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양평 시골집 계약을 마친 다음 날이었다. 한 여사는 나를 어느 무속인에게 끌고 갔다. “얘가 겁도 없이 시골에 가서 혼자 산다는 거예요. 미쳤나 봐요. 좀 말려주세요.”
나는 심리 상담사라도 만난 듯, 되려 답답한 가슴을 툭툭 치며 눈알을 까뒤집으며 호소했다. “제가 서울에서 살다가는 화병이 날 것 같거든요?”
무속인은 양평보다는 북쪽으로 갔어야 잘 풀린다며, 우리 집 주변에 무덤도 있고, 계속 주변을 경계하며 살아야 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말만 귀에 담고 돌아왔다. “근데, 딸내미도 보통내기가 아니라서 걱정 안 해도 되겠어.”
의미를 부여하자면 정말 그런 일이 생기기는 했다. 벌레, 그리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데 3개월, 서울에서 온 새내기에게 텃새는커녕 아무도 관심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 3개월. 6개월간은 그 무속인의 말대로 주변을 경계하는 시간을 보냈다.
가로등 하나 없는 끝집이라 밤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멧돼지가 유리창을 깨고 쳐들어오는 건 아닐까. 개농장을 하는 남 씨 이장이 동물 구조하는 일을 하는 내게 앙심을 품고 우리 개들을 훔쳐 가거나 해코지하는 건 아닐까. 야밤에 담장 너머 나뭇잎이 움직이는 걸 보고 밖에 누가 서서 나를 훔쳐보는 줄 알고 심장 덜컥한 적도 있다.
그의 말대로 무덤도 집 주변에 듬성듬성 있었다. 그러나 산 자들이 무서워 도망쳐 왔는데 죽은 이들의 무덤이 무서울 리가. 무덤 속 이들은 자연과 하나 된 터라, 그들이 잠든 땅에 해 끼치지 않고 어울려 살아가면 뭐라 하지 않을 것이었다.
시골로 이사 가고 몇 주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뻥 뚫린 논밭 위로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가을 하늘이 펼쳐졌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멋들어진 산, 그 뒤로 또 다른 멋들어진 산과 산 뿐이었다. 새벽의 새소리로 잠에서 깼고, 일하다 눈이 쉬고 싶을 땐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을 보았고, 너무 많아 구름처럼 보이는 별들을 보다 잠들었다.
‘사람은 이런 걸 보고 살아야 하는구나. 30년 넘게 이런 걸 곁에 두고 살 생각을 왜 못 했지?’
우당탕탕 6개월이 지날 무렵이었다. 어느 초저녁 산책길, 살랑살랑 여유 만만하게 흔들리는 계피와 치토의 꼬리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을 피해 도망 다니거나 줄을 당길 필요도 없었다.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 개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우리 지금 되게 행복하다. 그치?"
어쩌면 영영 서울로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