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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Oct 19. 2024

집짓기 트라우마


10월 9일, 새로 도착한 창호 설치가 시작되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한 직후, 지독한 두통이 시작됐다. 그렇게 고대하던 그 네모난 물건이 건물에 하나둘 달리는 모습을 보는데, 기쁘기는커녕 허탈하고 공허했다.


‘결국 이렇게 하루 이틀이면 만들 수 있는 걸 가지고 나는 꼬박 두 달 동안 피가 마른 거야?’

(*생산 라인을 타기만 하면 우리 집 규모의 창호는 하루 이틀이면 다 제작되는 수량이라고 한다. 발주를 늦게 하는 바람에 뒤 차례로 멀리 밀려난 것이다.)


이번 일이 내 마음에 만든 까마득한 절벽. 트라우마다. 이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간단한 물건 하나 사려고 제품 상세페이지를 보는데, 다 거짓말 같고 다 사기꾼 같다. 그러니 필요한 물건도 쉽게 살 수가 없다. 십수 번을 속임 당하고,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휑한 고립감이 한 사람을 꾹꾹 짓눌렀다. 그것도 두 달을 꼬박, 일주일 내내, 아침 낮 밤으로. 정신적 고문이었다.


‘앞으로 남은 공사 기간 또 무엇이, 또 누가 날 괴롭힐까. 이제 웃을 에너지도, 양보할 아량도 없는데.’


그 공포감에 딸려 온 아주 지독한 두통은 꼬박 열흘 동안 이어졌다. 정말이지 길고 무서운 통증이었다. 조금만 일이 틀어져도 생겨도 목덜미가 빳빳해져 머리가 지끈거렸다. 답답함을 참지 못해 자주 화를 냈다. 말이 예쁘게 나오는 법이 없었다. 머리가 눈알을 짓누르는 느낌에 모니터를 보는 게 고역이었다. 엄청나게 큰 혓바늘이 돋아 제대로 먹을 수 없고, 입맛도 없어 그 좋아하는 라면도 먹다 버렸다. 


이럴 땐 잠이라도 잘 자서 회복해야 하는데 눈을 감으면 그간의 서러운 장면들이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재생됐다. 듣지 않아도 될 상처되는 말들이 시끄럽게 재잘댔다. 해소되지 않은 억울한 감정들이 과포화되어 울어서라도 분출한 뒤에야 잘 수 있었다. 피곤이 쌓여 자고 싶다 생각할 때는 일감이 한꺼번에 몰려 쉴 수가 없었다. 진통제, 주사, 쪽잠으로 견딘 시간. 이제 통증은 내 머리는 놓아주었지만 목덜미 중간에서 찰랑거리며 언제든 위로 뻗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설움 위에 설움을 계속 덧칠하며 나아지지 않는 기분으로 보낸 시간. 나는 내가 만난 적 없는, 낯선 사람이 되어 있다.


더 상처받고 싶지 않기에 시간이 빨리 흘러버렸으면 좋겠다. 계피의 시간만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결코 온순한 성격은 아니지만, 상처받아도 잘 먹고 잘 자고 나면 금방 다시 건강해지던 원래 모습을 되찾고 싶다.


새집에는 좋은 기분으로, 좋은 기운을 달고 입장하고 싶다. 좋은 계절에 입장하기는 글렀지만, 청량한 겨울바람이 마음을 맑게 청소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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