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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Oct 30. 2024

효율적인 실천

내 좁은 시간

     

새하얗고 맑은 결정체가 반짝인다. 손을 뻗어 줍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결정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간다. 누군가 커다란 자루에 든 꽃소금을 한 움큼 쥐고 뿌린 듯 밤하늘에 아름다움이 가득 박혀있다.     



침대 옆 기다란 창문을 활짝 열고, 빛 들어오지 말라고 애써 달아 놓은 암막 커튼까지 고이 접은 후 침대에 눕는다. 11시 40분이면 온 마을의 모든 불이 꺼지고 길목 숨어 눈치만 보던 어둠이 스멀스멀 집안 전체를 장악한다. 하루 종일 긴장하고 있던 목과 어깨를 푹신한 베개에 고이 올려 그대로 시선을 창밖 하늘로 돌리면 굵직한 꽃소금을 닮은 별들이 은하수를 이루고 있다. 괜히 손을 뻗어 집는 시늉을 해본다. 이렇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본 게 언제였던가. 졸린 눈을 비비며 애써 잠을 몰아내고 몇 분이고 하늘만 바라본다. 눈이 나쁜 탓에 안경까지 끼고 침대에 누워있지만, 불편함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눈을 뜨니 아침이다. 얼굴에 안경다리가 눌려 안경이 전체적으로 살짝 찌그러진 것 같기도 하다. 괜찮아, 어제 그렇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봤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처서가 지나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의 밤은 너무나 아름다워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커튼을 열고, 안경을 쓴 채로 침대에 누워 짭짤할 것만 같은 밤하늘을 음미하다가 잠이 들었다.     


나는 자기주장과 고집이 센 편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지 못하면 꿈속에서라도 해치워야 편히 잠들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 괴롭혔지만 꿈은 언제나 파국으로 치달았다. 치료를 받지 못한 앞니가 모조리 빠진다거나(2주 전부터 어금니가 아팠지만, 치과에 가지 않았다), 시간 내 도착했지만 바지를 안 입고 왔다거나(다음날 아주 중요한 미팅이 있었다), 화장실을 제 때에 못 가 방광을 움켜쥐고 길거리를 배회한다거나(화장실이 급했나 보다) 해결해야 할 일을 손 놓고 있는 순간은 늘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강박증과 고집 혹은 집착이라 할 수 있는 이런 부분을 나는 ‘책임감이 강해요’라고 포장하곤 한다. 회사 면접에서 ‘단점이 뭐예요?’라고 질문을 받으면 절대 단점을 이야기하지 않고 장점을 단점처럼 포장해 말하는 것처럼 그 편이 나를 더 긍정적이며 활기찬 청년으로 만들어 준다. 내 일, 그러니까 내게 주어진 일, 눈앞에 보이는 일을 해결하지 않고서 눈을 감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달렸다.     


슬프게도 ‘강력한 책임감’에 비해 늘 지구력이, 뒷심이 달렸다. 한마디로 끈기가 없었단 말이다. 피 터지게 달리다가 제풀에 지쳐 한동안 맥도 못 추리고 혼 빠진 사람처럼 다닌다거나 (지금 그런 상황이다) 보여준 열정에 비례해 더 상승하지 못하는 퍼포먼스로 인해 상대 얼굴에 스치는 실망감과 ‘너도 그럴 때가 있지’ 안도감을 읽을 때면 쓰라린 패배감과 굴욕감으로 괴로웠다.      


적당한 분배를 몰랐다. 하나에 빠져 미친 듯이 집중하다가도 체력이 달리거나 금세 시들해져 소홀해졌고 ‘내 길이 아닌 듯하군’ 놓아버리고 나면 그동안 시간을 왜 낭비했지 허무의 길에 들어섰다. 그래서 늘 신이 내게 부족한 시간을 할당한다고 생각했다. 남들 24시간 줄 때 나한테는 20시간만 준 것이 틀림없다.

“아니,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네.”

“아, 이번달은 시간이 없어.”

“왜 벌써 밤이야?”     


빠르게 가는 시간이 싫어서 귀촌한 주제에 나는 여전히 시간이 없다. 매일 텃밭에 나가 작물을 가꾸고 물을 준 다음 캠핑 의자를 펴놓고 앉아 햇살을 쪼이며 책을 읽어야지 다짐했지만 모든 조건이 갖춰진 환경에서도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어쩌다가 기분이 동해 시장에서 모종을 한 아름 사서 텃밭에 심은 날이 있었다. 일주일 내내 집에선 잠만 자고 출근하던 시기라 물을 잘 못줬는데 내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목구멍에 걸린 사과처럼 불편했지만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물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어두운데 어떻게 물을 줘. 내일 아침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주지 뭐.’


그렇게 일주일이 갔고 어느 날 저녁 꿈을 꿨다. 누군가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사라져 버렸고 나는 그 앞에 망연자실 서 있다가 화를 냈다가 호스를 길게 연결해 와서 엉망인 밭에 마구 물을 뿌렸다. 화가 난 상태로 잠에서 깨 씩씩거리며 거실 창문을 열어보니 햇살에 지친 모종은 기운을 잃은 것처럼 보였지만 밭은 멀쩡했다. 세수도 안 하고 서둘러 나가 호스를 길게 뽑아 흠뻑 적셔줬다. 물을 주지 않는 날, 밤늦게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소파에 기대앉아 멍하니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며칠 전 (멍하니 유튜브를 보다가) 시간에 관한 강연을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이었다.


“‘시간이 없어요’ = ‘우선순위가 아니에요.’라는 의미죠.”
“시간은 유연한(elastic) 성질이며 선택(choice)하는 거예요.”

강연자가 시간을 표현하는 단어는 인상 깊었다. 누구에게나 24시간이 아니라 유연한 성질을 지닌 시간과 유연성은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니.


“일(career), 관계(relationship), 나(self) 이렇게 3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서 당장 내년에 이루고 싶은 것들을 단어로 적어 보세요.”


왜 내년이지? 이번주, 이번달, 올해가 아니라?

불현듯 나를 돌아봤다. “나 내년부턴 이거 할 거야. 내년엔 어디 꼭 갈 거야.”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명언이 있듯 인간은 본능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을 미룬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로. 그런 이유에서 ‘내년’으로 기준을 설정하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술술 나온다. 금방 적을 수 있을까 우려를 비웃듯이 3개의 칸은 금방 찼다.      



올해는 이미 다 갔으니까 내년엔 꼭 소설을 써봐야지, 아, 일도 잘 돼야 하니까 마케팅 좀 잘해서 손님이 하루에 10명은 왔으면 좋겠다.(참으로 소박하다) 짝꿍이랑 어디든 낯선 곳으로 일주일 살기도 가고 싶고, 무엇보다 스스로 안정된 사람이 되어야 해. 종이에 가지런히 적어 놓은 목록은 실천하기 어려운 일보다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소원’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적어놓은 내년에 이루고 싶은 일을 오늘부터 당장 실천하면 된다. 하루 1시간이면 일주일에 7시간, 한 달에 210시간이나 된다. 노트에 적은 목록을 찢어서 테이프로 아무렇게나 벽에 붙여버렸다. ‘내일부터 꼭 실천해야지’ 결심한다.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침대에 몸을 뉘이고 나니 미묘하게 달라진 북두칠성 위치가 보인다. 지구 공전과 자전에 따라 별자리의 위치는 매일 미세하게 변화한다. 어쩜 이리 지구는 성실하고 부지런할까!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수십억 중 하나에 불과한 인간1로서 지구의 성실함을 따라가고자 내일부턴 꼭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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