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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자 Dec 11. 2021

오래 보아야 예쁘다, 리스본 너도 그렇다

-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 있대요!

- 전 세계에서? 그럼 가야지!


- 100년이 넘은 카페가 있대요!

- 100년이 넘었대? 그럼 가야지!


- 190년 된 빵집도 있다는데요?

- 뭐어, 190년언? 그런 가야지!



툭하면 오래된 것 투성이다. 민박집 사장님도 이 도시 가게들은 망하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100년 이상이라더니 정말 그랬다. 1881년에 생겼다는 포르투렐루 서점에 놀랄 일이 아니었다. 리스본엔 1732년에 문을 열어 280년 된 서점이 있는데 말이다.


오래된 것은 불편하고 투박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엔 원하는 책을 찾기 위한 PC 검색대가 없고 190년 된 베이커리엔 우리식으로 치면 맘모스빵이나 소보루빵 같은 투박하고 촌스럽게 생긴 빵뿐이다. 100년이 넘었다는 카페는 테이블 간격이 좁아 여유롭게 즐기는 에스프레소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유럽 도시 대부분이 그렇듯 리스본도 고집스러운 정도로 현대적이지 앟다. 문 한 번 따는데 한참을 끙끙 대야하는 오래된 열쇠, 무성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구식 엘리베이터, 주문 한번 하기 참 어려운 레스토랑의 "Sir"이 그렇다. 번호키로 3초 만에 문을 열고, 10층 건물을 엘리베이터로 10초만에 주파하고, 테이블에 붙은 벨 한 번에 종업원이 주문을 받아주는 첨단 시스템 속에 사는 우리에게 유럽은 구시대적이고 불편하다.


하지만 오래되어 좋은 점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은 출입문에 붙은 기네스 기록 인증 스티커 외에는 어디에도 '우리가 280년 됐다는 바로 그 서점이야'라는 허세가 없었다. '280년 됐어. 그게 왜?.'라며 조용한 동네 서점 역할을 할 뿐이다. 서점 옆 골목에선 중고책 시장을 열고 도시와 서점이 사생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오래된 빵집엔 그날 식탁에 올릴 빵을 사려는 동네 사람들의 일상적인 발걸음이 이어졌고 오래된 카페에선 1유로도 안 되는 에스프레소 한 잔도 나비넥타이를 한 노신사가 정성 들여 서빙해준다.


우리는 불편하고 투박할 것을 알고도 오래된 곳을 찾았다. 불편과 투박함에서 풍기는 세월의 깊이와 오래된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이곳 사람의 일상에 젖기 위해.



리스본의 오래된 가게

100년은 기본, 200년이 넘은 가게도 많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이 없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가게가 영업을 이어왔을까?


Bertrand Books and Music, Since 1732

대지진 전부터 운영되던 곳으로 280년이 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현재는 포르투갈 전역에서 50개가 넘는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Caza das Vellas Loreto, Since 1789

200년이 훌쩍 넘은 양초 가게. 향초부터 시작해 다양한 모양의 양초가 점령한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정전 대비용으로도 찾기 어려울 긴 원통 모양의 클래식한 양초를 판다. 색깔이 다양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라 선물용으로도 좋다.


Confeitaria Nacional, Since 1829

약 190년 역사의 베이커리로 5대째 가게를 이어오고 있다. 한때 왕실에 빵을 납품하기도 한 곳으로 크리스마스에 먹는 빵인 볼루헤이의 원조 집이다.


Hospital de bonecas, Since 1830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인형 병원으로 고장난 인형을 고쳐주는 곳이다. 인형의 부품들이 다소 섬뜩할 수 있으니 놀라지 말 것.


Claus Porto, Since 1887

포르투갈 최초의 비누와 향수 브랜드로 왕실과 귀족이 사랑했다고 하여 유명하다. 천연 원료와 향만큼이나 유명한 건 눈길을 사로잡는 패키지 디자인. 최근 국내 백화점, 편집샵, 호텔 등에도 입점하여 인지도를 넓히고 있다.


Conserveira de Lisboa, Since 1930

포르투갈 사람들의 대단한 해산물 사랑을 예쁜 통조림 캔으로 담아낸 곳. 통조림 브랜드는 많지만, 이곳은 가게 곳곳에 1930년 그때 그대로의 감성이 묻어난다.


Cafe a Brasileira, Since 1905

포르투갈에서 최초로 브라질식 에스프레소인 비카를 팔기 시작한 곳. 펳소아와 같은 포르투갈 예술가들이 살아했던 곳으로 가게 앞 그의 동상은 관광객의 포토 스팟이다.


출간했던 도서 <타인의 포르투갈>에서 발췌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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