 반겼다. 스케치북을 펼치니 마음이 벅찼다. 나와 마주한 흰 종이. 여기에 뭘 그려야 하지,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그림에 소질이 없어 괜한 물건을 샀나 싶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색을 하나 집어 슥 그어보았다. 


크레파스잖아?


알고 보니 크레파스가 곧 오일파스텔이었다. 크레파스는 일본의 사쿠라 사에서 만든 최초의 오일파스텔 이름이라고 한다. 그 명칭이 굳어져서 지금까지 대부분의 오일파스텔을 크레파스라고 통칭해왔단다. 마치 '호치키스'가 스테이플러의 제조사 이름이지만 대명사처럼 불리고 있는 것처럼. 조금은 허무했다. 어릴 적 수 없이 잡았던 크레파스가 오일파스텔이었구나. 물론 질감은 달랐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썼던 크레파스보다는 조금 더 부드럽고 선명하게 그려지는 느낌이랄까? 나중에 다른 문교나 시넬리에 제품을 구입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브랜드에 따라 오일파스텔의 가격과 질감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래서 모으는 맛이 있다.


 오일파스텔이 별 게 아니고, 내가 알던 크레파스라고 생각하니 부담이 가셨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마음대로 그렸다. 몇 해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우리 강아지 쿠키도 그려보고,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도 그렸다. 인스타그램 라이브나 유튜브를 보며 꽃과 풀을 따라 그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주제 없이 좋아하는 색을 꾸덕하게 채우기도 했다. 채워낸 색이 곧 그림의 테마가 되었다. 그림의 양이 늘어나자 아예 그림만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다. 그림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작가님이라 불렀다. 고로, 나도 작가님이 되었다. 비록 SNS에서 국한된 호칭이었으나 '작가님', 그 말이 참 살갑고 좋았다.


오일파스텔을 뭉개듯이 칠하면 제법 유화 느낌이 난다


 작년 오뉴월에는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렸다. 대충 점심에 눈을 뜨면 그림부터 그렸다. 집요했다. 끼니만 때우고 늦은 밤까지 그림을 그려댔다. 뒷목이 당기고 어깨가 결렸으며 눈이 침침했지만 그림을 멈출 수 없었다. 당시 -헤어질 무렵이었다- 사귀고 있었던 남자 친구는 내게 매일같이 '오늘은 뭐 할 거야?'라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짜증이 솟구쳤다. 오늘도 당연히 그림 그릴 거니까! 




 요즘은 예전만큼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지는 않는다. 글을 쓰는데 집중하고 있기도 하고, 지겹게 그려서인지 약간 싫증이 난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림에 대한 집착을 덜어낼 수 있었던 건 심경의 변화 때문이다. 그림, 운동 그리고 치료를 통해 어지럽던 마음이 서서히 차분해졌다. 마음이 덜 번잡스러워졌다. 그러면서 책도 읽을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불안이 심했을 땐 책 한 줄 읽기가 어려웠다.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니 내게 그림은 현실이든 생각이든 잊어버리려고,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던 수단이자 결과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은 나를 삶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림으로 힘겨운 나날을 버틸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왔다. 아무래도 오일파스텔은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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