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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레저 여행가 Oct 21. 2023

생후 594개월차 어느 날

쉽게 이야기하면 생후 2,543주째

저는 생후 594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태어난 지 날수로는 17,800여 일, 주수로는 2,540여 주되었네요.


지난 594개월을 살아내는 동안 무엇을 이루었을까? 또 까딱 잘못하면 앞으로 500~600개월 정도 더 살아가야 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참으로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생후 322개월. L그룹 계열사의 지방 도시에 위치한 연구소가 제 첫 직장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약 10년 정도 뭔가 별로 팔리지도 않는 제품을 개발하고, 특허 출원하고, 논문도 쓰며 직장 생활을 했었습니다. 어느 날, 연구팀과 영업팀 간에 회의가 있었습니다. 영업팀에서는 "이렇게 경쟁사보다 출시는 늦고, 성능은 떨어지고, 가격마저 비싼 제품을 어떻게 팔라는 거냐?"가 주장이었고, 저희 연구팀에서는 "세상에 싸고 좋은 제품이 어디 있느냐? 경쟁사보다 싸고 좋은 제품은 이마트에 진열만 해둬도 팔릴 텐데 영업사원이 뭔 필요가 있겠느냐?" 뭐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항상 돈 벌어 오는 사람 편. 회의에서 신나게 욕 들어먹고 퇴근해서 술 먹은 다음날, 경쟁사인 H그룹 계열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습니다. 역시 글로벌 리딩 기업은 사람 보는 눈이 있습니다. 익숙한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망설여졌지만, 직급도 하나 올라가면서 연봉도 천만 원 정도 상승하고, 무엇보다 근무지가 서울 시내라는 조건을 결국 거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생후 426개월. 첫 번째 이직을 하였습니다. 이때 사소한 문제가 있었는데요. 지방 도시에선 나름 괜찮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던 저는 이직을 하면서 지방의 아파트를 팔고 서울로 이사 왔는데요. 지방 아파트를 판 돈으로는 서울에 있는 비슷한 크기 아파트의 전셋값에서도 한참 모자랐다는 것입니다. 난감하더군요. 이게 진정 같은 대한민국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요즘 말로 영끌하여 겨우 전세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옮겨간 기업에서는 하고 싶은 업무를 맡아서 즐겁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팀 멤버들도 너무 좋은 사람들이어서 업무가 끝난 후의 시간도 즐겁게 보낼 수 있었죠. 1년에 5~6회 정도 다녔던 해외 출장은 그동안 연구소라는 우물 안에 살고 있는 개구리였던 저에게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외국인만 보이면 슬그머니 뒷걸음질 치던 제가, 외국 고객들 앞에서 한 시간 넘게 유창한 콩글리시로 프리젠테에션 할 수 있는 뻔뻔함도 생겼습니다. 덤으로 내 돈 내고 가볼 것 같지 않은 나라로의 출장 경험도 제개는 너무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생후 491개월. 드디어 서울 하늘 아래 오래된 국민평형 아파트를 하나 등기칠 수 있었습니다. 한창 정부에서 돈 빌려줄 테니 전국민에게 집을 사라고 부추기던 시절이었습니다. 마침 개인적으로는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안정적인 주거가 필요한 상황이었죠. 대한민국 정부를 믿고(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담했습니다)나름 큰 결심을 하여 은행의 도움을 받아 이룬 일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안방 정도만 제 소유이고 거실, 작은방, 주방 등은 은행 소유인 셈이었던 아파트. 다시 말하면 K 은행과 공동소유인 집이라, 집들이를 K 은행 로비에서 할까도 생각했었죠. 비록 강남까지 가려면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은 소요되는 곳이었지만, 서울 하늘아래 가족이 편히 머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했다는 게 무언가 큰 일을 해낸 듯하였습니다. 이후 대출금 이자와 물가 상승을 합친 것보다 집의 가치가 조금 더 오른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생후 570개월. 새로 옮겨온 회사 업무는 개인 적성에는 잘 맞았으나, 제가 담당하는 아이템이 회사에서 자리를 못 잡고 방황하였습니다. 회사에 돈을 많이 못 벌어 줬다는 얘기죠. 어찌어찌 부장까지 진급은 했으나 별 따기는(임원 승진) 물 건너간 상황. 선배들도 하나둘씩 등 떠밀려 회사를 떠나갑니다. 저에게도 이대로 후배들 눈치 보며 뒷방으로 밀려날 것이냐, 무엇인가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인가 결단이 필요한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종 업계에서 창업하여 사업을 하고 계시는 선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처우는 맞쳐줄테니  합류할 생각 없냐고요.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고민을 꽤 오랜 기간 동안 하였습니다. 아이들에게 한참 돈 들어가는 시기인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후배들 눈치 보며 월급 루팡으로 늙어갈 것인가? 중소기업으로 옮겨서 좀 더 버라이어티 한 인생에 도전해 볼 것인가? 


