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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Lee Jan 11. 2019

Dr.Lee의 미국 수의사 도전기

심장이 콩닥콩닥

[Dr.Lee의 좌충우돌 미국 수의사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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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는 오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느낀다. 신체 검사를 하면서 동물의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눈으로 봐야 하고, 심장과 폐에서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 잘 들어야 하며, 촉진을 하면서 정상과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나 손으로 느껴야 하고, 귀나 상처 부위 같은 곳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킁킁거려야 한다. 생각해보니 맛은 볼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가끔씩 개 사료나 간식이 어떤지 직접 먹어보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이중에서 ‘듣기’가 강조되는 부분은 심장을 청진할 때이다. 수의대 학부생일 때 기억 나는 시험 한 가지를 고르라면 Heart Murmur(=심잡음)의 종류를 구분하라는 듣기 시험을 뽑을 것 같다. 심잡음이란 심장에서 나는 비정상적인 소리로, 간단히 말하면 심장을 통과하는 혈액이 비정상적인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내는 소리이다. 개 또는 고양이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심장박동을 들으면 정상적인 아이들에서는 한국적인 표현으로는 콩닥콩닥(?) 소리가 들린다. 미국에서는 이것을 dub~lub~dub~lub이라고 표현을 하긴 한다.  심잡음이란 이 정상적인 소리 이외에 다른 ‘잡음’이 들리는 것이다.


심잡음의 종류는 원인에 따라서 다양하기 때문에 학부 때 시험에서는 오디오를 통해 나오는 심장 소리를 듣고 심장의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맞추는 시험이었다. 쿠앙쿠앙쿠앙~~ 과 같은 소리를 내는 어떤 심잡음은 매우 자명하기 때문에 쉽게 맞출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심잡음은 시험 때 나오는 오디오가 연습문제에 있던 오디오와 똑같은 wmv파일이기 때문에 그냥 눈치 상 때려 맞췄지 그냥 랜덤하게 문제가 나왔으면 못 맞췄을 문제들인 것 같다.  


본과4학년 때 로테이션을 돌다 보면 대학원 선생님들이

“여기 와서 이 환자 심장소리 들어 봐요. 이게 심잡음이예요”

라고 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학생들은 하나둘씩 와서 심잡음으로 이미 판명이 난 아이의 심장소리를 청진기를 대고 들어보고는 했었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내 청진기로 들어도 정상과 도대체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았지만, 뭔가 나만 못 들었다고 하면 쪽팔려서 그냥 들은 척하고 넘어간 적이 많았다.


    지금은 심잡음을 이전보다 훨씬 잘 듣기에 가끔 학부생 때는 왜 그게 그렇게 안 들렸을까 생각해 보고는 한다. 하나는 경험의 유무인 것 같다. 영어 듣기를 할 때에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단어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처럼, 심장소리도 자주 들어야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다. 학부생 때는 뭐 하루에 많아야 4마리의 심장 소리를 청진했지만, 미국 수의대 시절과 지금은 하루에 최소 20마리의 심장을 청진한다. 대부분의 개는 심장이 건강하기 때문에 정상소리를 계속 듣다가 비정상을 딱 들으면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비교, 대조군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실험결과가 나오는 것처럼. 


   하지만 다른 이유도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청진기’이다. 뭐 목수는 연장 탓을 안 한다고 하지만, 내가 느끼는 청진기의 능력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 학부생 때 쓰던 10만원짜리 청진기는 심장이 뛰고 있구나 수준으로만 소리를 전달해 주지만, 지금 쓰는 청진기는 미세한 잡음도 훨씬 잘 들을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정말 임상을 하고 싶은 수의대생들에게는 처음에 살 때 그냥 좋은 청진기로 사라고 조언을 하고는 한다. 어차피 나중에 제대로 하려면 좋은 것으로 사야 하니까.  


   모두가 연휴를 즐기는 크리스마스 이브 때였다. 다른 회사원들처럼 휴가를 즐기지는 못했지만, 보통의 영업시간보다는 일찍 닫는 날이었기에 들뜬 마음으로 진료를 하던 아침 8시30분에 한 보호자로부터 개가 숨을 잘 못 쉬는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그날 예약은 모두 꽉 찼기에 주변 동물 응급실로 얼른 가라고 말하고서 진료를 하고 있는데, 9시쯤에 보호자가 개를 데리고 우리 병원으로 왔더라. 이미 개가 병원에 온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보낼 수도 없고, 숨을 못 쉬는 것을 보호자가 알아챌 정도면 응급상황이기 때문에 바로 진료실로 데려오라고 했다.

