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생 시절에 이런 우산이 있었다. 손잡이는 물론 몸통 전체가 퉁퉁한 대나무로 되어 있고, 아주 얇고 살짝 투명한 파란 비닐이 덮여 있는. 지금 그 우산이 있다면 엔틱 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는데 그 시절 그 우산은 그저 우리 집의 가난을 드러내 주는 우산일 뿐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어느 날, 5남매 중 막내인 나는 밖에 비가 오기에 학교에 쓰고 갈 우산을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남은 우산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아까 말한 그 우산이 눈에 띄었고, 그러나 나는 차라리 비를 맞고 갔으면 갔지 죽어도 그 우산은 쓰고 싶지 않았다.
자식이 비 맞으며 학교 가는 꼴을 어머니가 어찌 그냥 보고만 있겠나. 어머니는 씩씩대는 나를 달래고 달래서 그 우산을 함께 쓰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 정문에 다다를 무렵 나는 깜짝 놀랐다. 나와 반대쪽에서 걸어오던 한 아이가 지금 내가 쓴 것과 똑같은 우산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나는 그 친구의 우산을 발견했을 때 안심되는 마음이 순간 생겼던 것 같다. 초라하고 없어 보이는 우산을 나만 쓰고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안심되던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거리가 좁혀져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을 때 내 마음은 너무나 복잡해졌다. 그 아이는 집이 어느 정도 사는 아이였는데 혼자서 그 우산을 쓰고 등교를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놀란 건 그 아이의 표정이 아무렇지도 않고 심지어 편해 보이기까지 했다는 점이다.
지금 나는 수치심에 휩싸여 그것을 짜증과 화로 바꾸어 놓은 상태인데 저 아이는 어찌 저런 표정을 짓는 게 가능한 걸까. 그래,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그 아이는 부잣집 아이니까. 그러니 그런 우산을 쓴다고 해서 수치심을 느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나는 뭔가 속상하고, 속상함을 넘어 억울했다. 억울하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그때의 감정은 억울함과 가장 닮아 있는 듯하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억울함도 억울함이지만 무척이나 슬펐던 것 같다. 그러나 슬프다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그것이 또 속상해지고 억울해지는 느낌이랄까. 그런 복잡한 마음을 마음속에 가둬둔 채 정문을 통과할 즈음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갔다.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기까지 그때 일에 대한 나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똑같은 우산을 쓰고 있는 두 아이의 표정과 감정이 그렇게나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그날을 회상하다가 평소와 달리 필름이 조금 더 돌아갔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였고, 그날 비는 가랑비와 폭우의 중간쯤이었다.
그날 분명히 우산은 하나였다. 우산 없이 홀로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던 어머니는 마음이 어땠을까. 어쨌든 자식이 비를 맞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여겼을까. 홀로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쓸쓸하거나 허전하지는 않으셨을까. 고단하게 이어지는 하루하루에 지치고 힘든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까.
어땠을까, 그때의 어머니 마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