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지구 환경에 대해 관심이 풍부한 아이는
대나무 칫솔 사용하기, 일회용품 줄이기, 분리수거하기 등
환경보호를 위해 실천해야 하는 일을 알고 수행하는 멋진 어린이임
유치원 입학 후 첫 학기를 보내고 선생님이 보내주신 종합 발달상황에 온통 환경 이야기뿐이었다. 오직 환경에만 관심 있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이 아이의 특징으로 파악하신 건 틀림없다. (아이 덕분에 선생님도 대나무 칫솔을 쓰시게 되었다.)
놀라우면서도 뿌듯했다.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할 때쯤 본격적으로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시작했고 벌써 다섯 살 중반이 지났다. 우리는 함께 용기 냈고 손수건을 썼다.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아이에게 얼마나 내재화되었을까.
가끔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아깝게 버려진 멀쩡한 물건을 집에 가져와 깨끗이 씻어서 쓴다. 주로 플라스틱 장난감이나 수납함 같은 것들이다. 쓰레기장에서 주웠다고 더럽고 오래되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방금 버린 신상 쓰레기들은 대체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사용감이 너무 없어 놀라울 정도인데 아마도 물건의 주인들은 당근마켓에 내놓는 것조차 귀찮아 집안 정리하며 버린 것 같다.
아이에겐 이 몇 번의 경험이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장난감을 가질 수 있는 보물창고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퇴근하려고 준비하는데 아이와 하원중이던 친정 엄마가 카톡으로 사진 한 장을 툭 보내셨다. 분리수거장 플라스틱 사진. 커다란 주차타워 사진이었다. 갑자기 왜 보냈냐고 묻지 않아도 보낸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이윽고 전화가 왔다. "이거 장난감 너무 큰 거 가져가겠다고 난리인데 어떡하냐." 아이와 한창 씨름 중이던엄마의 다급하고 곤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는 놀라셨지만 내겐 너무 익숙한 일이라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아이를 바꿔 달라고 했다. "어디 깨진 데나 더러운 곳 있어?"라고 물었더니 "없어! 깨끗해!"라고 단호하고 명쾌하게 대답하는 내 아이. 나도 경쾌하게 대답했다.
"그럼 가져가."
할머니와 주차타워를 들고 집에 가서 샤워기로 목욕을 마친 주차타워엔 이미 여러 대의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모두 좋아하는 주차타워. 너무 커서 중고로도 들이지 않았던 건데 이렇게 우리 아들이 공짜로 주차타워를 들였네.
토요일 아침 출근하는데 또 아파트 분리수거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버린 지 얼마 안된 따끈따끈한 신상 쓰레기가 내 시선을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책이었다. 하드커버의 그림책이었다. 한 무더기의 책들을 보고 몇 권 들춰봤는데 세상에 너무 깨끗했다. 웬만한 중고거래로 사는 책들보다 상태가 좋았다. 커버가 살짝 빛바랜 것 외에는 흠이 없었다. 안이 새것 같았다. 게다가 내용도 집에 있는 책들보다 반발짝 수준이 높아 지금 들이면 딱일 것 같았다.
급한 마음에 아파트 우편함에 잔뜩 넣어놓고 출근했다가 퇴근하는 길에 나머지 책들까지 다 들고 집에 들어갔다. 위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바깥 먼지 탄 부분을 소독수로 깨끗이 닦아주고 햇빛 샤워까지 끝낸 후 책장에 꽂았다.
모든 게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유치원에서 아나바다 시장놀이를 한다고 해서 꽤나 반가웠다. 새 장난감이 아닌 중고 장난감을 들일 수 있는 기회고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 교육이자 놀이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아이는 친구들의 물건 중 찜해두었던 변신로봇을 뿌듯해하며 골라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내용물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은근히 새것이 많았다. 비닐 커버도 뜯지 않은 미술놀이세트가 두 개나 들어있었다. 새 물건을 받을 거라는 걸 상상하지 못했던 터라 조금 당황했다. 내가 너무 순수한 아나바다를 기대한 걸까. 집에 사둔 게 많아서 보낸 거겠지.
아이와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이것저것 신중하게 고르고 있는데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 "엄마 나 이거 갖고 싶었던 거야." 방금 처음 봤는데 갖고 싶었던 거라고 능청 떠는 다섯 살이다. 아이가 고른 건 화려한 캐릭터가 그려진 상자였고 그 안엔 젤리와 스티커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젤리는 설탕과 합성첨가물 범벅의 불량식품이었다. 웬만하면 사줄까 했는데 도저히 용납이 안됐다. 이건 안된다고 말했다. 아이는 찡찡대기 시작했고 단호하게 안되다고 말했더니 떼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 나 안 사랑하지!"
