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한테나 차카게 살자

by 씀씀


나쁘게 산 기억은 없으니 안 착했던 것은 아니다. 허나 원망, 상처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는 잘못 측면에서 본다면 명백한 죄인. 그 같은 잘못들은 상대적인 것이고 태생적으로 누구든 불가피하므로, 나 역시 모든 날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진 않았다.


그것 말곤 글쎄. 1인칭으로 살면서 내 진심과 고민에 팔이 굽은 걸 두고는 누구도, 거 참 못 됐고 나쁜 작자일세! 손가락질 못 할 터이니, 그렇다면 나는 그런대로 잘. 남에게 폐 끼치거나 누 되는 일 없이, 착하고 좋은 사람 비슷하게는 살았던 것 같고. 이는 후하거나 야박하거나 그 어디쯤일, 나 살아옴에 대한 평가 되겠다.


난리통인 세상에서 위와 같은 자취가 가능했던 데엔 기질과 성향 덕이 컸다. 뻔뻔하다 싶은 말이지만, 타고난 기질이 선한 데다, 정이 많고 받기보다 주기를 좋아하는 애다. 거기다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두 개 믹스인지. 자타 말하길 남보다 발달한 감각에 감수성은 피곤할 정도로 뛰어나고, 예민함 민감도도 그에 상응하며, 눈치? 말해 뭐해 싶게 빠르다.


가진 게 이러하니 민폐를 끼칠 수 없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건넨 손에 내 실익은 상관 없었지만, 남이 내게 내민 손은 이게 받아도 되는 호의인지 넘으면 안 되는 선인지, 그것을 분간함에 있어 제법 신속정확했으니까.


삼신할매가 폐 끼치지 않도록 점지해 준 애인양, 가진 재주는 더 있었으니. 상황판단력에 스토리텔링 실력까지. 나열한 걸로만 보면 사는 데 득이면 득이 됐지, 해는 안 될 내용들 같지만 전혀. 저것들에 마지막 하나까지 더해졌으니, 내 인생 안 고달파질 재간이 없었다.


나 사는 걸 고달프게한 그 화룡점정, 마지막 하나는. 나는 하필 입이 무거웠다. 처음엔 몰랐으나 이게 나 사는 일에 있어 큰 문제가 됐다. 내가 아는 것을 밖으로 말 안 하니, 이 기질과 성향, 성격들이 내 안에서 나만 공격하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보통의 무던한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거나 느낄 필요 없는 아주 사소한 이상 기류나, 왜 하는지 이유도 모를 만큼의 하찮은 거짓말(예를 들면 돈가스를 먹어놓고는 순두부찌개를 먹었다고 하는 식)부터,


소곤소곤하는 걸 보면 민감한 정보인 것 같은데. 그럼 나가서 말하던가. 사람 있는 데서 저들끼리만 수군수군. 저기 나도 알기 싫거든요? 불편하고 불쾌해 자릴 비웠다 와도 계속 그 얘기. 헌데 무슨 민감한 정보를 그리 허술하게 취급하는지.


보고 있자니 내겐 구멍이 너무 많아 이건 알아차리라는 신호인가? 헛갈리게 하는 어설픈 첩보전에 이르기까지. 내 감각계를 건드리는 불편한 진실들이 너무 많고 잦다 보니, 남들은 알 리 없고 나 혼자만 아는 기 빨리는 이벤트들에 에너지는 언제나 금세 동 나기 일쑤.


누군가는 세상의 중심에서 외치는 게 사랑이라면, 나는 세상의 중심에서 '성선설'을 외칠 인간. 허나 위와 같은 과민성 신경계와. 이를 수없이 자극해 오는 타인들을 보고 듣고 겪기까지 하자니,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것인가? 하는 질문에 수없이 부딪히는 바.


내가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면면을 알게 됨으로써 야기되는 불편함. 180도 다른 앞과 뒤를 눈치채면서 마주하는 괴로움. 이런 게 사회생활인 거면, 그 사 자는 혹시 죽을 사자? 의심하게 되는 씁쓸함이 나를 좀먹는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니 마침내 들어주었다.


옛날에 한 번은 책을 읽고 있는데 팀 선배가 무슨 책이냐 묻더니, 표지를 보곤 "그래, 넌 그거 좀 읽어야겠더라 “ 하곤 홀연히 돌아서준 적이 있었다. 그 책, 미움받을 용기였다.


이 대환장파티를 여직 어찌 버텼을까. 예민해, 눈치 빨라, 마음 약해. 사람 잘 믿어. 입 무거워. 눈치 잘 봐. 나는 진짜 이중적인 인간이었다. 쉽게 안 나빠놓고 남한테는. 그렇게 나빴다 나한테는.


이 글은 출정식이다. 이제 이 세월 동안 못 해 본 그것 좀 해보려 한다. 착해지기. 남 말고 나한테. 덜 눈치 보고, 적당히 박애주의. 다량보유한 정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인류애란 갖고 있어 봤자 손해 보는 것이니 수지타산도 맞춰 보고.


남은 마음 준 적 없는데 내가 줬다고 엄한 배신감 느끼지 말고, 일하러 온 회사에서 만난 사람한테 쓸데없이 정 주었다가 쓸쓸히 상실감만 맛보지 말고. 어차피 회사든 밖이든, 가족 빼고는 필요에 의해 연도 맺고 척도 지는 것이니. 지레 외로워하지도 함부로 든든해하지도 말면서. 나한테 착해지리라. 나로부터 나를 지키리라.


모질었던 만큼 열심히 노력해서 맘에 패인 주름을 비단결처럼 곱게, 쫙쫙 펴지게 해 줘야지.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반백년도 안 산 게 마음에 주름이 너무 많다.


keyword
이전 12화나의 유토피아, 정신과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