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를 쓰고 반 년이 더 지났다.
이전 열두 편의 흐름이며 내용이 기억나질 않는다.
읽어보면 될 일이지만, 다른 글에 써놓았듯 나는 내 글이건 남의 글이건 잘 보질 않는다. 그리고 봐도 그 나름이지. 이 치열한 전투의 기록을 굳이 복기하고 싶은 마음 없다. 13을 한참만인 지금에야 쓰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는 게, 일단 휴대폰으로 쓰는 중이라 상당히 불편하고 40분 후엔 병원에 가야 한다. 나의 버킷리스트인 그곳에.
모순되는 일이다. 나는 극 I지만 몹시 사회화된 I이고, 지금은 어찌 보면 I 중에 가장 E처럼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내성적이거나 소극적인 것은 절대 아니지만, 사람 셋 이상 모이는 걸 극도로 기 빨려하고, 누군가 꺼낸 소재에 맞장구치는 방식으로의 대화 참여도는 훌륭하지만 나에게 집중되는 대화는 몹시 힘들다.
그런데, 그런 내가 밥벌이로 하는 일이 홍보다.
씀씀씨는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
나는 직장에서 보통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평상시엔 말이 없다. 내게 사무실에서 대상과 용건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허용되는 신변잡기식 화제를 허공에 대고 복수의 사람에게 말한다는 건… 초등학교 시절,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를 바들바들 떨며 쥐어짜던 것과 마찬가지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상시, 일과 중의 사무실에서만 해당되는 일.
나는 우리 회사를 홍보해야 한다. 면대면으로도 하고 말로도 하고 글로도 하니, 우리 회사에 대한 소개 따위의 일이라면 전천후로 능하고 능해야만 한다.
일개 사원이지만 하는 일이 일인지라, 그 방식이 방식인지라 내 얼굴 내 표정, 내 문장 내 언사가 곧 우리 회사인 거다.
그래서 생긴 직업병이, 나의 성향을 꽁꽁 묶어두고는 회식이랄지 티타임이랄지 하는 어떤 자리들에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나에 대한 속박이다.
회사 홍보한다는 애가 뭐 저렇게 숫기가 없어?
뭐 저렇게 말을 안 해?
욕을 하려면 얼마든지 손쉽게 씌어질 수 있는 프레임이고, 그 타깃 되기 딱 좋은 게 나였으니까. 거기다 하필이면 이 글을 쓰게 만든 장본인, 나의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데 전적으로 공헌해 준 그 귀인의 프레임 창조와 전파 능력이 최대치였고, 또 한 번 하필이면인 것은, 그 빅모씨와 내 자리 사이 겨우… 휴.
물론 꼭 빅모씨가 아니라 누구더라도, 홍보한다는 사람이 저리도 말수가 없어서야 쓰나 염려될 수 있는 부분일 거다.
그래서 내 업에 맞게, 그런 자리와 관계들에선 나를 플러팅 하는 일이 그런 기우를 없애고 그런 프레임을 씌우지 않는 방법일 테니, 가진 재능껏 열심히 떠들고 웃기고 관심받으면 하이패스냐?
그렇지도 않다. 설친다로 시작해 설쳤다며?로 마무리 되는 무수한 일화들이 기다릴 뿐이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안다.
딋담화 피해자가 되는 건 이 시대 모든 직장인들에게, 모든 1인칭들에게 하나의 숙명인 건데, 내가 뭐 별났다고 그걸 피하겠는가. 그런 야무지고 요망한 꿈 꾼 적 없다.
하지만 내가 받아들이겠다는 건 생각하기에 따라,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저렇게도 재해석 되겠구나 싶은, 누가 봐도 욕 같은 욕인 거에 한정된다. 기분이야 나쁘지만 그런 식의 욕이라면, 나 욕하는 동안 잠깐 카타르시스를 느끼신다면 내 얼마든 그대들의 피로회복제, 자양강장제가 돼줄 용의가 있음인데.
빅모씨가 나를 두고 만든 그 얘긴 그 욕은… 재해석이 아니라 그냥 다분한 적의에 의한 창조잖아. 남의 욕을 설화 말하듯 하는 게 어딨어. 인격 살인도 살인인 시대에.
아… 폰이라 쓰기 불편한 건 어쩌고 또 욱했다. 피로해졌다. 이래서 이 이야긴 번호까지 매겨가며 쓸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는데. 기록이 힘인 시대니까. 나만의 고소장이다 생각하며 시작한 글인데.
일단 병원 가야 하니까 다행히 여기서 스톱.
금요일에 조퇴하고 정신과 가는 마음… 참 거시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