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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국수가 좋아서

사소하지만 단단한 나의 것들

by 밤 비행이 좋아

향신료 가득한 이국적인 국물에 취해 낯선 세계로 들어선다. 기분에 취하고, 맛에 취하고, 별세계 음식에 푹 빠져 현실을 홀라당 잊어버리고 자유롭게 유영한다. 팔다리를 이완하고 오로지 입안에 집중한다. 찌르르 코끝이 시큰거리고, 가슴께가 두근거린다.


나는 몸이 힘들 때면 엄마가 정성스레 말아주는 담백한 치즈 김밥이 먹고 싶고, 마음이 지친고 권태로울 때는 진하고 자극적인 쌀국수가 먹고 싶다. 이제는 두 메뉴 모두 보편적인 음식이라 길을 걷다가도 쉽게 보이고, 지하철과 연결된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 가도 늘 있는 흔한 음식이 되었지만, 김밥이든 쌀국수든 흔한 음식일수록 마음에 쏙 드는 식당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요즘 들어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아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 끼를 건너뛰고 다음 끼니에 더 많이 먹는 폭식을 일삼는다. 살찌고 건강 망치는 지름길을 겅중겅중 뛰어가고 있다. 끼니를 거르지 않더라도 햄버거로 대충 해결하고 마는데 다급하게 햄버거를 한입 가득 넣고 스스로 안쓰러워하는 아이러니한 행동을 한다. 뭐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거야.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사람인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시간이 없는걸.

또 핑계를 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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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돌보는 가장 현명하고 사랑스러운 방법은 온기 가득한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다. 스스로 아주 귀한 사람인 것처럼 좋아하는 음식을 식탁 한가득 차려 융숭하게 대접해야 한다. 그럴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을 때는 영혼을 위로하는 소울 푸드를 챙겨 먹어야 한다. 나는 나를 위로하고 싶을 때, 단골 쌀국숫집으로 향한다. 차 타고 1시간 30분을 달려가야 하지만 그 가게의 진득한 국물과 고수, 숙주, 레몬그라스와 여러 향신료로 점철된 '내 쌀국수'만 생각하면 고된 운전도 거뜬하다.


인간이 마음 깊이 갈구하는 무언가를 손에 넣지 못할 때 고뇌하고 탐닉하며 중독과 폭식으로 욕망을 드러낸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빈속에 우적우적 과자를 먹는다든가 잠자리에 들기 전 아껴놨던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파인트 통 1개를 끝장낸다든가 일부러 새벽까지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신다든가. 늘 목표를 향해 달리고 이상을 갈구하도록 교육받은 현대인들은 이렇게 먹고 마시는 행위로 불만을 분출한다.


내게도 갈구하는 깃발과 노스탤지어가 가득하다. 폭식이든 욕망이든 나는 쌀국수를 끊을 수 없다. 쫄깃한 면과 진한 국물에서 얻는 화려한 위로를 누가 포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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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 국물은 은은한 고수향을 품고 내 앞에 놓였다. 수증기를 타고 올라오는 온갖 향신료에 안경에 부연 김이 서려 마비되고 닦을 새도 없이 서둘러 국물 한 숟가락 뜨면 잔뜩 뭉친 양 어깨가 사르륵 풀린다. 부드러운 생면에는 간이 철썩 들러붙어 완벽한 상태였고 아삭한 숙주와 어쩌다 씹은 레몬그라스가 모든 세포를 휘어잡는다. 고수러버는 '사장님 고수 추가요!'를 외치고 접시 한가득 추가된 고수로 쌈 싸 먹듯 국수를 흡입한다. 입안이 얼얼한 이유는 향신료 때문일까, 아니면 만족과 행복인 걸까.


이렇게 또 하루, 내 영혼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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