"사랑해서 그래. 건강에 너무 안 좋아서 그래. 다른 거 사줄게."
다른 거라도 사주려고 대안을 찾는데 딱히 사줄만한 게 없었다. 아이가 좋아할만한 건 모두 비슷하게 불량식품이었다. 갈 곳을 잃어 헤매다 가장 두려워하는 스티커 코너 앞에 아이와 함께 섰다. 요즘 마트에서 파는 스티커들은 예전에 내가 문방구에서 사던 그것과 다른 차원이다. 사이즈가 크고 두껍고 플라스틱처럼 딱딱한 것들이다. 가격은 8천 원.
"엄마 돈이 없어. 약국 가서 스티커 사줄게."
약국은 그나마 좀 사정이 나았다. 5천 원이었다. 혼냈다가 어르고 달래 데려간 곳이라 빈손으로 나올 수 없었다. 결국 공룡 모양의 야광스티커를 사가지고 나왔다.
아이가 무언가 갖고 싶어하고 사달라고 하면 바로 사주지는 않는 편이다. 너무 비싸서, 몇 번 안 쓰고 버려질 거라서, 환경에 안 좋아서, 갖고 싶은 모든 걸 가질 수는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열 번 중 한두 번은 사줄 수 밖에 없다. 그것마저 안 하는 건 다섯 살에게 너무 가혹하니까.
친한 친구의 오빠가 어릴 때 아버지가 사촌에게는 새 자전거를 사주고 자신에게 헌 자전거를 사줬던 기억이 한이 되어 자기 아이들에게는 모든 제일 좋은 것으로 잔뜩 사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를 이야기해 줬더라면, 아이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가 유치원에서 농장 체험을 하러 가서 고구마 순을 가져왔다. 까만 봉지에 든 고구마 순을 손에 꼭 쥐고 된장국에 넣어달라고 말하는 아이가 귀여웠다. 그리고 가만히 아이가 든 까만 비닐봉지를 바라보았다. 새 비닐봉지를 사지 않고 물건을 살 때도 비닐봉지를 받지 않는 터라 오랜만에 보는 구김 적은 비닐봉지가 낯설었다. (여러 번 쓴 비닐봉지는 늘 쭈굴쭈굴하다.)
"우리 다음에 농장 체험 갈 땐 집에서 주머니나 비닐을 챙겨가서 거기에 담아오는 건 어떨까?"
"싫어 유치원에서 주는 거에 담고 싶어."
"그래 알겠어. 엄마가 강요하는 건 아니고 엄마의 생각들을 나누어주고 싶은 것뿐이야."
"알겠어."
도서관이나 키즈카페에 가면 정수기 옆에 얇고 작은 일회용 컵들이 비치되어 있다. 아이는 늘 그걸 쏙 뽑아 물을 담아먹고 싶어 한다. 내겐 달갑지 않은 아이의 행동이지만 그럴 때마다 정색하는 표정으로 아이를 대할 수는 없다.
"엄마는 쓰레기 줄이려고 텀블러 가져왔어. 여기에 담아 먹자."
"싫어."
"종이컵은 미세플라스틱 들어있고 쓰레기가 생겨서 그런 거야."
보통은 이 정도의 대화를 나누는데 대답은 반반이다. "좋아."라고 할 때도 있고 "싫어. 그래도 여기에 마시고 싶어."라고 할 때도 있다. 좋다고 할 땐 텀블러에 물을 담아주고 싫다고 하면 그대로 물러선다.
여기까지다. 더 이상 강요할 수 없다. 아이는 다섯 살이다. 적어도 5년 만큼은 자신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키워왔고 그만큼의 선택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섭게 혼내고 강요한다면 아이에게 환경 실천은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남게 되겠지. 아이의 생각을 내가 지배할 수 없고 아이는 내 소유가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걸 실천으로 보여주고 함께 생각을 나누는 것뿐이다. 무엇이든 완벽할 수 없고 아이와 함께 하는 길은 더더욱 그렇다.
"마음대로 해."
난 모르겠으니 네 마음대로 하라는 투가 아니다. 정말 진심을 담아 건네는 말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영역의 선택들을 마음대로 하게 되겠지. 한 살 한 살 클수록 급속도로 달라지겠지. 그래도 괜찮다. 나는 우리 아이의 마음을 믿으니까. 그 마음을 응원하고 함께 할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