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파스, 오일파스텔
오일파스텔을 접하게 된 건 작년 봄이었다. 퇴사 후 취미가 필요했다.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마음을 좀 안정시킬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마음의 안정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시시각각으로 느끼는 불안과 우울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만한 것이면 되었다. 마침 오일파스텔이 유행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지나가던 문구점에서 딱 하나 팔고 있던 펜텔 오일파스텔을 집었다.
언박싱! 새로 산 물건의 포장을 뜯는 건 언제나 설렌다. 비닐 커버를 벗겨내고 종이로 된 케이스 뚜껑을 조심스레 열었다. 고운 색을 뽐내는 둥근 막대들이 나를 반겼다. 스케치북을 펼치니 마음이 벅찼다. 나와 마주한 흰 종이. 여기에 뭘 그려야 하지,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그림에 소질이 없어 괜한 물건을 샀나 싶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색을 하나 집어 슥 그어보았다.
크레파스잖아?
알고 보니 크레파스가 곧 오일파스텔이었다. 크레파스는 일본의 사쿠라 사에서 만든 최초의 오일파스텔 이름이라고 한다. 그 명칭이 굳어져서 지금까지 대부분의 오일파스텔을 크레파스라고 통칭해왔단다. 마치 '호치키스'가 스테이플러의 제조사 이름이지만 대명사처럼 불리고 있는 것처럼. 조금은 허무했다. 어릴 적 수 없이 잡았던 크레파스가 오일파스텔이었구나. 물론 질감은 달랐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썼던 크레파스보다는 조금 더 부드럽고 선명하게 그려지는 느낌이랄까? 나중에 다른 문교나 시넬리에 제품을 구입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브랜드에 따라 오일파스텔의 가격과 질감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래서 모으는 맛이 있다.
오일파스텔이 별 게 아니고, 내가 알던 크레파스라고 생각하니 부담이 가셨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마음대로 그렸다. 몇 해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우리 강아지 쿠키도 그려보고,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도 그렸다. 인스타그램 라이브나 유튜브를 보며 꽃과 풀을 따라 그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주제 없이 좋아하는 색을 꾸덕하게 채우기도 했다. 채워낸 색이 곧 그림의 테마가 되었다. 그림의 양이 늘어나자 아예 그림만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다. 그림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작가님이라 불렀다. 고로, 나도 작가님이 되었다. 비록 SNS에서 국한된 호칭이었으나 '작가님', 그 말이 참 살갑고 좋았다.
작년 오뉴월에는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렸다. 대충 점심에 눈을 뜨면 그림부터 그렸다. 집요했다. 끼니만 때우고 늦은 밤까지 그림을 그려댔다. 뒷목이 당기고 어깨가 결렸으며 눈이 침침했지만 그림을 멈출 수 없었다. 당시 -헤어질 무렵이었다- 사귀고 있었던 남자 친구는 내게 매일같이 '오늘은 뭐 할 거야?'라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짜증이 솟구쳤다. 오늘도 당연히 그림 그릴 거니까!
요즘은 예전만큼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지는 않는다. 글을 쓰는데 집중하고 있기도 하고, 지겹게 그려서인지 약간 싫증이 난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림에 대한 집착을 덜어낼 수 있었던 건 심경의 변화 때문이다. 그림, 운동 그리고 치료를 통해 어지럽던 마음이 서서히 차분해졌다. 마음이 덜 번잡스러워졌다. 그러면서 책도 읽을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불안이 심했을 땐 책 한 줄 읽기가 어려웠다.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니 내게 그림은 현실이든 생각이든 잊어버리려고,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던 수단이자 결과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은 나를 삶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림으로 힘겨운 나날을 버틸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왔다. 아무래도 오일파스텔은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