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와 길게 연애 못하는 편
어제부로 퇴사를 했다.
사직서를 낸 날부터 회사와 나 사이에 생긴 틈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양쪽 끝까지 비어버렸다.
물론 집에서 20분 거리니 언제든지 올 수 있고, 전 회사 동료들과 수다를 하러 올 수도 있지만,
마치 "나중에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처럼 쉬울 것 같지만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퇴사 매번 그 익숙함에서 멀어지는 허전함과 친한 사람들과의 멀어짐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사회생활하면서 5번째 퇴사였는데, 이번 퇴사 기념(?)으로 이제까지 겪은 모든 퇴사를 회고해 본다.
공군 장교였던 당시, 기지를 방어하는 내 업무는 힘들었지만 재밌었다.
매일 5km를 뛰었고 사격 훈련과 레펠 훈련으로 하루를 보냈다.
다만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결정을 하는 군대 특성과 추후 밟게 될 길을 가고 있는 선배 장교들을 보았을 때 내가 원하는 미래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의 기회가 훨씬 많을 것이라 생각했고 고심 끝에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연장 신청하지 않았다.
결국 퇴사(전역)는 3년 전부터 정해져있던 미래였다.
인지도는 높았지만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근무 문화 및 환경을 갖춘 회사였다.
(마치 군대를 전역하고, "어디든 군대보다야 낫겠지!"라고 생각한 나를 비웃는 듯한 환경이었다 하하)
같이 담배를 피우지 않고, 유흥을 즐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받은 갈굼은 점점 업무 관련 불이익으로도 이어졌다.
스트레스가 극심했고, 자다가 질식사를 할 뻔할 만큼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5개월만에 쫓기듯이 퇴사했다.
자유를 다시 찾은 나는 다시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운 좋게 비전공자를 채용하는, 영어 및 글로벌 관련 포지션을 딱 한 명 채용하는 연구원에 입사했다.
원래 공기업이어서 그런지 정부와 긴밀히 일을 하고, 20년을 다니면 평생 연금도 나오고, 평화롭고 안정적인 곳이라 사람들도 대부분 친절했다.
모든 것은 평화로웠고, 업무도 많이 없었고, 정시 땡 하면 퇴근을 했다. 마치 출근만 하면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
특히 코로나 시절이라, 주식은 폭락했고, 뉴스에서는 자영업자 폐업 관련 기사로 가득했던 시기니 더욱 비교가 됐다.
편했지만 마음 한편에선 불안했고 이런 질문들이 올라왔다.
나는 20년간 같은 출근길을 다닐 수 있을까?
그 후에 연금을 받으면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여기서 지금 하는 업무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
(공기업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문서 작성을 '한글'로 했다)
내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출근길 지옥철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디지털 노마드'라는 키워드를 찾아냈고, 장소적 자유를 누리며 일을 하려면 IT, 테크 쪽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테크 산업으로의 이직을 위해 퇴사했다.
예전부터 즐겨찾기에 추가를 해놨던 이커머스 회사였고, 마케팅을 해보고 싶어 그냥 지원해 봤는데 1달이 지나도 연락이 안 오더라.
그래서 그냥 떨어진 줄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다른 포지션으로 채용 중인데 적합한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그냥 면접 봤는데 돼버렸다.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하기도 전에 그냥 합격한 딱 한 곳, 그 회사로 갔다.
대기업 출신 마이크로 매니징 호랑이 팀장님 덕분에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그분 밑에서 큰 그림으로 생각하는 법, 로지컬 띵킹, 커뮤니케이션 스킬, SQL 등 정말 많이 배웠다.
무엇보다 테크 산업으로의 진입이 가장 큰 성과였다.
그러던 와중 근무하던 해외 사업부가 경영난으로 접게 되었고, 업무가 점점 모호해졌고 일을 만드는 일을 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그때 우연히 친구 인스타 스토리를 통해 싱가포르 내 채용 공고를 알게 되었고, 헤드헌터 친구의 도움을 받아 준비했다.
그리고 그냥 면접 봤는데 돼버렸다.
그냥 합격한 딱 한 곳, 그 회사로 가기로 결정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싱가포르라 3주 만에 퇴사 및 한국생활 다 정리하고 야반도주하듯이 왔다.
메타 플랫폼의 마케팅을 컨설팅해주는 업무를 했었는데, 여러 고객들의 비즈니스를 보는 재미도 있었고,
실제로 온라인 판매에 대해 지식과 스킬을 쌓을 수 있어서 정말 유용하다고 느꼈다.
특히 나중에 사업이나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려는 나에게는 더더욱.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나이대도 비슷했고 사람들이 다들 좋아 같이 어울려 다니는 것도 즐거웠다.
다만 컨설팅만 해주는 입장에서는 조언 및 추천만 해주지 실제 결과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다 보니 깊게 관여되지 않는 느낌을 받았고, 쌓는 경험도 '비교적' 얕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내 돈을 더 들여 광고 예산을 높이고 거기서 매출을 더 뽑아내던지, 낮으면 왜 그런지 연구하면서 고민하면서 소재도 바꿔보고, 타겟도 바꿔보면서 운영을 해야 정말 퀄리티 높은 실전 경험이다.
그리고 광고 운영 관련 지식은 부족하지만 성과는 잘 뽑아내는 고객들을 보면서,
프로덕트 놀리지도 결국엔 매출이라는 결과를 위함이지, '완벽한 프로덕트 놀리지 습득 후에 실행'에 매몰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인생의 진리가 여기서 또 나왔다. 완벽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완성하고 실행하면서 완벽에 가까워져야 한다.
('장전 -> 조준 -> 발사' 가 아니라 '장전 -> 발사 -> 조준 -> 재발사' 가 되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이직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더 좋은 여건에서 더 많은 기회와 책임을 갖고 싶어서이다.
회사 업무는 재밌었지만 항상 1분도 지각하면 안되고, 점심 시간도 기록해야 하며, 주 5일 오피스에 꼭 출근해야 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휴가 사용에 대한 제안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고, 인센티브 제도도 점점 직원이 공감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직원으로써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의 사건을 겪었고, 매니지먼트에게 실망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링크드인으로 한 회사의 HR에서 연락이 왔다.
원하는 계속 세일즈를 할 수 있고, 더 큰 그림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업무였다.
연봉 상승 및 주 3일 재택 근무 등 조건도 더 좋아졌다.
그래서 그냥 면접봤는데 돼버렸다.
그래서 그냥 합격한 딱 한 곳, 그 회사로 가기로 결정했다.
(인생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지만, 이 또한 발사 -> 조준 -> 재발사 라고 생각한다)
특히 면접 중 실무를 어떻게 하는지도 미리 보여줬고, 여러 면접관들과 얘기하면서 똑똑하고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 부분들도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앞으로도 내 노동으로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 환경에서 살아보려 한다.
퇴사 회고를 써보니 그때 당시에 내게 가장 중요했던 가치관이 보이고 어떻게 점점 바뀌어가는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명확하다면 이 또한 그로 가는 과정의 일부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