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단단한 나의 것들
내가 어느 도시, 어느 장소를 찍고 돌아왔는지 되짚어 보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어제 먹은 저녁 밥상보다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12개월이었다. 정확하게 몇 월 며칠이라고 일자를 댈 수 없지만, 어느 계절에 어디서 뭘 봤고, 뭘 먹었고, 어디를 걸었고, 어떤 냄새가 났고, 하늘이 어땠는지 선명하다.
누구나 문득 그리워지는 과거의 순간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시간이 흘러 회상하면 아련하고 그리운 순간, 비록 후회되는 일일지라도 뇌리에 깊이 박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특정 기억이 있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두 눈을 감은 뒤 ‘기억아, 감각아, 살아나렴.’ 주문을 외듯 엄지와 검지를 슬슬 비벼 기억의 질감이라도 느끼려는 듯 긴장을 풀어본다.
새로 이사한 집 거실 창가에 흰색 원형 테이블과 브라운 색상 레트로 의자 2개를 제외하면 부엌 용품뿐이다. 나는 창백한 조명의 밝은 척이 싫다. 해가 져도 전구색 이케아 조명 하나만 밝혀 놓을 뿐, 집에 설치된 밝은 주광색 전등 스위치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자취하면서부터 쭉 그래왔다.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배경으로 마음에 드는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하지 않으면 제대로 집중할 수 없어 곤란하다. 그래서 해가 가장 긴 계절을 사랑한다.
어느덧 여름이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현관문조차 열 수 없을 정도로 자외선이 강한 날이 지속된다.
‘아, 여름이구나.’
선크림에 선글라스까지 단단히 무장하고 현관문을 열면 새로운 세상으로 길이 통한 듯 순식간에 밝아진 시야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어야 한다. 헬싱키가 떠오르는 날이다.
나는 사계절 중 여름을 제일 좋아한다. 여름에 유독 행복한 기억이 많아 그럴까? 공기 중으로 내뿜는 싱그러운 여름 냄새, 과한 줄 모르고 성장하는 초록 생명체들, 푹푹 찌는 더위와 높은 습도, 찐덕거리는 선크림, 사라지지 않는 태양. 모든 게 과한 여름이다. 비행하던 시절에도 여름에는 레이오버(하룻밤 머무는 일정) 도시도 겨울에는 턴오버(바로 돌아오는 일정) 도시로 변해버려 제발 여름에 가까운 유럽 도시들을 받기를 간절히 기도했었다.
유럽의 여름은 유독 반짝거린다. 해가 극단적으로 길거나 짧은 북유럽의 5월은 특히 아름답다. 작은 에어버스를 타고 헬싱키로 날아가는 일정에서 만난 한국인 부사무장은 내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면서 혹시라도 퇴사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회사에서 한국인은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인구 비중을 차지하지만 5년이 채 되기 전에 많은 이가 퇴사한다고 들었다. 한국이 싫어서 도망간 나는 한국인과 함께하는 비행을 선호하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적당한 거리’ 유지를 유난으로 취급하는 문화가 버거웠다. 불편했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 몇백 대씩 뜨는 대형 항공사에서 나는 유일한 한국인 승무원인 경우가 많았고 종종 한 명 정도 함께하게 되더라도 최대한 거리를 두고 말을 걸지 않았다. 내가 봐도 재수 없는 타입이었다. 인사 정도 건넬 수 있지만, 굳이 한국말로 살갑게 다가가지 않았다. 사실 상대방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딱히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기내에서 따갈로그어로 수다를 떠는 필리핀 여자애들이나 도착해서 어디든 딱 붙어 다니는 태국 여자애들과 달리 나는 그 누구와도 투어 약속을 정하거나, 점심 일정을 잡지 않았다. 어느 도시에서나 혼자였고, 그게 편했다.
나는 스몰 토크에 능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 사실은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변함이 없다. 면접에 붙기 위해 애써 활발하고 소통에 능한 척했지만, 차라리 외톨이가 되어 혼자 다니는 걸 선호했고 이리저리 말소리에 치이다 보면 금세 에너지가 빠져나가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주목받는 누군가(some one)가 아닌 조용히 출근하고, 여행하고, 퇴근하는 노바디(a nobody)가 되고 싶었다.
