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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박 Sep 25. 2018

이런 기분, 이런 느낌, 사랑일꺼야.

그림에세이






2층 그 교실엔 온통 후박나무 이파리가 햇빛에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창을 가득 메웠었다.

짧은 단발머리를 한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나는 교실 뒤쪽 창가 자리에 배정됐었다. 모든게 낯선 가운데 그 자리, 그 창가, 그리고 창가를 가득 메운 후박나무는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것만 같은 안도감을 주었다. 역광을 받아 햇살이 투영될 때면 연한 연둣빛 햇살이 어김없이 내 책상 위에 쏟아져 내렸다. 나뭇잎의 질감마저 느껴질 듯한 빛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미사여구를 다 주어도 좋을 찰나였다. 오래된 세월만큼 빽빽하고도 수북히 들어찬 잎새들은 하늘을 볼 수 있는 틈 한 점 내주지 않을 정도였고, 듬성듬성 커다랗고 하얗게 피는 꽃도 좋았으며, 꽃이 지고난 자리에 씨앗처럼 맺힌 붉은 열매에선 학교 앞에서 팔던 달큰한 지우개 향이 났다.


학교는 묘한 구조였다.

언덕 위 산새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학교라 우리 교실은 건물 정문에서 들어올 땐 2층, 건물 후문에서 들어오면 1층이었다. 그래서 그 곳은 나무 높이에서 후박나무의 하루하루를 함께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교실이었고 다시 그 교실의 창가 자리가 내 자리였다는게 몹시도 좋았다. 아이들은 바다가 보이고, 사람을 개미만하게 보일 정도로 커다랗고 풍성히 꽃을 피워내던 벚꽃들 혹은 인천 시내의 밤 야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등에 열광했지만 내겐 여고시절 3년 동안 언제나 1위의 풍경은 그 교실, 그 창가, 그 후박나무였다.



반짝거리는 열일곱살, 그녀와 난 교환일기를 주고 받았다.
후박 잎이 너무 예뻐, 후박 냄새가 달큰해.
그녀에게 끊임없이 후박 얘기를 했었다.

네 글씨에서 후박빛깔이 날 정도라고 그녀는 말했다.

집 방향이 같아 하교를 늘 같이 하던 우리는 일기 덕분에 말하지 않아도 눈빛을 읽어내릴 만큼이나 퍽 가깝고도 가까운 사이가 됐다. 아이들은 우릴 단짝이라 불렀다.
그녀는 어느 날,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화원엘 갔다한다.
그리고 씩씩한 목소리로 ‘후박 하나 주세요-‘ 했단다.

내가 후박이 후박나무란 얘기를 안했던거다.
생선 가게에 가서 고래 한 마리 주세요 한 셈이었다.
화원 아줌마와 호탕하게 눈물빼며 웃고 나왔다던 그녀-
그 뒤로 나는 후박 나무를 더 좋아하게됐고,
그녀와는 더 둘도 없는 단짝이 됐었다.

얼마전 어느 분이 석류꽃을 손에 든 아이의 사진을 보내 주셨다.
꽃을 보니 내 생각이 났다 하셨다.
전혀 모르는 사이에도 이런 일이 피어날 수 있음에
그 날의 그녀와 바라보던 후박나무 빛이 마음에 출렁였다.

이런 기분, 이런 느낌.
에피소드 같은 순간에도 사랑이란 글자는 새겨져 있나보다.
표현하기 힘들땐 사랑으로 마음만이 출렁거릴 뿐.




#꽃에게말을걸다 #감성그림에세이 #후박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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