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 story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좁은 소파에 누워서 꿈뻑꿈뻑 졸면서 함께 봤다. 그땐 로라 던 나오는 씬을 제하면 크게 재미가 없어서 상당 시간을 졸면서 보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사이 나도 이런저런 있어도 되고 없으면 더 좋을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오늘 혼자 다시 볼 때는 다큐 수준의 대사들에 울면서 웃었다. 심지어 내 기억 속 이 영화의 엔딩은 분명 셋이 함께 길을 걸어가는 거였는데, 이쯤 되면 오독이 아니라 영화를 안 봤다 봐도 무방하겠다.
결혼은 어렵다. 공교롭게도 내가 지금 작업 중인 두 편의 이야기는 모두 결혼을 다룬다. 3년 반쯤 전에 그러니까 결혼을 하기 전엔, 이 관계는 내겐 전혀 관심 없던 주제였다. 그런데 두 편이나 진지하게 작업을 해낸 걸 보면 심각한 준비 없이 뛰어든 이 결혼이라는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몇 개월 차이로 먼저 쓴 이야기는 이 관계를 참지 못하고 폭주해버리는 여자의 이야기다. 사랑에서 시작되었지만 부부라는 관계 속에서 점점 나를 잃어가는 여자는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는다. 내가 결혼을 하며 살게 된 도시에서, 글을 쓰며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으러 갔다가, 아기를 낳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채용하겠다는 말에 열 받아서 그 자리에서 노동청에 신고하고 빡쳐서 쓴 글이다. 그리고 이야기엔 담겨 있지 않지만 결혼 준비 과정에서 들은 헛소리들 때문에 분노가 소용돌이치고 있기도 했다.
이후에 쓴 얘기는 그래도 내가 왜 이 관계를 시작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내 선택을 긍정하고 싶었고, 나는 착한 척 어물쩡 넘어가 버린 부분들을 현명하고 솔직하게 따질 것 따지면서 헤쳐나가는 나보다 나은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친구들을 통해서 위로받고 싶었다.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는 실패해도 괜찮음에도 위로받는다. 남자 캐릭터를 내가 제대로 묘사해내고 있는가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있지만.
몇십 년을 달리 살던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상당 시간을 부딪혀 지내며 하나의 삶을 공유한다는 건 행복하고 성숙한 방식 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정신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인간들이라 소리 지르며 싸우는 게 아니다. 좋은 날 만큼 최악의 날들도 있다.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도 쌓이면 우울과 분노로 변하기도 한다. 이 항해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도 필요하고 경제도 알아야 하고, 도덕도 요구되고 상대 마음을 읽는 인문학적 소양도 필요하다. 둘 중 하나라도 그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몇 달 혹은 몇 해 뒤에 큰 풍랑을 맞게 된다.
나는 함께 하기 위해 서로 희생한다는 말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대부분 희생은 여전히 여자 쪽에서 이뤄진다. 언제 적 얘기냐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가정의 분란을 막으려면 여자 쪽에서 참으면 되고, 남자 기를 세워주면 된다. 가장 쉬운 방식이니까. 남자들은 생각보다 쉽게 자존심을 다치며, 여자들은 제 아무리 배우고 똑똑해도 수동적이기 쉽다. 가정의 평화라는 게 노력을 하지 않으면, 쌍방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런 방식으로 지켜진다.
나는 결혼 이야기의 엔딩이 참 좋았다. 그녀가 작품을 연출하고 에미상 후보에 오른 것, 남자는 떠나지 않을 이유가 확고했던 뉴욕을 떠나 터전을 옮긴 것, 둘 사이 희망을 보지만 섣불리 헐리우드 엔딩을 맺지 않는 것. 마지막이 롱샷이 아니라 스치는 차 안에서 두 사람이 클로즈업으로 보여졌다면 정말 끔찍했을 듯. 여튼, 이혼이라는 과정을 겪었을지언정, 자신을 지워내던 사람은 스스로를 찾아나가고, 상대를 자신의 여정과 권위 속에 쑤셔 넣을 줄만 알았던 누군가는 노력하는 모습이 건강해 보였다.
물론 우리의 삶은 영화처럼 세공된 형태의 내러티브를 따라가진 않을 테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삶은 지속된다. 우리는 우리 선택을 책임지며 살아갈 뿐이다. 수렁에 빠지더라도 일어나는 것, 강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무너진 터전을 다시 일궈내는 것, 나 자신을 지켜내면서 원하는 바를 치열하게 일궈나가는 것.
결국 나를 구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리고 내가 오롯하게 섰을 때 관계도 회복될 가능성을 가진다. 물론 애정이 남아있다는 전제 하에.
그래서 사랑은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