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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레저 여행가 Aug 02. 2023

'책 읽는 가족' 수상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일 : 식구들 데리고 주말마다 도서관 가기

저희 큰아이가 태어나고 몇 개월 정도 지났을 때니, 벌써 20년 가까이 되어가네요.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아내가 말을 꺼냅니다.


"여보. 아기들에게 엄청 인기 있는 하는 책이 있다는데 한 질 사야겠어."

"응? 책을 한 질 산다고? 무슨 책인데?"

"OO 출판사에서 나온 동화책인데, 정말 알차게 구성되어 있대."

"헐~ 그걸 꼭 다 살 필요 있어? 어차피 아기들은 자기 좋아하는 책들만 볼 텐데. 애가 좋아하는 책만 좀 골라서 사면되는 거 아니야?"

"XX네도 있고, □□네도 샀다는데..."

"그 책 전집이 얼만데?"

"100만원"

"우리 지금 사정에 책값이 조금 무리일 것 같은데? 나중에 필요한 거 골라서 사자."

"......."

   

뭐 대략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 저는 잊어 먹었었습니다. 금요일 저녁 회사에서 회식이 있어서 자정이 넘어서까지 술을 마시고 온 다음날이었습니다. 아침이라고 하기엔 좀 늦은 시간, 술이 다 깬 건 아니었지만 갈증이 나서 비몽사몽 눈을 떴습니다. 아직도 빨갛게 충혈되어 있는 제눈에 들어온 건 커다란 상자 네 박스, 그 안에는 얼핏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들어있는 화려한 동화책들.


정말이 결혼하고 나서 가장 크게 싸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아내에게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책사지 마라. 대신 내가 매주 주말마다 아이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마음껏 읽히고, 좋아하는 책은 빌려오겠다!' 라구요. 어떻게 보면 제 스스로 판 무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저희 가족의 '주말마다 도서관 가' 전통은 이렇게 부부싸움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충청북도 청주에 살다가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서울 용산구로 이사를 왔는데요. 이때 이삿짐 정리하고 나서 가장 먼저 검색하여 찾아 가이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 이였을 정도로 '온 식구 도서관 가기'는 중요한 가족 일정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부부싸움에서 시작된 저희 가족의 '온 식구 도서관 나들이'는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 지금도 평균 한 달에 세 번 정도 온 식구가 도서관에 갑니다. 이러다 보니 얼떨결에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수상한 상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책 읽는 가족' 수상입니다. 용산 도서관 대표로 받은것 인데요. 나이 50이 다 되어가도록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변변찮은 것이 없는 저에게는 참 중요한 자랑거리입니다.   


'책 읽는 가족'이라는 상은 서울시 교육감이 주는 상인 데요. 서울시는 한강 북쪽에 14개 구, 남쪽에 11개 구 총 25개 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 각각의 구별로 구를 대표하는 두 개 도서관에서 수상가족을 두 가족씩 선발해서 100 가족에게 주는 상입니다. 즉 서울 25개 구 * 구별 2개 도서관 * 도서관별 2 가족 = 100 가족입니다.  


이 상을 받는다는 건 서울에 거주하는 약 400만 가구 중에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상위 100등 안에 든다는 이야깁니다. 실제로는 1년간 한 가족이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의 권수를 기준으로 하는 거니, 1년 동안 한가족이 서울소재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 권수가 많은 100 가족인 거죠. 어쨌거나 400만 가구 중에 100등. 상위 0.0025% 정도인데, 제가 이제까지 무언가를 해서 상위 0.0025% 안에 들어본 것은 이것뿐입니다. 더불어 재산 규모도 상위 0.0025% 였다면 더 좋겠지만 말입니다.



여튼 저희 가족은 이 '책 읽는 가족' 상을 용산구 용산도서관 대표로 2015년과 2018년에 두 번 수상을 하였습니다. 집에 자랑할만한 게 변변치 않다 보니, 한동안 이 상을 거실에 자랑스럽게 전시해 두었었는데요. 저희 집에 놀러 오신 지인 분이 물어보시더라고요. 도서관에서 책을 1년에 몇 권이나 대출했길래 이 상을 받을 수 있었냐고 말이죠. 그 이야 저희는 네 식구가 평균적으로 1달에 3번 정도 도서관에 갔었고요. 한번 가면 약 30권~40권 정도 빌려왔었습니다. 그러니 한 달에 약 100~110권, 일 년에 1,200권 ~1,300권 정도 대출했던 것 같습니다. 빌린 책들을 열심히 읽고 마음의 양식이 되었는지, 대출한 책들을 들고 도서관에 왔다 갔다 하며 근육을 키웠는지는 식구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라 밝힐 수는  없습니다. 2018년도에 저희 가족은 이 상을 정독 도서관에서 수상을 하였는데요. 그때 가족이 주최 측에 물어보셨습니다. 1등 한 가족은 몇 권이나 대출을 했냐구요. 사회 보시는 분께서 말씀하시길.. 책을 이렇게 좋아하시는 100 가족 중에서도 1등 하신 가족은 년 2,200권 을 대출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할까요?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왔었습니다.


여튼 쉰 살 가까워지는 제가 지금껏 살면서 가장 잘한 것 같은 일은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아이들 데리고 도서관에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저희 아이들이 지금도 심심하면 책을 펼칩니다.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만들어 준다는 건 참으로 중요한 것인데요. 부모는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하며 말로만 아이들에게만 책을 읽으라고 해서는 절대 책 읽는 습관을 심어줄 수 없습니다. 가족이 함께 책을 읽어야 합니다.      


가족들과 무언가 의미 있는 도전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는 '책 읽는 가족' 상에 한번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YO_RUNNER님의 작품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출처 : YO Runner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ru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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