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그린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담긴 세계관과 역사

by 심바빠

"니네랑 우리랑은 급이 다르잖아. 압록강에 딱 선 긋고 조용히 살아, 요동정벌한다느니 그딴 소리하지말고."

"아니, 뭐 그렇게 다를 거는 또 있어. 또 땅은 딱 나누어 뭐해, 다 같이 사는 세상이여."


위화도에서 휘하의 10만 군사 뿐 아니라 역사의 물줄기도 함께 돌려튼 지 어언 10년 째인 1397년. 아래의 유명한 지도 제작의 총책임자인 권근(權近)은 몽골의 지배에서 한족국가를 되찾은 명 태조 주원장과 만나고 있었다. 대륙에 다시 등장한 강력한 통일국가, 그리고 쿠테타를 통해 나라를 새롭게 일으킨 조선. 이 명분을 인정받고 명나라의 외교 관계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천자를 마주한다. 영토가 압록강 이남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조선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강한 협박 조로 나오는 명나라. 세력관계는 명확하니 당연히 별 다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순순히 원하는 대로 술술 불어줄 수는 없지. 그저 의뭉스럽게 "중화와 동이 한계가 없는데" 뭘 그렇게 딱딱하게 나누려하시나, 하고 퉁 쳐버린다. 명 태조의 어제시에 답한 권근의 응제시에 나오는 내용이다.


결국 성공적으로 명과의 외교관계를 복원한 권근. 그리고 그의 귀국길에는 옛 몽골제국의 지도와 중국의 행정지도도 함께 따라왔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넘겨받은 지 약 5년 여 만에 김사형, 이무, 이회 등은 직접 그린 조선팔도도와 함께 한폭의 세계지도로 엮어낸다. 이것이 동아시아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간단히 강리도라고 불리는 지도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고양신문.jpeg

사진 출처: 고양신문 http://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33290


강리도의 첫 인상은 묘하다.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중심으로 위치하는 일은 사실 이상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이상한 건, - 이 지도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일본 학자 미야 노리코의 말마따나 - 사실 지도의 가장자리로 밀려나있는, 그러나 실제 크기보다 몇 배는 확대된 조선이다. (책 링크: https://books.google.com/books?id=gTQEAQAAQBAJ&printsec=frontcover&source=gbs_ge_summary_r&cad=0#v=onepage&q&f=false) 물론 중화니 사대니 하는 단일한 시각으로 보면 그저 불편하게만 보일 수도 있고, 또 반대로 나름(?) 크게 그려진 한반도를 보면서 기분 좋아질 수도 있는 일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어떻게 저런 특이한 지도가 그려질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 지도가 다른 곳에 아닌 조선에서 등장할 수 있었는지를 간략하게 다루어보고 싶다.


A History of the World in 12 maps (한역 서명: 욕망하는 지도 - 12개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를 지은 Jerry Brotton 교수는 강리도를 소개하는 챕터에 "제국 (empire)" 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조선이 바라보던 세계가 중국이 중심이 된 제국의 질서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 동쪽에 이에 버금가는 크기로 그려놓은 조선. 실제보다 훨씬 더 작고, 남쪽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이웃 일본. 15세기 조선이 세계 속에 자신을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에 대한 아주 간명한 초상이다.


한반도를 집중해서 보면, 중국과의 국경지대는 빽빽한 남쪽과는 다르게 어떤 군현정보도 없이 그림만 모호하게 그려져있다. 이는 의도적인 것으로, 이 지도가 여진이나 몽골 등에게 넘어가서 군사 정보로 활용될 가능성을 염두한 것이라고 한다. 반면 해안가에는 섬 같이 생긴 것들이 수없이 들어차 있는데, 이는 실제로 섬을 그린 것이 아니라 해군 기지를 그려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 너머의 세계는 동아시아의 것보다 부정확하고 추상적으로 그려져있다. 하지만 지명이라던가 대략적인 윤곽은 꽤나 정확하게 그려져있다고 한다. 예컨대 독일은 allemania라고 정확하게 적어놓았으며,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의 위치도 우리가 상상하는 그 자리에 있다. 아프리카 대륙 안에 큰 호수가 그려져 있는데, 그것이 사하라 사막을 그린 것이라는 설도 있다. 보통 북쪽 지역만 그려지는 아프리카를 하나의 온전한 대륙으로 그려낸 점도 흥미롭다. 기본적으로는 지명과 대략의 윤곽으로부터 기원 후 2세기 경 프톨레미 (Ptolemy)가 그린 세계지도의 영향도 읽힌다.


그러나 저자는 강리도가 보다 조선인의 상상력에 기반한 지도라고 이야기한다. 경도와 위도를 사용하여 정확하게 측량된 지도를 그리는 것에 무지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중국의 지도 기술력은 송대에 들어 크게 발전하는데, 대표적으로 1136년에 그려진 유지도 등을 보면 계수선(graticule)을 사용해 정확하게 측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 밖의 세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당시 지도는 국가 내정을 관리하는 행정적 목적으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자신의 국가 밖의 세계에 대해서 그렇게 정확하게 묘사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 전까지 전해지는 대표적인 세계지도들, 프톨레미의 세계 지도나 12세기 알 이드리시의 엔터테인먼트 (Entertainment) 지도 등도 지중해 연안의 지리 정보가 가장 정확하게 그려진 반면, 보다 동쪽과 남쪽으로 오면서 상대적으로 부실해진다. 잘 모르는 곳에 대해 상상력이 들어차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강리도는, 동아시아에서 지도 기술이 제일 발전했던 중국에서 나타나지 않고 변방인 조선에서 등장한 것일까. 언급했듯, 중국과 그 너머의 세계를 우리가 직접 시찰한 것은 아니었고, 중국에서 받아온 지도들과 조선에서 자체 제작한 지도를 덧붙여 만든 지도였다. 저자는 중국이 발전된 기술을 지니고,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이런 지도를 만들지 못했던 이유로 중화주의, 곧 중국이 곧 세계라는 인식을 지적한다. 송대에 지도기술이 발전하고 '하나의 세계로서의 중국'이 그려졌던 이유는 북방의 유목민족들에게 중원을 내준 후에 따라오는 일종의 향수였다. 한족(漢族)이 지배했던 세계, 되찾아야 할 그 자체로 완전한 세계. 저자는 그러다보니 중국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는 관심도, 알 필요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을 읽는 우리는 바깥 세상에 관심이 없었던 중국의 자부심과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막 건국한 조선, 새롭게 들어선 이 나라는 분명, 그 자신이 하나의 세계라고 불리기에는 작고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조선은 자신들을 세계 속에 위치시키고 연결하길 원했다. 비록 그래서 자신을 동쪽 끝에 그려넣어야 했을지라도, 세계는 자신을 둘러싼 중화질서 이상으로 뻗어있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고 싶어했다. 저자가 지적했듯이, 조선인들은 자신들이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지도를 그려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화에 대한 자부심에 젖어있던 중국에 비해, 조선은 중화 그 너머의 세계를 응시할만큼 독립적이었고, 그래서 향수와 근심이 아닌 호기심과 자신감으로 바깥 세계를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지도를 그릴만큼 문화적이었으나, 중국에서는 '야만'이라고 불리던 그 절묘한 위치. 어쩌면, 동아시아의 세계지도는 다른 '야만'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던 문화와 야만의 경계에서 그려질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조선은, 권근이 지도의 발문에 남긴대로, "문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또 후세에게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를 자랑스럽게 전해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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