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란속에서
채란이는 조카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참 좋아했다. 채란이의 말을 빌리자면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그래서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 어떠한 형태든 곁에서 돕고 같이 성장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채란이는 그렇게 유아특수교육을 전공으로 삼아 대구에 위치한 한 대학의 기숙사로 거취를 정했다. 그 때가 재혼한 부모의 집에서 눈칫밥을 먹던 동생을 무작정 데리고 와, 신혼집 방 한 켠을 내어주고 같이 살기를 삼사년 했을 즈음이었다. 여느 형제자매보다도 각별히 아끼던 동생을 먼 타지에 홀로 보내자니 입학을 축하하면서도 늘상 켕기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졸업을 하거든 지체 말고 언니와 형부, 조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와라 귀에 딱지가 앉게 일러둘 뿐이었다.
첫 기숙사 생활은 길지 않았다. 부실하게 먹는 날이 많아서인지 역류성 식도염이 찾아온 것이다. 원체 먹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를 취미로 삼았던 동생이기에 차라리 자취방을 구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대학가에는 이미 원룸촌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머물 곳을 구하는 것 또한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나는 채란이가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 살림살이를 할 때 필요한 것이라면 꼭 한두 개씩 더 구입하는 습관이 생겼다. 혹여나 생필품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세제부터 물티슈까지 박스 가득 채운 택배를 이따금 부치곤 했다. 그렇게 타지에서의 대학 생활을 응원하면서도 하루 빨리 졸업하는 해가 다가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는 졸업식에 가야 하니 꼭 미리 날을 알려달라 엄포를 놓으며, 아무래도 내 동생이 대견해 펑펑 울지도 모른다는 둥 주책스럽고도 시답잖은 소리를 늘어 놓았다. “언니가 날 키우기라도 했어? 아, 그건 맞지…. 아무튼 졸업식이 뭐 중요해”라며 대수롭지 않은 척 답하면서도 싫지 않은 얼굴로 슬며시 웃던 채란이었다.
올 해 채란이와 친하게 지내던 대학 동기 대부분이 졸업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졸업시즌이 다가오지만 아직도 겨울은 한 계절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날로 매섭게 추워지는 듯 하다. 어쩌면 지금의 나 또한 보통의 날들보다 유난스레 차갑고 시려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졸업과 입학처럼 만물의 끝과 시작은 무수히 계속됨을 익히 깨달았음에도, 다가올 따뜻한 봄이 지독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을 잊을까 두려워 더욱 날을 세우는 형국이다.
채란아, 너와 함께하지 못한 졸업을 마치 계절이 흐르듯 흘려보내고 이 겨울 또한 버텨내고 나면 새로운 봄, 새로운 날들의 반복 속에서 너의 빈자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날의 나는 온전히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너와 다른 시간에서 살아가는 나를 인정할 수 있을까? 수많은 의구심마저 괴로운 오늘과 내일을 감내한다면 그 끄트머리 언젠가 진정한 봄이 내게도 잔잔히 다가와 앉을까.
| 작품의 삽화는 AI 서비스를 이용하여 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