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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나 Oct 19. 2019

가난이 무엇인가

백색도시 수크레의 길거리에서 보다

내가 이번 남미 여행, 특히 남미의 최빈국인 볼리비아를 여행하면서는 필연적으로 마주칠 것이라고 예상했던 장면이 있었다. 길거리에 늘어서있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 지나가는 누구에게라도 손을 벌려 하루를 연명하려 아등바등하는 그 처절한 장면. 원치 않지만 내가 외면한다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는 않는 그 가난한 자들의 존재는 덜 관광지화 된 도시에 오니 더욱 더 눈에 띈다.



가난은 그런 것이다. 가난은, 아무도 쳐다 봐주지 않는 작은 시루떡이 쌓인 나무 판자를 어깨에 메고서, 깨끗한 옷을 입고  손에는 장난감 칼을 들고 다른  으론 엄마손을 잡고 걸어가는  나이 또래의 아이를 아무런 감정 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헤진 신발을 신어서인지 발가락이 더러워진 채로 불법 DVD 복제 상점 앞에 걸린 모니터에서 나오는 라이온킹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아이 옆을 좋은 신발을 신은 또래 아이가 수십장의 DVD 담긴 봉지를  아빠 손을 잡고 지나가는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또래 아이를 태운 장난감 자동차를 밀어주다가  아이의 엄마가 카메라를 들이미는 순간 옆으로 비켜 서고,  '손님' 나중에 보며 기뻐할  있을 만한 사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보는 그 눈에는 어떤 부러움도 시기도 욕망도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추측건대 오늘 하루를 벌어야 내일을 살 수 있을 이 아이들의 머리속에는 '왜 쟤는 저렇게 사는데 나는..' 따위의 생각은 들어설 틈이 없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눈으로 당연한 듯한 태도로 자기네완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을 보는 것일 뿐이다. 그것이 이 나라의 가난이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마주하고도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라는 합리화를 한다. 거리마다 줄지어 앉아 손바닥을 내미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내가 지나가면서 만나는 모든 걸인들에게 다 돈을 쥐어줄 수는 없지 않나' 하며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이내 저녁엔 뭘 먹어야 할까 고민한다. 맛있는 식당을 찾아 가기 위해 그들 앞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한다. 그렇게 찾아간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뱃속에 기름덩이들을 밀어 넣고 있나. 이러려고 온 여행인가? 나에게 가난을 이야기할 어떤 자격이 있나. 헛구역질처럼 올라오는 자괴감을 잘 썰린 스테이크 한 조각과 함께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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