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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창성 Jun 02. 2023

‘피할 수 없다면 즐 먹어라’하며 여섯 해를 보냈다.

첫 직장 퇴사 이후, 역치 낮은 마음으로 얻은 일하는 기쁨들에 대해서

 어느새 여섯 해를 한 스타트업에서 보낸 ‘고인 직장인’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입사할 때 즈음에는 시술 한 방이면 쫙 당겨지던 피부에 당길 수 없는 주름이 몇 가닥씩 생겨나는 시점이다. 내가 나를 잊을 때까지 따라올 레퍼런스라는 숫자도 계속 가닥을 내더니, 검은 머리털만큼 풍성해졌다. 디렉팅 한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 개수 700개와 쌓아온 거래액 약 250억. 내가 메타인지를 100번 끌어올려 판단해도 훌륭한 숫자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숫자보다 즐겁게 얻은 것들. 일하는 기쁨에 대한 정리가 하고 싶어졌다.


 갑자기 웬 정리냐고? 6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퇴사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쌓아온 숫자는 버튼 한 번에 보이지만, 써두지 않은 [일하는 기쁨을 얻은 귀하게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은 잊힐 수 있으니까. 당 떨어지는 순간 냉장고 속에서 꺼내 먹는 초콜릿처럼, 다시 들춰보며 당 채우는 ‘나를 위한 글’이 될 것이다.


 듣기만 해도 부드러운 '사랑'이나 '여행', '치킨', '갈매기살', '토스트'등의 단어만 [말랑말랑]한 것이 아니었다. 일하는 것이 아무리 팍팍하고 퍽퍽하다고 하여도, ‘일’이라는 단어에서도 내 마음을 말랑하게 만든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이 말랑말랑한 마음, 일에서 얻은 기쁨을 굳지 않게 잘 어루만져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에 대한 역치가 낮은 사람, 사실 행복 감정선을 바늘 따위의 것들로 콕 찌르기만 해도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나의 앞길에 놓인 ‘일’이라는 단어에서도 분명 말랑말랑한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것들의 소중했던 감정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앞길에 놓인 '일'에서의 소중한 순간을 더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하는 방법은
아직 모르겠고요.
일하는 기쁨, 확실히 알았습니다.

분명 나와 같이 일하는 상대방에게 ‘너무 좋아요!’라는 소리는 많이 들었다. 협업하는 대상에게서 과분한 호평도 들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일하는 방법을 다 깨우쳤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누구에게 [일하는 방법]을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얼버무리다 끝날 것이다. 여전히 자신 없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분명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초연, 창성.’의 느낌을 풍길 수 있겠지만, 속으로는 '자신 없지만 티 내면 진짜 지는 거야.'를 외친다. 일을 하는 방법은 내 손에서 일을 놓는, 관짝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완벽히 알 수 없을 것 같다. (관짝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행복한 일을 할 사람이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전혀 모를 것 같은 일하는 방법, 아 다르고 어 다른 일하는 방법은 언젠가 깨우치겠다는 다짐으로 잠시 뒤로 한다. 그리고, 피할 수 없어서 즐긴. 아니 ‘피할 수 없으니 즐 먹어라!’ 하며 즐겨버린 일하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래 순서의 기준은 도파민 분비량이 많은 순이다.


1) 강연, 다수의 청중과 나누며 느낀 일하는 기쁨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원래 좋아하기도 하고, 멍석을 깔아주면 “나 멋있죠?”하며 굳이 피하진 않는 성격이다. 내가 여섯 해의 시간을 첫 회사에서 보내며, 가장 많이 기쁨을 느꼈던 순간들이 “나 멋있죠?”하며 강연자의 입장에 서던 순간들이다. 지금 확인해 보니, 총 35회의 강연을 했다. 가장 오래 봐온 브랜드사 대표님(코스메쉐프 이수향 대표)과의 온라인 강의도 여전히 라이브 중에 있다. 내가 배우고 연구한 크라우드펀딩과 브랜드, 이 지식을 나누는 순간들이 나에겐 매우 값졌다. 내가 소중히 얻은 것들을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엔프제(*ENFJ)다.

