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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숙녀 Feb 27. 2024

숙녀의 버킷리스트. 정신과에 가다 10


나는 회사 점심시간에 밥을 먹지 않는다. 잠을 자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운동이나 산책, 자기 계발을 하냐? 그럴 리 없다.


점심시간은 내게 점'쉼'시간.

이유는 명료하다.


1. 밥이 보약? 잠이 보약!

나는 불면증 말기.  아침 좀비로 회사에 골인하는 마당에 밥이 대수일까. 잠을 선택했다고 해서 밤과 달라질 건 없다. 점심 역시 잠에게 까이긴 매한가지 때문. 쪽잠은 커녕 가수면 문지기에게 문전박대 신세지만, 내겐 허기에 시달리는 위보 밤새 멘탈을 보듬는  우선이다.


2. 내가 가오가 없냐, 사람이 없지

밥 먹을 사람이 없다. 꽤 친절하신지도 모르겠다. 남들에겐 흔하디 흔한 동기 한 명  것을 시그널로, 입사날부터 알려주신  아닐런지. 보았느냐? 알았느냐? 그럼 이제 겪어야 할 지어니. 너는 이 회사에서 외롭고 고독하리라.


3. 왼손이 한 일은 오른손이 알아도 되지만,

나의 출근은 다른 과에서 굳이 알 필요 없다.

우리 사무실은 나름 구세권. 도보 2분 거리에 맛, 양, 값까지 훌륭한 구내식당이 있지만 안 간지 오래. 남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없다는 이 회사 밖에서 통용되는 말 은 나는, 굳이 나를 보이고 알리고 싶지 않다.




이렇게 졸리고 외롭고 피곤한, 점쉼시간로 매일을 산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배고프다.


하루 걸러 현타가 와,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나는 이게 이럴 일인가 싶고, 눈물 젖은 빵이라도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한다. 


그런데 결국엔 그것도 어느 정도 인류애가 분비되고 기력이 존재할 때에나 가능한 식욕. 


버텨보겠다고 한 평 남짓한 내 자리에서 혼자 뭐를 ! 생각한다는 것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느 날엔 참 궁상 맞어느 날엔 자기 연민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건 궁상도 연민도 아닌, 그저 당연한 허기고 식욕인데도, 그것들이 꼭 내 나약함인 것만 같은 이상증세를 꾸준히 앓다 보면, 회사에 와서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은  밖에 지 않는, 나와 같은 그런 때가 온다.


눈 여겨 볼 건 그다음. 해야 할 그 '' 마저 없는 때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월급루팡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날문제가 커진다. 붙일 사람, 기다리는 점심시간도 없는데 설상가상, 해야 할 일까지 없어진 직장이 돼버린 것이니 말이다.


그 때부 누가 찾고 누가 반기기에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이곳에서 내 존재 이유를 나조차 못 찾겠괴로움에 시달린다. 어쩌면 한없이 어리광스우나 또 한편으론 마냥 유치하지만은 않은, 제법 큰 어른만이 알 수 있는 좌절감에, 다시 또 무기력해진다.




미쳐도 곱게 미치랬는데. 다른 이들은 가장 생기 넘치는 점심마다 나는 혼자 저러고 돌아이처럼, 끝모를 고뇌 속으로 매몰되는 것은 아니다.


내게도 물론(?)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소비하는 점심시간 있음이다. 1년에 출근하는 날이 240일이라 친다면 그중 40일 정 그리 쓰인달까. 밥도 먹고 볼일도 보, 사람답고 직장인스러운 심시간으로. 


그날이 그랬다. 1부터 9까지를 돌고 돌아 이렇게 마침내 도달한. 작고 소중한 나의 사십일에 들어가는, 지난 여름의 그 하루.


그날 점심은 전 직장서 만나 십 년 넘게 절친한 구 직장 동료 현 사회 동료, A 쌤과 자리였.


보통 A 쌤과의 점심회동은 1. 그가 우리 회사 근처 출장을 왔는데 2. 운 좋게 내가 좀비 끝판왕이 아니면 이뤄졌는데,


마침 아니, 지금에 와선 하필이 맞겠다. 하필 그날 반인반좀이모처럼 A 쌤과의 점심 성사던 것.


하여 간만에 사무실 지박령을 로그아웃 하는 내게, 오래 봐 온 동료가 어쩐 일로 나가냐 묻기에 나 답하길, A 쌤 출장 왔대서 갔다 오겠다. 


잠깐! 굳이 저렇게까지 TMI로 답을?  할 수 있을 텐데, 부연이 꼭 필요하다.

"A 쌤 출장 왔대서 갔다 올게요"를 나는 과 동료에게 거리낌 없이 말하고 상대는 이상하게 듣지 않는다는 것. 이는 나를 어느 정도 만나고 겪어온 이라면 A 쌤을 적어도 한 번은 들었고 알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내 인간관계에서 필수 인물임을 나타낸다.


단박에 알아들은 동료게, 맛있게 먹고도 아닌 '다 먹고' 오라는 부를 듣고 나간, 나 역시도 오늘은 몇 숟가락이라도  오자며 비장하게 나선 점심길.


내가 마주한 것은 맛깔난 수다요, 내가 먹은 것은 군침도는 한상차림었으니!가 아니었으니...




40여 일 점심시간엔 매뉴얼이 있다.

내 사적 지인과 식사 경우, 회사에서 도보로 가능한 식당은 배제. 조건 굳이 차로 가야  하는 인근 동네서만 가능 것인데, 이유야 이쯤 되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그. 회사 사람(일부)과 식당에서 마주할까 봐이다.


겨우 한 시간짜리 점심에 서울 한복판에서 차로 옆동네까지 이동해 주차와 식사, 대화를 마치고 다시 회사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 그럼에도 나와, 죄 없는 나의 지인들은 나를 지인으로 뒀다는 까닭에 그 고행을 묵묵히 행해주는 바. 렇다면 메뉴라도 상대가 좋아하는 것으로 모시는 것이  최소한의 양심.


그날 메뉴가 낙지요리였던 것 역시, 해물 킬러인 A 쌤의 취향을 고려한 나의 매너였지 자충수 아니었거늘. 그 바람에 바둑은 둘 줄도 모르는 내가 점심 내내, 끝나지도 않은 식사를 프로 기사처럼 복기해야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동통통 한껏 오른 다리살에, 블랙홀마냥 양념을 한껏 빨아 머금은 빨판은 또 어찌나 도드라져 뽐을 내는지, 제법 먹음직스러운 자태.


근황 토크도 워밍업은 마쳤겠다, 그렇담 때는 바야흐로 위에  들한.낙지매끈한 콩나물을 올려 젓가락으로 록 골고루  뒤, 가득 담으면  그 때.


뜨라는 밥 대신, 서인지 자꾸만 쳐다보고 싶 밥 대신 치켜 뜬 눈에 들어온 누군 그만,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 했다.


물통을 들고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오는 한 시람. 


빅모씨의 단짝이었다.


나 이 앞에 무슨 얘기했지?
회사 얘기한 거 없나?
내 얘긴? 욕 같은 건 안 했나? 개드립은?



... 모처럼 만났어도 풀 회포랄 게 없는 사이. 그럼에도 점심에 다 나오고 어제는 좀 잤나 보다, 회사 괜찮냐 굳이 는 걱정을 알기에 "괜찮긴. 여기 너무 힘든데, 일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미치겠어요"근황이랍시고 전해야만 했을까 나 새끼...


이건 필시 현대판 운수 좋은 날이리라.

낙지를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 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컨디션이 좋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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