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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양 Nov 18. 2020

회전초밥집



  며칠 전 일이다. 갑자기 회전초밥집이 가고 싶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게 중에서도 질이 꽤 좋은 초밥집이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전하는 레일이 있는 초밥집이 꼭 가고 싶었다. 아마도 그건 '초밥을 먹고 싶음'의 욕구 20%와 '내 옆에 접시를 쌓고 싶음'의 욕구 80%때문이었을 것이다. 핸드폰으로 회전초밥집을 검색했는데, 부근에는 회전초밥집이 없었다. 경기도 혹은 서울이 주 거주지였던 나였기에 이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회전초밥집이 없다니! 제일 가까운 곳은 30분 떨어진 이마트 푸드코트의 회전초밥집. 그러나 푸드코트의 회전초밥집은 뭔가 성에 차지 않은 적이 많았다. 결국 나는 남편을 꼬셔 50분 거리의 회전초밥집을 가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회전초밥집은 별로였다. 장인들이 눈 앞에서 접시를 올려주는, 내가 원했던 회전초밥집의 분위기가 아니라 차라리 초밥뷔페에 가까운 분위기였고, 종류도 광어나 연어, 참치 외 다른 활어회는 없는 그런 곳이었다. 튀김류나 사이드 메뉴가 많은 회전초밥집은 품질이 낮다고 보면 된다더니, 딱 그런 꼴이었다. 게다가 그 회전초밥집은 모니터를 보고 주문을 하면 해당 초밥을 레일을 따라 배달해주는 시스템이었기에 통상적인 회전초밥집에서 느낄 수 있는 두근거림조차도 없었다.(물론 현재 코로나 사태를 생각하면 이쪽이 더 안전하지만) 원래 회전초밥집은 내가 먹고 싶은 메뉴가 나에게 오기 전 누군가에게 선택받을 수 있다는 긴장감이 가미된 눈치게임이 매력인 것인데 말이다. 

  나와 남편은 그래도 둘이 합쳐 12 접시 정도를 꾸역꾸역 먹고는 밖에 나왔다. 그러고 보니 결혼 전에는 교대에 있는 회전초밥집을 남편과 자주 가곤 했다. 그곳은 아주 고급스러운 가게는 아니었지만, 요리사들이 다 신뢰감을 주는 외모를 하고 있었으며(KTX 타고 가다가 봐도 일식 주방장 비주얼) 맛도 나름 괜찮았다. 남편이랑 가면, 5번에 한 번 정도는 혼자 오는 분을 마주치곤 했다. 아무래도 그 근처가 회사도 많고 하니, 나는 제멋대로 그분들이 퇴근길에 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 회전초밥집을 방문한 쾌인들이라 생각했다. 한 번은 바로 혼자 드시는 분의 바로 옆자리만 비어 있는 덕에, 남편과 그곳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혼자 생맥주 한 잔을 시키고 (아마도) 음악을 들으며 레일을 돌아오는 회전초밥을 집어먹는 그의 모습은 꽤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나도 언젠가 혼자 회전초밥집을 와보리라 결심도 했었는데,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나는 사실 밥집을 혼자 가는 걸 꺼리지 않는다. 대학교 때도 혼자 밥 먹는 것이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한 일 없이 학생식당에서 자주 홀로 밥을 먹었으며, 회사에 다닐 때도 점심시간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 피곤해 혼자 먹은 적이 많았다. 사실 학생식당이나 한식집이야 별 것도 아니지만, 회전초밥집은 초밥이 회전해야 하는 특성상 오픈된 공간이 많고 서로 마주 보는 일도 생길 수 있으니 조금은 더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회전초밥집은 다른 초밥집들에 비해 고급진 식당은 아니라고 한다. 아무래도 애초에 레일을 도입한 의도가 회전율을 높이고 싼 값에 초밥을 공급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내 안에서 '초밥'이라는 음식이 가진 이미지는 무언가 좋은 일이 있거나, 가족들이 다들 모인 자리에서나 먹는 고급 음식이다. 때문에 혼자 초밥을 먹는다는 건, 스스로 돈을 벌면서 웬만한 음식은 다 사 먹을 수 있게 된 지금에도 사치로 느껴진다. 그래서 더 해보고 싶었다. 뭐, 사실 회전초밥집이 상대적으로 저렴해봤자 순대국밥보다 비싼 음식인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나는 회전초밥집에 가면 잘 먹어도 10 접시 내외에서 멈추고 만다. 가기 전에는 늘 '오늘에야말로 TV에 나오는 것처럼 옆에 그릇을 그득하니 쌓아두고 먹으리라'라는 결심을 하고 가지만 언제나 10 접시가 넘어가면 배가 불러 도저히 먹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참 아쉬운 적이 많았다. 빈 접시를 쌓는 행위는 기분이 좋다. 뷔페처럼 누군가 내가 쌓은 접시를 때마다 치우지 않는 것도 좋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얼마나 먹었는지를 눈으로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좋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먹어서 옆사람을 이기고 싶은 어이없는 승부욕도 생긴다. 내가 이 공간을 가장 잘 즐기고 있다는 걸 그런 식으로 증명하고 싶어 진다. 그러나 늘 배부름에 굴복하고 만다. 

  아쉽게도 이 근처에는 갈만한 회전초밥집은 없는 것 같다. 아쉽지만 이사를 가기 전까지는 그냥 동네 초밥집의 특선 초밥세트로 만족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사실 지금과 같은 코로나 시대에 회전초밥집의 시스템이란 말도 안 되는 농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전초밥집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은 레일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신경전과 수군거림, 동시에 묘하게 느끼는 동지의식을 느낄 수 있는 드문 장소로서 회전초밥집은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전초밥집을 나는 가끔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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