P&K에서 주관/주최한 COSMETICS INSPIRATION, 2022/12 | 이 날 강연 평가에서 1등을 먹었다.

 크라우드펀딩이라는 전문 영역에서의 강연이라 충분히 해낼 수 있었지만, 강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불안으로 다가온 순간들도 있었다. 2022년 12월의 일이다. 400명 가까이 모인 한 강연에서는 정말 많은 청중에게 큰 박수도 받았는데, 그날 뽕이 찬다기보다 불안이라는 마음이 차오르더라.

 "내가 오늘 엄청난 박수를 받은 것 같긴 한데(…) 나 자신이 거품 같아. 신나기보다 더 조심스러워지고, 불안하기도 하네. 어이없게."

 실제로 그날 불안한 마음에 내가 친구에게 건넨 말. 이런 [거품]이라는 표현에 항해사로 근무하는 내 친구가 아래처럼 이야기했다.

 "창성, 내가 바다에서 봤는데. 바다의 거품도 아주 작은 파도라도 있어야 만들어져."

 분명 불안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위의 친구의 말과 더불어 '정말 도움 되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같이 일을 할 수 있나요?'라는 말들에 강연이라는 순간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대학교 4학년, 아무것도 몰랐지만 다 아는 것 같았던(현재도 그렇겠지.) 그 시절. 해커톤 발표 시간에 덜덜 떨며 써진 발표 원고를 읽던 우창성이 강연이라는 키워드에서 일하는 기쁨을 얻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2) 성과, 그리고 인정으로부터 얻은 일하는 기쁨

 MD조직 특성상, 거래액이라는 숫자 그 자체가 1순위 평가지표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성과가 좋아지고 잘 떨어지질 않았다. 결국 줄기차게 1등도 해보고, 여러 카테고리에서 과분한 인정도 받아봤다. 이런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나의 회사’와 ‘브랜드사’의 성과로 내비쳐지더라도 행복했다. 결국 우창성이라는 사람을 해석하는 기준으로 쓰일 것이 분명했기에, 회사 안과 밖의 좋은 평판을 숫자로 만들어냈다는 것에서 큰 행복감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성과가 주는 행복이 더 컸던 이유는 ‘인정’이다. 인정으로 느끼는 기쁨의 역치도 상대적으로 매우 낮고 생각한다. 조금만 인정해 줘도, 바로 ‘나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행복했다. ‘나 잘하지?‘, '저 잘했죠?'를 내 근처에서 못 들어본 사람은 없을 거다. 상대가 날 인정하고 있는지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다. 이 마음을 회사와 파트너사들이 잘 알았는지, 늘 그 성과에 대한 인정과 감사를 남겨줬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커다란 힘이었다. 늦었지만 이 글의 틈을 빌려 “오히려 제가 더 감사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3) 나 외의 모든 것들의 성장으로 느낀 일하는 기쁨

 괜히 파트장, 팀장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버거웠다. 그래서 늘 29세 꼬꼬마 파트장, 30세 꼬마 팀장. 직함 앞에 일종의 [귀여운 단어]들을 붙여 굳이 가볍게 만들곤 했었다. 하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소리로 치면 매우 둔탁한 심장 울림들을 느껴본 순간들이 참 많다. 바로 나와 함께하는 동료들에게서.

 사실 동료들과 담배 한 대 같이 피우는 것, 회식 자리도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주로 했던 생각들은 간단하다. ’왜 사적인 감정을 동료들과 나눠야 하지? 그냥 일 이야기만 하면 안 되나?‘

 위와 같은 생각들은 오래가진 않았다. 사실상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료니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금지된 초특가 경쟁과 이마 탁 친 썰, 꼬꼬마 파트장, 꼬마 팀장을 지나며(…) 내가 먼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첫 팀장님’이라며 코멘트만 붙여도 나를 바로 울게 할 수 있는 팀원들의 성장은 발 끝부터 차오르는 감격스러움을 느끼게 했고, '나의 오랜 동료'라는 코멘트가 붙는 주변인들의 성장과 변화에서는 머리끝부터 온몸을 휘감는 전율도 느껴봤다. 결국 머리끝과 발 끝 사이, 너무 단단해서 완고한 심장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깊게 새길 수 있었다. 가끔 다른 회사에 재직 중인 친구와 후배들이 나에게 '배울 점이 없는 회사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이런 점에서 난 정말 함께 성장하는 좋은 동료가 있는 회사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깜짝 퇴사 파티를 해준 퇴사 선배님들
(왼-초) 오열하는 나의 가장 오랜 동료 유재하 이사님 | (오) 정말 최고의 팀원이자 최고의 눈물 퀸 장소현 PD님

