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단단한 나의 것들
취향을 확립하는 일은 어렵다. 예를 들어 '음악 뭐 들어요? 좋아하는 뮤지션 있어요?'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예를 들어, '글렌 굴드요'라고 스스럼없이 답하듯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앨범을 술술 풀어놓는 사람을 동경한다.
'아 클래식 좋아하시는구나.'
'네, 56년도에 녹음한 글렌 굴드 바흐 앨범 자주 들어요. 앨범도 모으기 시작했죠.'
어쩌면 젠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대답일지라도 자신의 취향을 기꺼이 드러내는 콜렉터의 태도는 자신감이 넘친다. (남의 시선 따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지도) 보통 취향이 있는 사람들은 수집가다. 게다가 본인 취향에 맞는 잡동사니를 수집하니 준 전문가나 다름없다.
사람의 취향이 형성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지지부진하지만 일상에서 접한 정보와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다 보면 유기적으로 엮여 선호가 되고 결국 확고한 개인 취향으로 자리 잡기 마련이다. 비록 위스키와 어울리는 초콜릿을 수집하거나, 여행지 별로 향수를 수집하는 럭셔리한 취향이 아니라 '글렌 굴드요'라고 툭 던지듯 은근슬쩍 뽐내듯 자랑할 수는 없지만, '생면이 들어간 쌀국수만 먹는다'는 것도 사소하지만 내 취향이다.
또, 쌀국수 이야긴데 나는 '생면파'다. 쌀국수를 좋아하지만 아무 쌀국수나 먹지 않고 반드시 부들부들한 생면을 선호하는 확고한 쌀국수 취향을 갖고 있다. 내가 접한 초창기 베트남 쌀국수의 면은 큐브모양의 긴 육각면체였다. 우리가 잔치국수에 시판 소면을 사용하듯이 당시 쌀국숫집에서는 쌀로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 단단하고 두꺼운 기성 제품을 사용했고 딱히 쌀국수의 맛에 대한 기준이 없었던 내게 면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수가 올라갔는가, 숙주는 적당히 익혀져 있는가, 국물은 진한가 등 기본적인 부분만 지켜진다면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생면이 아니면 가게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뻣뻣한 건면은 맛도 덜할뿐더러 여러 번 씹어 삼켜야 하니 국물과 함께 맛볼 새가 없지만, 부드럽고 가느다란 생면은 목 넘김도 좋아 움푹한 숟가락에 국물과 함께 떠올려 꿀떡꿀떡 넘길 수 있다.
원래 베트남 쌀국수는 생면을 쓴다. 물과 쌀을 곱게 갈아서 크레페처럼 얇게 부쳐낸 다음 한 김 식힌 후 우리나라 칼국수 자르듯 길게 자른다. 보통 베트남 현지에서는 밤새 만든 생면을 새벽녘에 여러 쌀국수 식당으로 배달하기 때문에 손님들은 갓 만든 생면을 넣은 쌀국수를 즐길 수 있다. 아직 베트남에 가보지 못한 나는 현지에서 먹는 쌀국수 맛이 어떤지 궁금하다. 사실 쌀국수는 베트남뿐만 아니라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 다양한 국가에서 주식처럼 먹는 음식으로 생각보다 역사가 긴 음식이 아니라고 한다. 같은 쌀국수라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라오스 비엔티안에서는 두툼한 고기를 숭덩 잘라 듬뿍 고명처럼 얹은 쌀국수를 먹었다. 국물이 아주 맑아 우리네 설렁탕 먹는 기분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 관광객들이 해장하러 많이 찾는단다.
“경험컬렉터가 뭐예요? 그런 말이 있나?”
나는 스스로 경험컬렉터라 칭한다. 이런저런 경험을 수집하면서 취향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연관성 없어 보이더라도 수집하면 살면서 분명 도움이 된다. 쌀국수도 내 비루한 수집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동경하던 파리에서 머물던 시절 내가 맛본 최고의 음식도 쌀국수였다.
파리는 아름다웠다. 매일 밖을 돌아다녀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아름다움이 도시에 가득했고 먹어보지 못할 맛집들이 즐비했다. 정작 낯선 도시를 혼자 탐방하던 어느 날 불현듯 외로움이 밀려왔고 비싼 물가를 감당하겠다고 집에서 파스타만 만들어 먹는 현실이 처량해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쌀국수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심심하면 사 먹던 남의 나라 음식을 지구 반바퀴 뒤에서도 떠올릴 수 있다니,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지만 번뜩 떠오른 쌀국수 생각에 위장이 꾸르륵 요동치기 시작했고 급하게 포켓 와이파이를 켰다. 로밍도 아까워 필요할 때만 선불 포켓 와이파이를 켜서 검색하던 시절이었다. 에펠탑에서 로댕 박물관까지 걸어서 이동한 탓에 발바닥은 진작에 파업을 선언했지만, 고수와 향신료로 독려하며 쌀국숫집을 향해 힘을 냈다.
나와 전혀 다르게 생긴 사람들 틈에 끼여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알아들으려 애쓰며 커다란 그릇에 담긴 내 나라 음식도 아닌 쌀국수를 보며 감격에 젖어버렸다. 그 이상한 순간을 뜨끈한 국물과 꿀꺽꿀꺽 삼켰다. 8월에도 선선한 파리에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던 면과 국물의 감각은 어디서도 못해볼 내 생에 가장 이국적인 경험이었다. 파리의 그 가게도 생면을 썼다. 잔뜩 지친 내게 단단한 시판용 쌀면으로 만든 쌀국수를 내밀었다면 못 먹고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국물을 머금은 부들부들한 생면이 아직도 입안에 생생하다.
'저는 쌀국수를 좋아하지만, 쌀국수라고 다 먹는 건 아니에요. 생면을 넣은 쌀국수만 먹거든요. 거기에 고수를 왕창 올려서...'
다양한 장르에서 나만의 취향을 수집해 보자. 그게 가령 밀떡VS쌀떡 떡볶이 취향일지라도. 사소한 취향으로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