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단순 반복 작업으로 대표되는 육체 노동 대다수가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 생각했다.
8년 전인 2016년, 한국고용정보원은 국내 주요 직업 400여 개 가운데 인공지능·로봇 기술이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과 낮은 직업을 조사해 발표했다.
해당 조사에서, 한국고용정보원은 창의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예술과 관련된 일인지, 사람들과 많은 의사소통을 해야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조사 결과, 인공지능·로봇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업군으로 1위 콘크리트공, 2위 정육원·도축원, 3위 제품조립원, 4위 청원경찰, 5위 조세행정사무원, 6위 물품이동장비조작원, 7위 경리사무원 등이 꼽혔다.
반면, 대체 가능성이 낮은 직업군으로 1위 화가·조각가, 2위 사진작가·사진사, 3위 작가 및 관련 전문가, 4위 지휘자·작곡가·연주가, 5위 애니메이터·만화가, 6위 무용가·안무가, 7위 가수·성악가 등이 선정됐다.
이는, 육체 노동 의존도가 높은 직업군이 우선적으로 로봇에 의해 대체되며, 정신적 활동에 기반한 직업군이 보다 늦게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Z세대는 어떻게 공구 벨트 세대가 되고 있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의 젊은 세대들이 대학에 진학해 사무직을 택하기보다 용접, 배관공 등 기술을 배우는 직업을 선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전국학생정보센터(NSC)가 2018년부터 데이터를 기록한 이래, 미국 내 직업 훈련 칼리지에 등록하는 학생 수가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며, 건설 및 차량 유지 보수 등의 기술을 배우는 학생들도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그 이유로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다녀도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대학 졸업장이 부를 축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WSJ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AI가 ‘화이트칼라’ 직종을 대체할 수 있다는 연구가 이어짐에 따라, AI가 대체하기 힘든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했다.
최근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이 공동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인해 없어질 직업으로 변호사, 회계사와 같은 고연봉·고학력 직업이 꼽혔다.
그 다음이 엔지니어, 번역가 등 화이트칼라 직업군이었으며, 의외로 블루칼라 직종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의하면, 장차 10년 내 미국 전체 노동자의 80%가 업무의 10% 이상 부분에서 인공지능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구체적으로, 인공지능에 노출되는 정도 즉 인공지능이 업무의 50% 이상을 대체할 수 있는(노출도 50% 이상) 직업들 또는 거의 모든 업무가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한(노출도 100%) 직업은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기자, 애널리스트 등이었다. 엔지니어, 통역가, 작가, 번역가의 노출도도 60%가 넘었다.
연구진은 “인공지능은 데이터 분류와 창의적 글쓰기, 컴퓨터 코드 생성 등의 작업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준 반면, 블루칼라는 인공지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블루칼라 직종으로는 장비 운영자, 수리공, 정비사, 인테리어 직업자 등이 있다.
이와 함께, 골드만삭스는 “앞으로 10년 동안 전체 일자리에서 많게는 4분의 1이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한 자동화로 대체될 것이며, 특히 행정과 법률 분야에 영향이 가장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육체 노동을 의미하는 ‘블루칼라’ 직종은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발전에도 쉽게 대체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됐다.
실제 양상과는 다른, 육체적 활동이 정신적 활동보다 더욱 빠르게 대체될 것이라는 우리의 인식은 그동안 육체적 활동보다 정신적 활동이 우위에 있다고 인식한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로봇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공장 등에 로봇이 들어서며, 오로지 인력에만 의존하던 노동 구조를 어느 정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육체 노동이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종말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정반대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생성형 인공지능이 생겨났다. 이후 기계들이 대체하지 못할,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져왔던 예술 등 정신적 활동 영역에 인공지능 기술이 선도적으로 침투하고 있다.
육체적 활동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겨져 왔던 정신적 활동들이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에 의해 먼저 대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육체적 활동을 구현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더욱 어렵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우리의 인식과는 다르게, 정신이 육체보다 고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세밀함을 정신이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사람의 몸은 신비롭다.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육체는 한없이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눈으로 볼 수 없는 정신에 버금갈 정도로 복잡하다.
어쩌면, 우리는 인류의 육체가 진화해왔던 오랜 세월동안, 육체가 해내는 복잡한 일들을 얕잡아 봐왔는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연구와 기술 발전 양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지켜봐야 알겠지만,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사회가 떠들썩한 요즘 일반적인 인식과 다른 흐름이 나타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