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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Aug 26. 2024

17주. 시소는 고장난 건가

달리기 너마저

지현은 병원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관리 잘하는 우울증 환자' 이상의 무언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병원에 가면 대부분 저를 다독였던 것 같아요. 무리하지 말라고요. 그러면 저는 제 한계를 정해놓게 돼요. 그럴 때면 먹고 자고 배설이 잘되는 상태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평생을 이렇게 살아갈 수는 없을 텐데. 내가 가진 불안장애나 우울증이 어떤 면에서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대단한 야심을 부리는 건 아닌데. 어떤 시도를 하고 싶을 때 병원에서는 리스크가 있으니까 그걸 말리죠.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려고요, 이렇게요."  /지현, 111쪽

컨디션은 제 통제 밖의 일입니다. 똑같은 시간에 잠들고 깨도 상쾌하게 일어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눈을 뜨자마자 '왜 오늘 하루가 또 온 거지?'라고 생각하는 날도 있습니다. 제 한계를 파악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만 움직입니다. 에너지가 낮아지고, 삶에 대한 의욕도 희미해지면, 제가 소화해야 할 일상을 최소한도로 조절합니다.
예전에는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발전의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저 밑으로 추락해버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를 쓰고 원하는 것들을 성취하려고 했죠. 하지만 어떤 날에 제 능력의 120퍼센트로 살아내고 그다음 날 30퍼센트로 추락하는 것보다, 이틀 동안 75퍼센트로 사는 게 낫다는 걸 경험을 통해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요즘은 최대한 평균적으로 살기, 측 최고치와 최저치 사이의 갭을 완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혜림, 263-264쪽


ㅡ하미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815런을 뛰고 좋았다. 첫 오프라인 마라톤을 경험한 것, 8.15km를 뛸 수 있게 된 것, 가족들과 함께 추억할 한 페이지가 생긴 것 모두. 다음날 아이들은 개학했고, 무사히 방학을 지나왔다는 데에 감사했다. 밤에는 '회복런'이라 생각하며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달렸다. 그다음 이틀 동안 나는 친구들을 만나 달리기로 좋아진 삶에 대해 기운 넘치게 말했고, 여행과 영화와 책에 대해서도 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엔 815런에 대해 종일 매달려 글을 썼다.


그리고 곤두박질. 온갖 부정의 에너지에 휩싸여 가라앉았다. 일상도 전혀 알차지 않고, 전혀 생산적이지도 구조적이지도 않았다. 익숙한 문장을 그렸다. 대체 삶이란 뭘까. 언제까지 견뎌야 할까.


화들짝 놀랐다. 달리기가 몸은 당연하고 정신 건강에 정말 좋다고,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우울한 적이 없었다고 바로 며칠 전까지 힘주어 말한 것에 대한 민망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건 정말이기도 했고, 나 말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렇다고 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지? 어디서 삐끗했지? 나는 까딱하다 저쪽으로 넘어갈까 봐 떨면서 머리를 굴렸다.


엄마 때문도 같고, 남편 탓인 것도 같았다. 정리 안 된 집이 나를 혼란하게 하고, 읽고 있는 책의 어두움이 나를 울적하게 하는 걸 수도 있었다. 모든 게 뒤로 가고 무너지는 나라의 체계 때문에 불안한 걸까? 풀리지 않는 나의 사회적 성취도 한탄스럽고,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불행과 고통을 떠올리면...


아아, 이것은 원인이라기보다 증상이다. 슬픈 기억과 암울한 상황 판단까지 끌어들여 자꾸만 거대해진다.


그러고 보니 달리기를 나흘이 넘도록 하지 못했다. 그럼 달리기를 안 해서인가?


하지만 달리기를 할 수 없었다. 머리가 띵하고 몸이 무거웠다. 며칠간의 수면부족으로 기력이 없었다. 왜 안 잤을까, 왜 못 잤을까, 오래된 젤리처럼 끈적하게 생각했다. 글을 쓴다고 (커피도 마시고) 너무 긴 시간 매달렸고, 친구들을 연이어 만나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그전에, 815런이 선을 넘었다. 기대가 컸고, 몹시 흥분했고, 과하게 몰입했던 것이었다. 달리기가 시작이었다. 달리기가 문제였다.


허탈하게 누워서 이것 참 정말 어렵다고 생각했다. 달리기가 나를 좋게 하는데, 달리기 때문에 안 좋게 되기도 한다. 달리기를 하면 나아지는데, 그럴 수 없도록 만든 게 달리기다.


그러니까 아차, 싶었다. 적당히 했어야 했는데. 에너지를 끌어다 쓰면 나중에 달(딸)리는 건데. 무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야심을 부리면 안 됐는데, 나를 다독이면서 했어야 했는데, 한계 안에서 평균적으로 살았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에, 나의 정도를 모르고 날뛴 어리석음을 후회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하니, 내가 뭘 그렇게 오바했지? 이만큼도 애쓰며 살 수 없다고?


그렇다면, 정말 그런 거라면, 나는 고장난 게 아닌가? 과하게 애써서 고장난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기울면 몽땅 출렁이는 나는, '먹고 자고 배설이 잘 되는 상태로 만족'하면서 밋밋하게만 살아야 하는 나는 이미 고장나버린 게 아닐까?





비슷하나 새로웠던 무늬였다. 우울한 사고 패턴은, 기운을 조금 차린 뒤 달리고 나니 (다행히) 흩어졌다.


달리기를 조금 무리해서 했다가, 달리기를 조금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던 며칠 동안, 나를 행복하게 했지만 나를 해하기도 했던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내가 움켜쥐고 싶었지만 내가 갇혀버린, 사랑하다가 두려워졌던, 하나가 될 것처럼 다가갔다가 그만 정이 떨어져서 뒤돌아섰던.


그러니까 애초에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될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기울지 않고 일그러지지 않고 망가지지 않고, 구불구불하지도 않고 들쑥날쑥하지도 않게 하면 된다고.


하지만 나는 나와 내 삶을 생각하면 자꾸 시소가 떠오르는 것이다. 누가 탈 때나 타지 않을 때나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평평하게 있는 게 세상 제일 어려운 일이다. 할 수 있다 해도 어찌나 찰나와 같은 순간일 뿐인지, 어찌나 어색하기만 한지.


달리기가 내 삶의 균형을 잡아줄 줄 알았다. 덕분에 더 높은 수준에서 줄타기를 할 수 있게 되기를. 유용한 장대나 부채가 되어주기를. 그런데 나는 달리기를 꼭 안고 널뛰기를 세게 하고 있다. 펄쩍 뛰어오르기도 하고, 꽝 떨어지기도 하고, 심지어 고꾸라지기까지 한다.


내가 종목을 착각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선수가 아닌 걸지도. 올림픽이 아니라 (서커스도 아니고) 놀이터에 왔으니, 내 멋대로 놀다 가보자고 말해본다.




요약

달리기는 분명히 정신 건강에 좋다. 우울감을 줄여준다.

그럼에도 만병통치약일 리는 없고, 때로는 바로 달리기 때문에 균형을 놓치기도 한다.

잘못이라기보다, 달리기조차 생긴 대로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런데이 비대면 마라톤을 완주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다 오는 길.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시작하는 기쁨.


달리기 좋은 날씨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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