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발레 수업
끈적거리는 기분 나쁜 느낌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새벽 3시다.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켜고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한 번 달아난 잠은 쉬이 찾아오지 않는다. 여름이다. 온종일 세차게 돌아가는 선풍기 날갯소리, 귓속을 때리는 매미의 울음소리까지 – 여름의 소음은 쉼 없이 귓가를 두드린다. 온 집안의 창문을 활짝 연 탓에 큰 공사 트럭이라도 지나가면 쌔앵 – 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어젯밤 강릉은 한밤중 온도가 30도를 넘는 열대야를 기록했다고 한다. 앞으로 이런 더위가 얼마나 더 이어질까,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몰려온다.
나는 이열치열이라는 사자성어를 아주 좋아한다. 더울 때는 더 덥게, 추울 때는 더 춥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조상들의 화끈한 조언 같아서 더울 때는 바다로, 산으로, 도시로 신난 똥강아지처럼 돌아다닌다. 여름에 얽힌 수많은 추억이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여름은 언제야?’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파리를 꼽는다.
유럽의 여름은 아름답다는 말로 부족했다. 쾌청한 하늘, 거름망으로 한 번 거른 듯 뭉툭한 태양 아래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의 활기찬 기운이 도시 전체에 가득했다. 일반 가정집에는 보통 에어컨을 달지 않을 정도로 불쾌한 습기가 없어서 끈적거리는 땀방울을 달고 다닐 일이 없다. 여름을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파리의 여름은 다를 게 분명하다.
8월, 여름의 한가운데서 에어컨도 없는 작은 스튜디오를 빌려 파리에서 휴가를 보냈었다. 피부가 탈 걱정도 하지 않고, 얇은 샌들 끈이 떨어지도록 센 강변을 따라 걷고, 루브르 미술관에서 그랑팔레까지 걷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지겹도록 여름을 만끽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어서 다음 날 해가 밝기를 바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기대하는 일정은 ‘발레 수업’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발레가 좋았다. 오르골 상자를 열면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도는 작은 발레리나를 보면서 선택받은 몇 명만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믿었다. 나와 다른 인종인 것 같은 아름다운 무용수들이 화려한 튜튜를 입고 춤을 추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고, 못 배우는 대신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호두까기 인형’을 보러 가자고 부모님을 졸라댔다.
대학 입시가 끝난 스물한 살 겨울, 발레를 시작했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는 상황이 인생의 끝이라고 좌절하던 시기였다. 문득 발레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동네의 유일한 발레 학원에서는 다행히 성인 대상 수업을 운영하고 있었고, 스스로 원해서 들어갔지만 어색하고 뻣뻣하게 굴다가 신청서에 이름과 나이를 쓰고, 수강료를 결제하고 건물 밖으로 나설 때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나는 발레리나처럼 팔다리가 가늘고 길지도 않은데...’
‘나는 원하던 대학에 못 들어갔는데 괜찮을까?’
‘지금 발레를 배워도 나중에 쓸모가 있을까?’
지금이야 그게 무슨 상관이며,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는 태도를 취하겠지만, 당시 나는 여러모로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고, 아직 인생을 잘 몰랐다.
나이는 어른이지만 아직 미성숙하던 시기, 타인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과하게 의식하곤 했다. 하기 싫고, 먹기 싫고, 말하기 싫었던 무언가를 기계처럼 실행했을 수도 있다. 발레 수업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발레복을 입은 내 모습을 타인과 비교하고 거울을 보는 척 곁눈질로 옆 사람을 훔쳐봤다. 무엇 하나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성인이 되어 배우는 발레는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유연성이나 근력보다 더 큰 벽은 ‘기억력’이다. 짧게는 30초 길게는 2분이 넘는 동작 순서를 기억하고, 근육은 동작을 기억하고, 귀는 음악과 박자를 따라가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훈련이 되어 있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학습과 훈련에서 멀어진 성인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집중뿐이었다. 한 달이 지나 동작이 익숙해졌고, 동작의 명칭이 귀에 들어왔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나는 녹초가 되었고 겨우 샤워하고 그대로 침대에 뻗어버렸다. 아름다워 보였던 춤은 너무 어렵고 힘들고 아팠다.
6개월이 흐르고 음악과 박자에 맞춰 순서를 외웠고 동작을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나를 보게 되었다.
‘벌써 90분이 지났구나.’
내가 나에게 흠뻑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내게 온전히 집중하는 경험을 그때 처음 해봤다. 어린 시절 오르골이나 공연장에서 보던 발레리나와 나의 몸뚱이는 전혀 다른 모양새지만 내게는 춤을 추는 내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파리의 발레 학원은 창문틀마저 열기 뻑뻑한 나무틀이었고, 마룻바닥도 얼마나 오래되었을지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로 온갖 생채기가 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아카데미였다. 나는 비기너를 위한 수업을 신청했지만, 수강생 중 비기너는 없었다. 파리 어디를 가나 그렇듯 한 무리의 일본인 여성들(고수들이다),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 몸 풀러 온 프로 무용수들이 한데 섞여 비기너(초급) 수업을 듣는다.
영화 속 장면처럼 오래된 마룻바닥에 기다란 바(barre)들이 지그재그로 놓여 있고, 국적도 실력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질서 있게 서 있다. 당연히 거울은 보이지 않는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볼 수 없다면 동작이 엉망일 텐데, 조급함이 들어 이탈리아식 영어를 구사하는 선생님의 순서를 놓쳐버렸다. 이 악물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비 오듯 땀이 흘러 레오타드는 진작에 축축해졌지만, 오래된 스튜디오에 당연히 에어컨은 없었다. 바를 치우고 센터에 나와서도 실력 좋은 초등학생 옆에서 팔다리를 제멋대로 허우적거리는 꼴이었지만 행복했다.
학원이 방학 맞이 휴일을 맞이하기 전까지 일주일 내내 출석했다. 여름 특강 쿠폰을 한 장도 버리지 않고 다 소진했다. 버스를 타고 마레 지구에 있는 발레 학원에 갔다가 2시간 수업을 듣고 땀범벅이 된 채로 센강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커다란 가로수 그늘에서 걷다 보면 쾌청한 바람에 땀은 식고, 온몸이 나른해진 상태로 파리의 여름을 걸을 수 있었다. 번잡하고 먼지 나던 마레 지구를 벗어나 오래된 고서적을 파는 북 스탠드에서 책을 구경하고, 목이 타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서 센강으로 내려와 비릿한 강물 냄새를 맡으며 지나가는 유람선과 건너편 건물을 구경했다. 그해 여름, 나는 여름이 더 좋아졌다.
나는 마음이 답답하고 이유 없이 슬퍼질 때 여름 파리의 발레 스튜디오 사진을 꺼내본다. 한여름, 반짝거리던 도시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에 푹 젖어, 내게 집중하던 순간의 감각이 찌릿 – 하고 전달된다.
파리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과한 환상과 진짜 현실이 부딪힐 때 발생하는 실망감, 스트레스, 정신적 충격.
나는 그 간격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웠다. 결국 중요한 건 도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몰입하는 ‘나’다. 파리 증후군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환상을 찾아 파리로 오는 이유는 환상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해 여름 품고 있던 과도한 환상과 현실의 괴리를 나는 극복했다. 여름을 만끽하고, 내게 몰두했고, 온전히 나 자신이 되었다. 나는 사진 속에서 파리를 보는 게 아니라 파리에 있는 나를 본다. 배경이 아닌 배경 속에 있는 나를 보게 되는 것이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던 발레 스튜디오의 내가, 바로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 여름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고, 여름이 오면 나는 다시, 그 파리의 여름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