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란속에서
“아들, 엄마를 몇 번째로 사랑해?”
“세 번째!”
“첫 번째, 두 번째는 누군데?”
“첫 번째는 동생! 두 번째는 이모!”
‘동생’이라는 말도 ‘이모’라는 말도 구슬프게 울리는 밤이었다. 자기 전 큰 아들과 두런두런 나누던 이야기 끝에 가슴이 저릿해지는 걸 느끼며 불쑥 혼잣말이 튀어 나왔다.
“채란이 정말 많이 보고싶다.”
채란이가 더 없이 아끼는 첫 조카이자, 이모를 유난히 따르던 아들이었기에 나는 여태 아무런 소식도 전할 수 없었다.
“이모 어디 있는지 알면 우리가 주말에 잠깐 갔다 오면 될 텐데!”
“그러게…. 이모가 어딘지도 안 알려주고 갈 만큼 많이 아팠나봐.”
“이모, 치사해!”
올해 초등학생이 된 아들의 겨울방학이 가까워지며, 나 역시 대학원생으로서 한 학기를 마무리하던 즈음이었다. 방학을 앞둔 채란이에게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연락을 해대며 언제 오느냐, 기차표는 예매했느냐, 짐은 어느 정도냐 캐물었을 테고, 채란이는 특유의 퉁명스러운 말투로 어느 질문 하나 놓치지 않고 대답했을 것이다. 때론 잔소리가 너무 심하다며 귀찮아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그래야만했을 이 맘때에 하염없이 언니와 조카를 기다리게 하는 동생이라면 치사한 이모라 불리어도 제법 정당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스쳤다.
며칠 전 채란이와 가깝게 지내던 나이 어린 대학 동기에게서 장문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섬세하고 다정하지만 그리움이 가득 내려앉은 슬픈 글자들이 며칠이고 마음 깊이 머물렀다.
“채란언니는 항상 조카바보, 언니바보인 것 같았어요. 자주 조카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고, 언니분과 조카들 이야기를 할 때면 늘 행복해보였어요.”
그 아이만 그랬을까. 남겨진 우리 또한 여전히 이모바보, 동생바보인걸.
| 작품의 삽화는 AI 서비스를 이용하여 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