다만, 수용 인원이 100명 남짓 되는 작은 기종에서 기내 총괄을 한국인이 맡는다면 말이 달라진다. 어쩔 수 없이 형성되는 수직적 분위기, 높임말, 특정 어조에서 동료가 아닌 부하직원이 되는 기분이 든다. 베베 꼬인 과한 자의식이었을 수도 있다. 여유가 생긴 틈에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직급이 낮은 내게 어떤 의무감이 생겨 조언을 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건지, 그만두면 계획이 있는지, 지금 생활은 어떤지 무심한 어조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질려서 그만두고도 돌아오는 사람도 꽤 있어요.”
“왜요?”
“그리워서요.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다가도 유독 좋은 비행이 있잖아요. 좋았던 그날의 크루들, 손님들 뭐 그게 생각나고, 그때의 비행지가 생각나면 다시 돌아오더라고요.”
당시 나는 그만둘 생각도 없었거니와 만약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굳이, 왜?’
지금 나는 33도가 넘는 시골에서 강렬한 자외선을 맞으며 헬싱키 비행을 몰래 그리워하고 있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헬싱키는 반짝반짝 빛나는 곳이었다. 북유럽식 범죄 소설을 많이 읽은 탓에 어두침침하고 서늘한 도시 이미지를 떠올렸건만 정작 눈으로 목격한 도시는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윤슬 같은 곳이었다. 트램이 다니는 노면과 차도 그리고 인도를 가르는 차이가 거의 없는 얕은 연석으로 겨우 나뉘어 있을 뿐 거리 전체가 도보와 자전거를 위해 존재했다. 인도가 그 정도로 넓었다. 넓은 인도를 따라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의 대성당, 정교회의 우펜스키 성당, 해산물 마켓, 발레 공연과 오페라가 올라가는 오페라하우스, 도서관, 시벨리우스 공원과 호수, 근처 카페, 뜨거울 북극 태양에 얼굴이 벌겋게 익는 줄도 모르고 걸었다.
내 손가락에 느껴지는 햇살의 질감으로 그때를 떠올린다. 쉼 없이 걸어도 꿈에 그린 아름다운 것들만 계속해서 나오던 여정이 그리워진다. 그토록 걸었던 때가 언제가 마지막이었던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아련하다.
헬싱키는 달콤하고, 부드럽고, 매콤하고, 자극적인 시나몬이 잘 어울리는 도시다. 문화적 소비 방식으로 우리에게 헬싱키는 시나몬 롤의 도시로 각인되어 버렸고, 실제로 시나몬롤을 자주 즐기는 문화가 뿌리내려 유명한 베이커리가 많다. 언뜻 시나몬은 달콤해 보이지만, 집중해서 향을 맡으면 미묘하게 씁쓸하고 맵다.
모든 여행지가 내게 소중하지만 유독 헬싱키를 떠올릴 때면 여름의 공기와 질리도록 먹었던 헬싱키의 시나몬롤이 직결되면서 내 입안은 씁쓸하고 달콤한 맛으로 가득하다. 그 당시 내가 내린 결정과 실수, 후회, 경험이 껄끄러운 이물질처럼 굴러다닌다. 헬싱키에서 돌아온 이후 정말 열심히 일했다. 반짝반짝 빛나던 헬싱키의 햇살을 떠올리며 자극적이고도 부드러운 시나몬 향을 그리워하며. 특히 그 무렵의 기억과 감각이 생생한 걸 보면 나는 분명 행복했을 거다.
살면서 내린 수백, 수천 개의 결정을 두고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날아간 기회비용을 떠올리면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져 자책하게 되지만, 그럴 때마다 시나몬을 떠올린다. 선택받지 못한 모든 과거의 가능성은 어쩌면 더 달콤해 보여 현재의 나를 씁쓸하게 전락시킨다. 과거가 나를 붙잡고 늘어질 때는 시나몬롤 한입 딱 베어 물고 또 다른 선택과 마주한다. 나의 여름은 늘 반짝거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