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그 소리
개들 점심으로 당근, 브로콜리, 애호박, 양배추를 삶아 곁들여 줬다. 채수에 청경채와 케일도 살짝 데쳐줬다. 둘 다 청경채는 처음 먹는데 남은 채수 한 방울까지 싹싹 핥아먹었다.
나도 당근, 브로콜리, 애호박, 양배추, 청경채, 케일을 넣어 채수 잔치국수를 해 먹었다. 어제는 개들 점심에 주고 남은 오이와 파프리카로 오이 볶음밥을 해 먹었는데. 사료 회사들이 ‘휴먼 그레이드’라는 단어로 광고를 하던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휴먼 그레이드 아닌가.
매일 아침, 우리 셋은 햄프씨드 토핑한 수제 두유 그릭 요거트 한 그릇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럼 곧 차례대로 화장실에 간다. 먹는 게 비슷하니 우리의 위장은 연결되어 있는 걸까.
동물성 사료와 간식을 끊은 지 5년 가까이 됐다. 예전엔 사료를 그릇에 왕창 쏟고, 말린 오리 목뼈, 송아지 등뼈, 돼지 귀 등… 지금은 언급만으로도 끔찍한 뼈 간식을 던지고 도망치듯 출근했었다. 이제 육류는 최소화하고, 그마저도 개들이 눈치 못 챌 정도로 꾸준히 밑장빼기 한다. 줄인 육류의 자리는 렌틸콩이 대신한다.
우리 개들의 채식 위주 식사가 ‘동물 학대’ 아니냐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고민이 필요했지만 답을 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개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덜 주는 게 동물 학대인가? 아니면 내새끼가 좋아하니까 다른 동물을 공장식 축산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착취 살해하는 산업에 돈을 대는 것이 동물 학대인가? 후자는 ‘합법적 동물 학대’지만 법 뒤에 숨고 싶지 않다. 여전히 개들은 고기를 가장 좋아하지만, 애가 좋아한다고 마라탕과 탕후루만 먹이는 부모가 될 수는 없다. 그런 부모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만 봤다.
음식에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닭이, 돼지가, 소가, 연어가 어떻게 사육되고 어떻게 살해당하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채식을 시작하며 음식의 영양소와 열랑 만큼 ‘에너지’에 주목하게 됐다. 우리가 고기라 부르는 동물의 사체에는 항생제, 살충제, 호르몬제뿐 아니라 그들이 겪은 ‘비극’이 잔재한다. 더위, 추위, 불안, 공포, 절망, 슬픔, 고통. 이기적인 이유다. 그 부정적 기운을 개들이 삼키게 하는 일은 최대한 줄이고 싶다. ‘You are what you eat’의 원리는 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줄이기’다. 누구나 줄일 수 있다. 인간도 개도, 먹던 고기 덜 먹는다고 쇠약해지거나 죽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난 이미 한 줌의 재가 되어 있었을 테고, 계피가 나이를 잊고 저렇게 방방 뛰어다니지도 못할 것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도 스트레스와 음식 관리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 간편한 사료와 뼈간식을 요란하게 던지고 떠날 때보다, 느리게 차린 한 끼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그들의 삶이 훨씬 즐거워 보인다. 물론 그걸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즐겁다.
8월은 우리 개들 건강검진 하는 달. 작년에는 좋은 결과를 받았는데 올 한 해도 잘 먹고 잘 사셨는지? “맛있게 드시고 후기 부탁드려요.” 가끔 개들의 밥그릇을 내려놓으며 하는 농담.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