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름 미식가에 대식가이지만, 회사에서만큼은 유구한 전통과 역사에 빛나는 ’안 먹는 애'다.
과장 없이 거의 매일을 익일에 대장 내시경을 앞둔 애처럼 빈 속으로 일반 근무 9시간부터, 당번 근무 15시간까지 하고 있으니. 월급 명세서에 구내식당 식비 차감 내역 찍혔던 게 몇 년 전이더라.
이런 회사 생활로 미루어 보면, 먹는 일에 흥미 없고 입 짧고 세상 그런 소식가가 없다고 회자될 수 있을 거다. 또 그러니 한 달 지출 중 식비는 뭐. 굉장히 미미한 정도겠거니 생각될 수 있겠지.
허나 진실은 늘 뒤통수를 때리는 법. 내 지출은 식비가 넘버 원이고. 냉장고엔 먹을 게 그득. 배달앱 브이아이피에, 혼자 산 세월이 세월인지라 음식도 곧잘 하며,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섭취 관련 분야는 야식, 과식, 폭식이고 뭐 그렇달까.
바이오리듬 기복 쩌는 게 자랑도 아니고 뭔 대단한 장기라고 떠들까 싶은데. 그 변은 그렇다. 근래 연속으로 퇴근길마다 의식처럼 브런치에 도장을 찍었더니, 오늘도 퇴근하는 이 시점에 그래줘야 할 것 같아 부랴부랴 오늘 일 중에 쓸 만한 글감을 뒤적뒤적하여 간신히 들렸기 때문. 찾은 글감이 이거의 연장선이기 때문.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섭식 관련 안 좋은 건 다 하고 있는 것 같은 나는, 아주 그 제랄도 골고루 하고 있으니. 이제 등장하려는 것은 불면증에서 기인하였고 생존을 위해 시작됐으며, 회사에서 그나마 먹는 식품의 한 종류인 것이니, 바로 카페인 되시겠다.
이런 흐름이면 혹자는 그럴 수 있다. 카페인을 먹으니 잠이 안 오는 게 아니냐고. 아닙니다! 그거슨 절대 아님을 명확히 주장할 수 있는바. 허나 오늘 하려던 얘기는 그게 주가 아니므로 스킵하고, 본론으로 가겠다.
불면증 극말기인만큼, 나름 카페인 섭취 매뉴얼이 있어, 되도록 그것을 고수하고 있는데.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면, 이게 나이는 38 다르고 39 다르다고. 올나잇 한 다음 날도 작년의 그것과 다르니.
사무실에 좀비로 체크인해 좀비로 체크아웃하기까지 짧아야 9시간. 몰골은 사람이 아니어도 사람으로서의 할 책임과 도리를 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카페인 수혈 밖에는.
그런데, 남들 먹으면 금세 쓰러진다는 잠드는 약도 그 약효가 안 드는 이 몸이, 고작 카페인에 두 눈 번쩍 뜨일 리 있을까. 그럼에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으니, 플라시보 효과에라도 기대려, 카페인 수혈에 성심을 기울인 결과? 아니면 나이가 든 결과?
지금은 위가 너무 약해져 박카스 한 모금 먹으면 속이 아프고 더부룩하니. 레드불 핫식스는 그림의 떡인 상태인데. 아니 글쎄 오늘. 회사 언니가 이걸 주시는 게 아닌가.
점심시간 종로에 갔다 판촉 행사로 받았다며. 받은 사람은 나지만 마시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너뿐이라며.
무엇에서건 누군가 내 생각이 나 마음 써줬다는 건 언제나 감사하고 따뜻한 일. 감동의 눈물 가능한 부분이나 울면 더 피곤해지는 타입이라 속으로 삼키는데,
어쩐지 기시감이 든다. 그렇다. 사실 이렇게 받는 몬스터가 초면이 아니었으니. 몇 달 전에는 광화문에 갔던 다른 언니가, 검은색이었나? 그 몬스터 두 캔을 행사에서 받아와 주셨더랬다. 1인 1캔 나눠 주는데 두 캔을 받아왔다며. 회사에 이런 거 안 마시면 하루하루가 위태로운 애 있으니 사람 살린다 생각하시고 한 캔만 더 달라 사정하여 받았다며 말이다.
보통, 사람을 아니 숙녀를 떠올릴 때 봄꽃이 예뻐 네가 생각났어. 햇살이 좋아 네 생각이 나더라. 하기 마련인데. 나는 위 두 언니를 비롯 대다수의 과 사람들에게 고카페인 음료, 몬스터 같은 것을 마주했을 때 떠올려지는 사람이구나.
씁쓸하냐고? 전혀. 그게 어디고 아무렴 어떤가. 좋다 좋아. 내 부단히 노력하여, 고카페인 음료하면 떠오르는 애에서 고카페인 음료처럼 그 누구들을 각성시키는 애로 발상과 연상의 전환을 이뤄내고 말라니까!
지금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안 봐도 나는 내일도 좀비겠다. 참 사람이 일관돼. 언니가 준 저 색도 예쁜 몬스터는 내일 나에게 회사 웰컴 드링크가 되게 생겼다. 생각만 해도 벌써 각성되는 느낌. 짜릿해. 물론 내일의 각성은 카페인 때문이 아니라 날 위해 굳이 한 캔 받아 챙겨다 준 언니 마음의 스윗함으로 되는 것이다.
언니 마음에 대한 답례로, 나는 내일 있는 힘을 다해 피곤할 생각이다. 야 핑크몬스터 너! 내가 널 제일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몬스터가 되게 해 줄게! 딱 기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