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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Yi Oct 22. 2018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본 영화들

BIFAN 2018 TICKET BOOK

<비트>, <가비지>, <공포의 침입자>, <칼+심장>, <맨디>까지 5편의 첫인상.




2018/7/13

비트

김성수, 1997

정우성 배우 특별전을 통해 처음 보게 됐는데, 이렇게까지 퀴어 영화였을 줄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민(정우성)-로미(고소영) 쪽보다는 민-태수(유오성) 쪽의 관계가 훨씬 강력한 로맨스 서사였다. 로미는 딱 둘 사이를 질투하는 서브 캐릭터 위치. 민은 로미한테는 철벽 치면서 태수랑은 만날 때마다 거의 얼굴이 서로 맞닿을 기세로 붙어있질 않나... 특히 감옥에 있는 태수한테서 온 편지랑 요양원에 있는 로미한테서 온 편지를 연이어 읽는 민의 내레이션 부분이 있는데, 이건 너무 확실한 삼각관계 구도 아닌가. 결국 엔딩도 목숨 건 사랑... 충무로의 브로맨스(라고 쓰고 퀴어베이팅이라 읽는다)의 역사는 참 유구하구나 싶었다. 그래도 순간순간 천상의 피조물처럼 보이는 20대 시절 정우성 배우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관람 자체는 좋은 시간이었다(이상한 결론).




2018/7/16

가비지 _ Garbage

Q, 2018

리벤지 포르노 피해 여성이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닌 제3의 남성을 잡아다가 고문, 강간하는 독특한 내러티브를 가진 인도 영화. 페미니즘 운동의 맥락은 무시한 채 ‘왜 모든 남자들을 일반화 해?!’라며 되묻는 일부 남성(억울충)들에게 보여줄 만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다만 피해 영상을 재차 보여준다거나, 붙잡은 남성에게 굳이 여성의 옷을 입히는 부분 등은 거슬렸다. 이런 지점들이 어쩔 수 없는 남성 감독의 감수성의 한계인가 싶기도 했고.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GV에서 한 남관객이 감독에게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해서 인도고 영화고 뭐고 지금 여기 현실이나 걱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질문은 왜 주인공을 '평범한 여성’이 아니라 (감히) 쓰리썸을 하고, (감히) 여성과 남성 모두와 원나잇을 하는 그런 '문란한(!) 여성’으로 설정을 했냐는 것이었다(과장한 게 아니라 정말 저런 표현이었다). 이에 감독은 주인공 캐릭터가 충분히 평범한 현대 여성이라 생각했으며, 여성들이 자유로운 성을 누리면 문란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한국이나 인도나 의식 수준이 비슷한 거 같다고 대답했다. 어째서 부끄러움은 늘 이렇게 모두의 몫인 것인지.

사실 영화 자체를 보면서는 페미니즘 자의식에 취한 남성 감독의 한계가 선명한 아쉬운 영화 정도로만 생각하며 보고 있었는데, GV에서 인도의 종교, 계급적인 부분들에 대해 들어보니 몇몇 이해 가지 않던 설정들을 납득할 수 있었고 현재의 인도의 상황에서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든 것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종교인들의 문제점을 저격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감독이 신변에 위협까지 느끼고 있다고. 본명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인 듯.) 그리고 무엇보다 GV에서 위의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한 남관객을 차분하게 깔아뭉게 줘서 속이 좀 풀렸던(?).




2018/7/17

공포의 침입자 _ Terrified

데미안 루냐, 2017

‘불 꺼진 방에서, 이 각도에서는 어떤 형체가 보이는 것 같다가 저 각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간단하면서도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오싹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아주 잘 만들어진 하우스호러 영화. 웨스 크레이븐의 <나이트 메어> 등의 클래식을 잘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신선하고 재치 있는 장면들이 많았다. 큰 기대 없이 갑자기 예매해서 본 거라 더 재밌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러티브가 탄탄한 편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그걸 기대하고 보는 장르는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공포의 효과나 연출 측면에서는 최근에 화제가 됐던 <유전>보다 이 작품이 훨씬 뛰어나다는 생각이다. 국내에선 생소한 아르헨티나 영화지만 개봉을 해도 꽤 반향이 있을 법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감독이 참석한 GV도 볼 수 있었는데,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내 호러라는 장르에 대한 애정과 본인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철철 흘러넘치는 게 느껴졌다.




2018/7/18

칼+심장 _ Knife + Heart

얀 곤잘레스, 2018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기대했던 작품인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평이한 느낌이었다. 영화 속에서 촬영된 게이 포르노 장면들과 살인 장면, 그리고 주인공 안느가 꾸는 꿈 장면을 교차편집하는 감각적인 몽타주는 신선하고 좋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유사한 패턴이 반복되니까 감흥이 금세 떨어져 버렸다.

무엇보다 범인과 사건의 내막이 밝혀지는 과정에서의 긴장감이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주인공의 초현실적인 능력에 기대는 부분이 커서 스릴러 장르 측면에서 내러티브의 힘이 약해지지 않았나 싶다. 포비아 범죄와 얽힌 소재의 개성만으로 극복하기에는 너무 결정적인 단점이었다.

다만 주인공인 게이 포르노 감독 안느를 연기한 바네사 파라디 배우의 퍼포먼스만큼은 영화 내내 무척 좋았다. 그가 가진 매력과 힘 있는 연기가 영화 내내 반복되는 자극적인 장면들을 압도하며 영화 전체의 톤을 결정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포르노 촬영장에서 왕처럼 군림하며 중간에 난입해 남자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멋대로 휘두르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금지구역' 섹션에 포함된 작품치고 슬래셔나 성애 묘사의 수위 자체는 그다지 높지 않았는데, 오히려 잠깐 삽입된 연인 간의 성폭력 장면이 훨씬 불쾌했다. 길게 전시된 장면은 아니었지만 내러티브 상 굳이 인물들 간의 갈등 요소로 그 장면을 넣었어야 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2018/7/19

맨디 _ Mandy

파노스 코스마토스, 2017

내가 대체 뭘 본 것인지... 요한 요한슨 음악감독의 유작이라는 이유로, 흔해빠진 복수극으로 보이는 시놉과 불안한 남주 캐스팅(니콜라스 케..)에도 불구하고 예매했던 작품이었는데, 와... 진짜 이상하고도 이상한 영화였고 이제껏 본 어떤 B급 영화보다도 이상했는데, 뒤로 갈수록 그 약 빤 전개에 스며들어 근래 가장 크게 웃어제끼고 나올 수 있었다. 다만 그 웃음이 발동 걸리기까지 한 80분 정도의 환각에 가까운 '아무말' 장면들의 지루함을 견뎌내야 한다. 그걸 견디고 나면 온갖 장르 혼종의 액션 장면들이 줄지어 나오는데 그걸 시종 진지한 얼굴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하고 있는 걸 보며 정말 안 웃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되게 우스꽝스럽게 소개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한 작품만 꼽으라면 난 이 작품을 꼽고 싶다. 뭐 더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일단 너무 속 시원하게 웃고 나왔기 때문에. 차라리 그냥 두 시간 여 동안 락 사운드를 접목시킨 히스테릭하고 광기 어린 요한 요한슨의 음악을 영상과 함께 듣는다고 생각하고 봐도 나쁘지 않은 감상이 될 것 같다. 이번 부천에서 본 영화들이 대체로 음악만큼은 전부 좋았는데 그중 이 영화가 단연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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