생후 573개월. 울면서 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후배들. 에이스가 나가면 앞으로 회사는 어떻게 되겠냐던 선배들. 제발 다시 재고(再考)해 보라는 임원들. 모두의 만류를 뒤로하고, 사표를 던졌습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봐 말씀드리면, 저는 이글이 100% 실화라고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 여튼 20년 정도 다니던 정들었던 대기업을 떠났습니다. 다른 동료들보다 한 박자 정도 빠른 시점이었죠.

 당연하게도, 제가 떠나온 회사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잘 나가고 있습니다. 주가는 제가 다닐 때보다 조금 빠졌습니다만. 그리고 저도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대기업보다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힘든 일도 많지만, 그동안 도전해보고 싶었던 일을 좀 더 자유롭게 시도해 볼 수 있는 환경이 좋았습니다. 종종 점심시간에 사장님과 함께 즐기는 낮술의 묘미도 빼놓을 수 없구요.   


생후 594개월. 작년에 대학 입시에 실패한 아들 녀석이 재수하고 있는데, 성적이 생각만큼 올라주지 않습니다.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죽기 살기로 하고 있다는데, 공부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적성에 맞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딸내미는 고등학교 진학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교를 선택해야 그나마 도움이 될지 선택이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하죠?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저의 관심 정도로 보건대, 다행히 저희는 한 가지는 확실히 만족하는 듯합니다. 

 그나저나 아내 몰래 겨우 마련한 비자금을 좀 불려보겠다고 주식에 투자를 했는데, 자꾸 파란불(주가하락)이 켜지네요. 대체 구조대는 언제 오는 겁니까?? 85층에도 사람 있다구요~~!! 유튜브의 정보를 아무 생각 없이 믿은 대가는 생각보다 많이 가혹했습니다. 그 와중에 코인판에는 들어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N잡러가 되어보겠다고 호기롭게 몇 가지 일에 도전도 해보았습니다. 인플루언서를 꿈꾸며 시작한 블로그는 결국 높은 현실의 벽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5만 원이라도 벌어서 네 식구가 따뜻한 피자 두 판 시켜 먹은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습니다. DSLR 카메라를 이용하여 시작한 스톡 사진가는 결국 열 장 남짓 판매하고 말았네요. 낼모레가 지천명(知天命)인데, 하늘의 명령을 알아 가기는커녕 아직도 수수께끼를 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자님과는 배움에 차이가 있네요.




생후 660개월. 제가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은 아니지만,  자발적 은퇴를 계획했던 시점입니다. 아이들이 얼추 스스로 자기 앞가림을 하게 될 때쯤입니다. 살짝 이른 은퇴를 위하여 대출금도 모두 상환하고, 패시브 인컴(Passive Income, 적극적인 노동 활동 없이 잠자고 있어서 들어오는 소득)을 기반으로 한 파이프 라인을 만들어 둘 계획이었습니다. 그 후에 일을 완전히 그만두고 집에서 놀겠다는 것이 아니고,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아닌 스스로 재미있는 일을 시작하고자 계획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의 계획을 조금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가난한 노후를 보내고 싶지는 않은데, 자산 형성이 계획대로 되고 있지가 않네요. 이유는 앞단락(생후 594개월)의 후반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미래는 아직 모르죠. 인생은 뜻밖의 일들의 연속이니까요. 조상님께서 꿈에 나와서 숫자 여섯 개를 말씀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생후 720개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은퇴 시점입니다. 정부에서는 60대를 일터로 내보내서 복지 관련 재정부담을 덜어보고자 하는 것 같지만, 저는 이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거든요. 이때부터 시작해서 생후 900개월이 될 때까지 아내와 전 세계를 여행하려고 합니다. 여행책자에 실려있는 명소를 스쳐 지나가는 이방인으로서의 관광이 아닌, 한 달 이상 머무르며 현지인과 아웅다웅하며 스며들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최종적으로는 UN 정식 회원인 193개국을 직접 여행하고, 그 경험을 책으로 써내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세계적인 정치/안보 상황에 따라 결국에는 갈 수 없는 국가들도 있겠습니다만, 허락되는 모든 국가를 내 다리로 밟아보고 싶습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이미 써두었는데, 백두산 천지에 올라 북녘땅을 바라보며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며 마치고자 합니다. 


생후 1,000개월. 이쯤 되면 지금 생각해 두었던 버킷 리스트 중 몇 가지나 이루었는지 결산을 해보고 싶습니다. 참고로 제 버킷 리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종이책 출간한 작가 되기

 (2) 한강이 보이는 내 집에서 살기 

 (3) 세계 3대 오케스트라 공연을 전용홀에서 직관하기

   : 빈 필, 베를린 필, 로열 코체르토헤보

 (4) 세계 3대 축제 참석 

  : 리우 카니발(브라질), 뮌헨 옥토버 훼스트(독일), 삿포로 눈축제(일본)

 (5) 오로라 사냥 여행

 (6) 독도 방문

 (7) 프랑스 보르도 와인 중 5대 샤토(Premier grands crus classes) 마셔보기

  :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라뚜르, 샤토 마고,  샤토 오브리옹  

 (8) 세계 모든 국가 방문해 보기 + 남극 여행

  : 세계 국가 수(UN기준) : 193개국


생후 1,200개월. 마지막까지 내 다리로 걸어서 화장실 다니다가, 조용히 삶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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