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안 분리수거장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쓰레기를 분리배출할 때가 아니더라도 아이와 함께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춘 적이 많다. 특히 플라스틱 수거함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데 그 이유는 멀쩡한데 버려진 물건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한 번 만들어지면 500년을 썩지 않은 플라스틱의 사용 기한 및 생애 주기는 음식만큼이나 짧게 느껴진다.
이렇게 금세 쓸모를 다하고 싫증이 나는 플라스틱이 처음부터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너무 많은 양의 플라스틱이 매일 같이 쏟아지고 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게 있었다.
빨갛고 크고 멀쩡한 원형 플라스틱 통. 아마도 블록 장난감을 담았던 것 같다. 단단하고 깨끗한 방금 버린듯한 따끈따끈한 신상 쓰레기였다. 저걸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안방 드레스룸 쪽에 빨랫 거리를 담아둘 빨래통이 필요한데 그걸로 쓸까. 아니면 안 쓰는 물건을 담아 창고에 넣어둘까. 가져갔다가 쓸모가 없으면 어떡하지. 그때 가서 다시 버리면 되니 일단 가져갈까. 순간 많은 갈등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도저히 널 두고 그냥은 못 가겠다. 나와 같이 우리 집에 가자. 참지 못하고 집어 들었다. 비누로 싹싹 닦아 햇빛 샤워를 마치고 나니 새것처럼 반짝였다. 빨래통으로 쓸까, 수납함으로 쓸까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상점 안 우산꽂이로 쓰게 되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에 유용하게 쓰임을 다해주길.
함께 걸어가다 쓰레기를 주워오는 엄마를 보고 자라는 아이는 누구보다 매의 눈으로 자신의 물건을 찾아낸다. 함께 마트 가는 길에 옆 단지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장난감을 찾아냈다. 그 많은 플라스틱 더미 안에 장난감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아이의 눈은 신기하게 장난감만 쏙쏙 찾아낸다.
다 엄마 보고 자란 탓이겠지만 내키지 않았다. 바로 어제 오랫동안 물려받아 쓰던 타요 자동차 버스를 당근 마켓에 나눔했다. 집안을 어지럽히는 장난감을 하나 정리해 기분이 홀가분했는데 이렇게 바로 또 자동차를 들여야 하다니. 우리 집은 언제 미니멀할 수 있을까.
장난감 가게에서 새 장난감을 사준 적이 드물다. 옷도, 장난감도 주로 물려받거나 중고를 구매해 쓰다 보니 아이는 새로운 옷을 입혀주면 누가 준 거냐고 먼저 묻는다. 가게에서 구경하다 그 자리에서 갖고 싶은 장난감을 고르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을 텐데 그걸 못하게 하는 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중고 장터에선 마음껏 하나만 고르게 해준다. 원하는 장난감을 당근 마켓에서 찾아 사준 적도 많다.
분리수거장 앞에서 한 손에 여러 개의 장난감을 집어 든 아이를 보고 고민하고 있는데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멘트가 날아와 내 귀에 꽂혔다.
"난 재활용된 걸 줍지~"
"우리가 다른 사람이 안 쓰는 걸 가져와서 쓰자."
백기를 들었다. 역시나 빨간통만큼이나 방금 버린 신상 쓰레기들이었다. 장난감이 깨끗해 보여 아이 손에 집어 든 걸 모두 집으로 들고 들어왔다.
장난감을 소독수로 닦고 있는데 아이가 분무기를 낚아채더니 자기가 하겠다고 열심히 뿌려댔다. 뭐든 자기가 하겠다는 다섯 살을 말릴 수 없어 가만히 지켜봤다. 고맙고 미안하고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겐 일련의 과정들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놀이이자 엄마의 가치관에 동조하는 실천인 것 같았다.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아이에게 말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나 자신이 뱉은 말을 행동으로 지키는 것, 그걸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이는 가끔 내가 비닐봉지를 들고 있으면 화들짝 놀라 묻는다.
“엄마 지금 비닐봉지 쓴 거야?”
“아.. 아니야! 이거 새거 아니야. 집에 있던 거 재사용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