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없는 무언가를 만나는 기쁨
* 2013년부터 다음웹툰에서 연재 시작, 2018년에 완결됐다. 단행본 총 9권으로 같은 해 완결. 시작과 끝의 평균으로 쳐도 10년쯤 된 작품을 올해의 만화책으로 꼽는다. 워낙 신간 소개의 목적도 아니었고, 올해 본 만화책 중 최고일 것이 확실하니까.
도서관에 들르면 만화책/그래픽노블 서가를 훑는다. 아이들에게 던져줄 생각으로. 나이도 수준도 취향도 다른 세 아이들 중 하나에게라도 얻어걸리겠지, 하는 마음이고 대략 반타작쯤 한다. 이 책도 그러다 발견.
책장에서 꺼내 대충 봤을 때는 '무협지 쪽인가?' 싶어서(작가 이름도 이무기...) 급 관심이 떨어지려는 찰나, 일제 강점기 이야기인 것을 알게 됐다. 그림은 매우 깔끔하고 완성도 있게 보였다. 고민될 땐 검색. 카카오웹툰 인기 연재작이며 무려 '부천만화대상 대상 수상작(2019년)'. 완결된 것을 확인하고 빌렸다.
<전지적 독자 시점>을 세 번째 정주행 중이던 14세 첫째는 다른 건 읽고 싶지 않다며 마뜩잖아했으나, 당장 읽을 게 없는 차에 '인기 웹툰이라니 펼쳐는 본다'는 태세로 1권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난 알았다. 이거 수작이구나, 재미있구나. 아이가 책을 읽는 몰입도와 속도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무섭거나 잔인한 걸 못 보는 12세 둘째는 언니 근처에서 기웃거리다 읽기 시작했다. 어떤 장면들을 끔찍해하면서도 건너뛰어가며 읽었다. 읽고 있는 책도 읽어야 할 책도 쌓였지만, 궁금하여 결국 나도 펼쳤다. 그리고 바로 몰입.
다 읽을 때까지 단 한순간도 지루하거나 시시하거나 (꾸역꾸역 읽느라) 어렵지 않았다. 동시에 더글러스 케네디의 신작 <원더풀 랜드>를 읽었는데, 장강명의 추천사 '이 책을 읽을지 말지 망설이는 분들에게 "걱정 말고 읽으십시오! 진짜 재미있습니다."'가 무척이나 초라해지는 시간이었다. 읽는 중에나, 다 읽고 나서나. 그 추천사가 붙은 띠지를 떼서 이 책에 붙이고 싶다. (모든 건 개취라, 내 말에 또 어떤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실로 오랜만에, 읽는 동안 현실세계의 불이 꺼졌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형식이나 매체가 무엇이든, 실로 오랜만에 '흠 없는' 작품을 만나서 가슴이 벅찼다. 이 책이 눈물 나게 반갑고 또 고마운 것은 그 때문이었다. 흠 없는 무언가를 만나는 기쁨, 그것은 결코 흔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고 당연하거나 자연스럽기는커녕 경이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알아버렸다.
웹툰을 연재하는 동안 작가의 휴재 기간이 때때로 길었다고 한다. 그리고 단행본 몇 권엔가 부록에 독자와의 대화가 실려 있었다. '만약 작업하던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서 작품이 날아간다면?' 작가는 '고민 없이 그만둬버리겠다'고, '절대로 다시 작업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런 마음이라면, 나도 영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아홉 권을 다 읽고 나서는 완전히 납득했다. 그래, 이건 절대로 다시 할 수 없겠다.
재미, 짜임새, 흡인력, 표현, 리얼리티, 상상력, 주제의식, 인간성에 대한 통찰, 카타르시스, 게다가 유머까지. 나는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때때로 감탄했다. 가끔 어떤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도 그런 만족감을 느꼈지만, 이건 산업적 힘 같은 규모에 기대지 않았다. 또 어떤 책들을 읽을 때에도 그러했지만, 기획하고 구상하고 정보를 취합하고 구조화하고 문장으로 구현해내는 것, 그 고난도의 지난한 작업에 더해 그림으로 표현하려면 여기에 그만큼의 기획과 노동과 시간이 또 필요하다.
이 정도로 완성도 있게 무언가를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갈아넣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계속 했다. 이런 작업을, 한 사람이 살면서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의지나 계획으로 되는 일일까?
대체로 완벽주의자는 나는, 나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생산물/결과물에 대해서 평가의 기준이 높았던 것 같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나 자신의 수행능력이든 안목이든 수준을 높이고 더 성실하게, 더 노력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이유가 무엇이든(능력 그 자체의 부족 혹은 노력할 수 있는 여건의 부재 때문이든, 아니면 '완전' 혹은 '만족'의 수준이 갈수록 정교해진 탓이든) 완전한 무언가를 만난다는 것 혹은 만들어낸다는 것은 이상형 배우자나 맘에 드는 직장, 진정한 영웅의 존재처럼 불가능에 가까운, 비현실적인 일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나는 좀 슬퍼졌고 기운이 빠졌다. 좀 더 '현실적'인 인간이 되어가고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은 참으로 즐겁지가 않구나. 하지만 분명 편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흐린 눈을 하고, 어깨에 힘을 빼고, 머릿속 나사를 두 바퀴쯤 풀어놓고 지내기로 한 것이다. 가지고 있는 여러 레이더를 무디게 하고서. 그럼 짜증도 덜 나고 화낼 일도 적어진다. 사람과의 갈등도 덜하고, 잠도 더 쉽게 잘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타고난 무언가가 아니고서야, 이게 살 길인가 싶었다.
이를테면, 기껏해야 이런 글을 쓸 때에도, 훨씬 오래 생각하고 더 많은 공을 들여서 몇 번이고 다듬을 수 있다. 더 완성도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그러고 싶다. 하지만 내 삶은 이 글로 결판 낼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혹은 영악하게, 적당히 타협한다. 그런 타협이 쌓이고 쌓이면, 내 글은 잘해야 적당히 읽을 만한 글이 될 뿐이다. 나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고, 내 모든 생산물, 내 모든 삶이 그런 식이 된다.
글쎄, 사실 나는 이에 대해 불평하거나 자괴감을 느낄 계제도 못 된다. '평범한' 게 제일 어렵고, 평범이고 나발이고 무언가를 지속하며 버티는 것이 제일 대단하다고 여기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힘내어 살고 있는 내게 실례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나를 못마땅해하지도 않고 자랑스러워하지도 못하면서, 무엇을 견디는지도 모르고 견디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붙들고 다른 건 모르는 척 사는 중에 이런 작품을 만난다. 만나면, 나는 무엇을 놓아버린 걸까, 작가는 이 작품을 낳느라 무엇을 놓아야 했을까 한참 생각이 많아진다.
많아져서, 조금은 괴롭고 살짝 흔들린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