 4월 중순의 마지막 출근일, 이 날 정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울렸다. '나 이 회사 잘 다녔구나!'라는 생각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순간. 나와 가장 오랜 시간 조직에서 함께한 유재하 이사님은 알 없는 안경 안으로 손가락을 꾹 눌러 눈물을 막았고, ‘첫 팀장님’하며 내 말이 답인양 나를 이해하던 장소현 PD님은 그날 와디즈의 휴지는 다 쓴 것 같다. 물론 나도, 준비한 마지막 인사를 못할 정도로 크게 울었다.

 떠나는 순간, ‘아 그냥 퇴사 번복 할까.’라는 생각이 들게끔 할 수 있는 조직이 얼마나 있을까?

 난 얼마 없다고 믿고 있는 조직에서, 여섯 해 동안 ‘성장하는 기쁨 그 자체’를 느꼈다.


4)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이 캐치프레이즈가 주는 일하는 기쁨

 말 그대로다. 좋아하는 일. MD가 되고 싶어서 청년 창업을 그만둔 채로 서울 길에 오른 만큼, 제품을 세련된 눈으로 큐레이팅하고 그 누구보다도 잘 팔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너무도 다행히, 황인범 소대장님(현재는 wadiz X 대표)의 탁월한 인적자원 큐레이팅을 시작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진 조직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디렉팅 했던 700여 개의 프로젝트를 돌아보니, 참 좋아하는 일들이었다. 좋아하는 일 그 자체를 하는 순간을 잘 즐겼다. 내가 너무 늘 재밌게 일하는 것 같아서 인지, 퇴사를 말리는 이들도 많았다.

  내가 꼭 만나고 싶었던 브랜드를 만났고, 나는 그들에게 악어새나 닥터피시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들을 잘 다듬어주며 내가 생존하고, 성장했다. 여전히 서울 어딘가를 걷는 내가 생각난다. 걸음 끝에 어떤 만남이 있을지 늘 설레었던 그 발걸음이 조금은 그립다.




 대학생 창업만으로 생계를 유지해 오고, 커리어를 쌓아오던 나. '너 그거 해서 뭐 하려고?'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잘 선택했다. 그 선택의 끝인 지금, 내가 본래 잘하는 영역을 더 잘 나눌 수 있도록 브랜드 에이전시 GIVER Roasters를 창업했다. 브랜드에게 필요한 아이디어를 잘 볶아, 추출해 준다는 뜻이다. 원래 그냥 막 해보거나 막연해하던 인물인데, 막다른 길도 뚫을 용기가 생겨 창업했다. 여섯 해의 시간 동안 ‘피할 수 없으면 즐 먹어라!’했더니 나온 결과다.

 

 이 글을 어찌 마칠지 몰라, 발행을 못하고 있었다. 어떤 관계와 말을 마치는 데에 가장 나이스한 방법은 감사 표현이라 믿는다. 나와 함께했던 파트너사들에게 보냈던 퇴직 인사 메일 중, 한 문장을 빌려 이 글을 마치겠다.

 



 "크라우드펀딩 전문가이자, 카테고리 프로덕트 전문가 우창성입니다."라며 늘 당차게 인사했지만요.

 늘 불안한 점이 참 많았습니다. 이 불안한 순간들은 여러분과의 협업이라는 레퍼런스가 잘 가려주고, 다독여줬습니다.

 회사라는 든든한 뒷배와 거리를 두고 있더라도, 저는 브랜드 생애주기 한 순간에 함께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계획입니다.

 언제든 저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 주세요.

 제 마음의 귀한 원동력, 제 삶의 강한 동력이 되어주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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