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리킴 Apr 28. 2024

우리 모두는 벌레다

방금 약간 열받으셨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eyShrIc4-_I


일요일 아침 테니스를 마치고 서브웨이 먹고 있는데 갑자기 추천을 받은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요약 및 해설 영상.


샌드위치를 먹으며 심심풀이로 보기도 좋을 것 같았고, 최근 읽는 책들은 모두 자기 계발/비즈니스 성이어서 그런지 모처럼 문학도 접해보자는 생각으로 링크를 클릭했다.


내용 요약:

1) 일 겁나 열심히 하면서 집안 부양하던 아들,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림

2) 가족들 절망, 아들 방에 가두고 관리/방치함, 생활 빈곤해지면서 다 같이 일하기 시작, 에어비앤비도 돌림

3) 하숙인들이 벌레 존재 알아챔, 계약 해지.

4) 이 이유 + 가족들 지침, 벌레(아들)를 내쫓기로 맘먹고 방에 감. 근데 이미 죽어있어서 눈물 흘림.

5) 가족들 더 더 작은 집으로 이사감, 더 이상 시달리지 않고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


상쾌한 일요일 아침에 야채 아삭아삭 씹고 있는데 벌레 일러스트가 나오는 영상을 보니까 조금 불쾌해졌다.

그래도 추천해준 이유가 분명 있을 것, 그리고 카프카란 양반이 썼으니까(카프카 잘 모름) '저 벌레로 시작해 모든 인간이 벌레로 전염되고 결국 지구는 벌레공화국이 되었는데 그게 바로 수 억 년 전부터 살아온 바퀴벌레였다 라는 SF는 아니고 더 깊은 의미가 있겠지' 하고 참고 끝까지 봤다.



후기


1. 존재와 소유


영화 기생충을 보고 영화관을 나왔을 때랑 느낌이 비슷했다. 불편한 진실도 건드리고, 동기부여도 건드리는 그 느낌.


여기서 얘기하는 벌레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조건을 달성하지 못한 존재

다.


아들은 갑자기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가족들과 감정을 나누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가족들에게 아들은 더 이상 금전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조건미달이다.


흑흑


그런 아들을 가족들은 2가지 모드로 대한다.

1) 존재 모드: 사랑과 희생을 함 (나중엔 방치하긴 했지만 그래도 식사도 주고 청소도 해줌)

2) 소유 모드: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남들 보기에 부끄럽다고 생각함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렇게 부대끼고 살다 보니 서로를 '사랑' 하고 '필요'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근데 이 문학은 그 자연스러운 것에 의문을 던진다. (역사와 전통으로부터 가스라이팅?이라고 되묻게 됨)


과연 우리는 필요나 조건 없이 존재만으로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또는 서로에게 조건만 맞다면 감정을 컨트롤하면서 지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꼭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질 필요 없다.

사랑과 필요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를 가지면 다른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가 필요해 가까이하면서 좋아하는 감정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고,

(예: 필요해서 테니스 라켓을 샀는데, 애정이 들어서 자주 손질해 주고 이름도 붙임(난 아님))

감정에 먼저 이끌려 사랑하면서 필요성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질문이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을 가까이하고 싶어 하는 감정이 '사랑'인가 '필요'인가

그걸 앎으로써,

1) 관계를 확실히 정립할 수도 있고

2)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더욱 주려는 시도도 할 수 있고

3) 나를 필요로 하는 냉정한 관계에서 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2. 수동과 능동


아들은 부모님 말을 잘 듣고, 5년 간 아파도 결석 한 번 안 했던, 집안을 하드캐리하던 워커홀릭이었다.

가족들을 위해 희생을 하는 '존재 모드'로 살던 아들이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수동적인 삶을 그렇게 '버티다' 결국 터져버렸고 그 결과 남들의 조건에 충족하지 못하는 몸상태가 되었고 결국 벌레로 변했다.


같은 양의 일을 하더라도 능동적으로 했다면 벌레로 변했을까? 벌레로 변하기 전에 시그널을 알아채고 잠깐 쉰다던지 어떤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까? 능동적이니까 말이다.

(일 많이 하면 벌레로 변신할지도 모르니 모두 조심하자)


결국 우리는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은 듣고 참고할 수 있으나 결국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


이상하지 않는가? 누군가가 내 인생 방향을 결정해 줬는데 그 책임은 온전히 내가 져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가족, 친척, 친구들의 '관심과 사랑'이 '원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들을 계속 사랑하려면 내가 결정하고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가지면 된다.



3. 개인적인 이야기 (영상과 상관없으니 스킵 가능)


영상 마지막을 보면 물질로만 보고 있는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동의한다.


너무 감사하게도 어린 시절 인도 유학에서 얻은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는 '외국인의 시선'인데,

이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은 다음과 같다:


1) 옛날부터 외세 침략으로 인해 나라를 지키면서 '우리끼리 DNA'가 그대로 내려옴.

2) 이 단일민족 국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과 조건을 비슷하게 만들었고 비교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함.

3) 비교하기 쉬운 환경은 경쟁에 최적화되었고, 옆 사람보다 하나라도 더 '소유'하려는 빡센 분위기가 조성됨.


물론 그 빡센 분위기와 높은 경쟁은 한국이 잘 살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행복해졌고 풍족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내면으로도 더욱 충만한 삶을 살려면 앞으로는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꼭 이것 때문에 한국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충만한 삶을 사는 강인한 분들도 많이 봤다)


그냥 옛날에 '세상의 다양한 곳을 보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는 삶을 살고 싶다.'라는 내 내면 목소리를 들었고 그것을 계속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군대 + 직장 생활까지 약 10년을 살면서도 한 편으로는 준비를 했다.

이사를 갈 때도 언제라도 떠날 수 있도록 자꾸 짐을 줄였고, 취미를 고를 때 기준은 '전 세계 싱크됨?'이었다.

그리고 결국은 다시 나왔다. 4년 전 한 일기에 괜히 눈에 자꾸 밟힌다고 썼던 싱가포르로.



급마무리 하자면,  카프카의 변신은


1) 주도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현재 위치 확인,

2) 내 주위 사람들을 소유보다 존재 자체로 더 아껴줘야겠다 라는 메시지

3) 나 또한 누군가에게 존재/소유 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지, 그런 관계에 감사할 줄 알고, 상처받을 준비도 하자라는 메시지


를 깨닫게 해 준 좋은 작품이었다.

(추천해주신 분께도 감사를!)


제목에 대한 답이 되는 듯한 짤


매거진의 이전글 패션은 과거의 내 선택에 대한 존중이자 책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