   강아지는 14살짜리 요크셔테리어 였는데, 배의 모든 힘을 짜내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숨을 못 쉬는 경우 가장 크게 호흡기 또는 순환기에 문제가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요크셔테리어와 같은 작은 강아지들은 나이가 들면서 기관이 약해져서 공기가 폐로 가는 통로가 작아지는 기관허탈이 많은데, 이때에는 기관을 조금만 자극해도 거위 같은 소리를 내면서 기침을 해대는 경우가 있다. 순환기 쪽의 문제로는 심장 왼쪽에 있는 두개의 방을 열고 닫는 ‘문’(=이첨판)이 약해지면서 혈액이 폐로 역류하면서 생기는 병 (=울혈성 심부전)이 있다. 폐는 원래는 공기가 차 있어서 혈액과 산소를 교환해야 하지만, 혈액이 역류하여 폐를 채우면 산소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어서 숨을 잘 못 쉬게 되는 것이다.

   작은 요크셔테리어는 기관을 조금 자극하자마자 기침을 연달아 해대서 일단 기관허탈이 진단목록에 올라갔다. 그리고 청진기를 대서 심장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심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깔끔하게 콩.닥.콩.닥이 들려야 하는 심장소리가, 이 아이에서는 ‘콩’과 ‘닥’ 사이에 슉~ 소리가 들린다고 해야 할까? ‘콩’과 ‘닥’ 사이에 슉~ 소리가 들린다는 것 자체가 심장의 방 사이에 있는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서 혈액이 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는 폐를 청진기로 들었는데 여기도 문제가 있었다. 폐에서는 보통 공기가 지나가는 쌕~쌕~하는 소리만 들려야 하는데 이 아이에서는 공기포장 뽁뽁이를 굴릴 때 나오는 ‘뽀독, 뽀독’ 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정식 명칭으로는 Crackle이라고 하는데, 폐에 액체물질이 차면 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심장의 혈액이 역류하여 폐에 찬 것이다.

    어쨋거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바로 X-ray를 급하게 찍고 개는 산소 케이지에 넣었다. X-ray 영상을 보니 역시나 심장 크기는 커져 있고, 원래는 공기만 차 있어서 X-ray에서는 까맣게 보여야 할 폐가 혈액의 역류로 인하여 뿌옇게 바뀌어 있었다. 기관도 정상보다 확연히 좁아진 부분이 X-ray 상으로 보였다.

   숨을 잘 못 쉬는 환자를 막상 처음 맞으면 가장 쉬우면서도 기본적인 것을 생각 못할 때가 있다. 그것은 환자가 산소를 잘 교환할 수 있도록 일단 뭘 하고 있든 간에 산소케이지에 넣든 산소 호스를 코에 대든 해서 산소를 공급하는 것이다. 이게 생각으로는 당연해 보이지만 막상 내 앞에서 숨을 쥐어 짜는 개가 있으면 처음에는 산소케이지 생각이 안 떠오를 수 있다. 내가 미국 수의대 로테이션을 돌 때 그래 봐서 잘 안다. 모든 환자에서는 직접적인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보호자 동의도 받아야 하고 서류에 싸인도 받아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미국 수의대에서 숨을 잘 못 쉬는 환자를 레지던트 옆에서 그냥 데리고 서 있으니까 레지던트가 나한테 빨리 산소케이지에 넣지 않고 뭐하고 있냐고 처음으로 조금 짜증을 냈었던 것이 그때 나에게 큰 깨달음 같은 것을 주었던 것 같다.

    요크셔테리어의 주인은 바로 치료에 동의를 했고, 강아지는 산소케이지에 머물면서 폐에서 물을 빼주는 주사를 맞았다. 이브 날에는 우리 병원이 평소보다 일찍 닫기도 했고, 보호자가 더 정밀한 심장 진단을 받고 싶어해서 문 닫을 즈음에 더 큰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 강아지를 아침에 데리고 온 것은 여자 주인이었는데, 밤에는 의사인 남편과 함께 와서 진단과 치료를 다시 설명해 줘야 했다. 솔직히 의사가 주인인 개들을 진료할 때는 평소보다 더 긴장이 되고 혹여나 꼬투리 잡지는 않을까 내심 불안하기는 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지금까지 만난 의사 주인들은 수의사로서의 내 의견을 존중해주고 따라 주어서 처음보다는 조금 부담이 덜하기는 하다. 오히려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의료계통의 젊은 학생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나에게 쏘아붙이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어쨋거나 작은 요크셔테리어는 다행히도 심장약을 먹으면서 다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솔직히 일반 병원 수준에서 보는 환자들 중에 생명과 직결되는 환자는 일주일에 많아야 한 두마리 있을까 싶다. 물론 다른 일반 환자들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던 환자를 치료하거나 조기에 예방했을 때 수의사로서 보람이 더 큰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에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데 경험만큼 소중한 자산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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