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특별한 걸 먹는 게 아닙니다
뭘 먹어야 할지 몰라 굶고, 라면으로 때우고, 가공식품 잔치를 벌이던 과거. 채식 6년 차인 지금은 매우 안정적이고 흡족한 채식 생활을 누리고 있다. 집 완공 후에는 텃밭에서 식재료를 직접 키워 자급자족하는 게 목표다.
여러 방식의 비건식을 경험해 본 바, 나는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는 쪽이다. 조리 과정도 최소화하는 편. 삶든, 굽든, 끓이든. 한 가지 방식이 좋다. 조리 도구가 2개를 초과하면 힘들다. 파스타 할 때를 빼곤 늘 하나로만 요리하는 편이다. 재료가 5가지 이상 되거나, 비싸거나, 구하기 어렵다면? 과연 좋은 레시피일까. 익숙한, 로컬, 제철 식재료가 최고다. 시중에서 쉽고 경제적으로 재료를 구하는 것이 채식 생활의 지속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
채식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예전엔 먹지 않던 것을 먹게 됐다는 점이다. 육식할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재료들이 눈에 들어온다. 예컨대 나는 대파를 절대 먹지 않았는데, (특히 스페인 북부 사람들이 먹는 대파구이 ‘깔솟’을 보고 저 사람들은 먹을 게 없나, 저 맛없는 걸 구워 먹네, 했다) 이제는 대파 없이 살 수 없다. 가지, 양파, 오이, 버섯도 지금은 주식이지만 예전엔 찾아 먹지 않던 재료들이다. 채식을 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식생활의 영역이 ‘확장’된다고 설명하는 이유다.
SNS에서 보는 비건식에는 믹서기나 푸드프로세서가 자주 등장한다. 여러 단계의 조리 과정, 조리 도구도 너무 많다. 재료나 향신료도 거의 열 가지 가까이 필요하다. 비건인 내가 봐도 어렵다. ‘easy, simple recipe’라더니. 화려하고, 눈길을 사로잡고, 분명 맛있을 거다. 하지만 누가 쉽게 해 먹을 수 있을까? 여러 재료를 갈거나 소스에 버무려 맛있게 만들기보다 재료의 맛을 그대로 드러내는 심플한 요리가 좋다. 화려한 비건식은 외식으로 충분하다.
우리 개들 밥도 식재료를 섞지 않는다. 채소와 고기를 잘게 다져 섞으면 당연히 잘 먹을 것이다. 가공 사료나 가공 화식이 원재료의 형태를 알 수 없게 만들어지는 이유일 텐데, 나는 철저히 그 반대 방법을 택했다. 고기 냄새에 채소를 숨길 게 아니라, 개들에게도 ‘먹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처음엔 당연히 고기만 골라 먹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이 무엇을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지 알아차렸다. 우리 개들이 파프리카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그렇게 알게 됐다.
이사 갈 집 근처에 버섯 농가가 여럿 있다. 가장 가까운 농가에서는 표고의 개량종인 송고버섯(또는 송화버섯)을 직접 구매할 수 있다. 어제 이웃집 심 선생님이 텃밭에서 쌈 채소를 가득 따주셨는데, 싸 먹을 버섯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길로 뚤레뚤레 걸어 버섯을 사러 갔다. 1kg에 만 원인데, 한 100개쯤 되는 것 같다. 곧 근처에 이사 온다고 하니 10개 정도 더 넣어 주셨다. 고기 마냥 쫄깃하고 버섯 대 부분은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장아찌를 한다고 한 여사가 마늘종을 수북이 사다 놓았다. 작년에 무대륙에서 구운 마늘종을 맛있게 먹은 적 있어 따라해봤다. 상희씨의 미국 선물 어니언 솔트를 솔솔 뿌려서. 구운 마늘종을 맛보자 회심의 미소가 번진다. 비싼 아스파라거스는 이제 안 사먹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