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이 많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궁금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불편하다. 물론 회사에서는 그런 사안들에도, 옛날 승용차 앞머리에 올려둔, 하루 죙일 고개 끄덕이는 불독처럼 적극적으로 듣고 열렬히 배우는 건 비밀. 흠 근데 저 불독에서 살아온 세월이 또 나오네…
어쨋든, 내 바운더리 안에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한 내가 궁금해하는, 특이한 것이 있다.
그것은 쉽게 말해서는 음악이고, 굳이 어려워지자면 하나의 장르. 바로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이 듣는 타인의 음악이다.
나는 근 한달? 컨디션 좋으면 근 두 달? 내의 어떤 날 그날 입은 옷으로 떠올린다. 옷이 내게는 떠올림의 스모킹건인 것.
옷이 특정한 날의 기억을 선사하는 소품이라면, 음악은 옛 하루를 넘어 한 시절 속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 바람이다. 방향으로 따지면 역풍이지만, 그 쓰임으로 치면 순풍인. 타임머신의 열쇠 같은 거.
거리 위 숱한 타인들의 음악을 궁금해하는 건 그래서다.
안다. 진짜 쓰잘데기 없는 궁금증이라는 거. 알아도 궁금하다. 그리고 또 안다. 나와 같은 걸 궁금해해 본 적이 그래도 한 번씩은 남들에게도 있을 거라는 것.
불과 몇 시간 전 출근길만 해도 나는 그랬다. 안국역 출구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 앞에 탄 저 사람은 지금 무슨 노랠 들을까? 변태같이 말이다.
플레이 리스트에 분명 존재할, 저 사람을 회상의 넝쿨로 한 순간 옮겨놓는 어떤 곡은 무어려나. 그리고 저 사람은 그걸 들을 때 어떤 걸 느끼려나. 그리움일까, 후회일까, 원망일까 아니면 행복일까.
귀에 손톱만 한 이어폰을 툭 얹어놓는 작은 행위와 무심하게 흘러나오는 하나의 음악이 결합되었을 때, 그 즉시 소시민 1에 불과한 나 자신이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마법과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될 때.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무언지, 그리고 왜 어떤 시절을 떠올리기에 그런 건지. 한 번 쯤은 알고 싶다.
이렇게만 보자면 세상 변태 오지라퍼 같겠지? 실은 이건 나를 꽤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요소 중 하나인 걸 아무도 모를 테니까?
어째서 제3의 영역을 궁금해하는 이 영양가 없는 호기심이 나를 튼튼하게 하느냐면, 그 호기심이 심심치 않게 나를 위로하기 때문이다.
저 많은 사람들도 이미 흘러가 고여있는 시절 어딘가를 누비고 있겠구나. 어쩜 우린 다 비슷비슷한 환희와 원망, 후회와 처연함, 즐거움 따위로 이뤄진 희로애락 속에 살고 있구나 싶어 말이다.
이게 교통수단인지 피로수단인지 모를 사람 시루 같은 지하철에서도, 거리에 환한 건 가로등과 간판 네온뿐인 늦은 퇴근길에서도, 왁자지껄 오늘 하루 잘 견뎌냈다는 격려와 응원이 넘쳐나는 선술집에서도.
자의로 타의로 흘러나오는 노래에 남들에게 티 한 번 안 내고 열심히 지나온 세월 한 구석을 골몰하는 데에, 꽤 많은 우리가 열심이라는 것이, 인생은 혼자여도 감정엔 혼자가 아니라는 뜻인 것만 같아 나는 한 번씩, 피식 웃는다.
- 실례합니다. 제가 위와 같은 이유로 블라블라, 지금 듣고 계신 음악이 궁금해서요. 혹시 어떤 노래 들으시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물었을 때,
- 영어강의 듣는데요? 라고 하면 어떨까.
아 전에 만났던 분이 외국인이구나. 아 외국에서 사셨던 시절이 그리우신가보다. 아 외국에서의 시간 갖기를 바라시는군요?…
아… 이어폰 꽂았다고 모두가 다 음악을 듣는 건 아니었네요!!!
오케이 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