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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Dec 17. 2021

엄마의 엄마와 엄마




“다 필요없다. 내가 살아보니 다 쓸모없더라. 니는 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할머니가 사신 이야기를 들었다. 종갓집 종손에게 시집을 가셨다는 할머니는 위로 내리 딸만 셋을 나으셨다. 엄마는 그 중 첫째딸이었다. ‘아이구 저기 고추만 달고 나왔으면’이란 말을 엄마는 지겹도록 들었다고 한다. ‘어렸을때도 뭘 알아서 그랬는가 그말이 와그래 듣끼 싫었는지. 아이구’ 엄마는 말을 하면서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하나를 낳고 둘을 낳고도 모자라 셋까지 딸을 낳고나니 할머니는 점점 더 미신과 집안 어른들이 말하는 관습에 매달리셨다고 한다. ‘아 놓고 씻은 물을 뭐 어째야지 된다고 하고. 아이고 말도 마라. 엄마는 평생 제대로 맘놓고 살지를 못했지. 지켜야될끼 와그래 많은지’ 아들을 낳기 위한 모든 법들은 할머니를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살게 했다. 할머니는 당신을 스스로 죄인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갇혀산 이래  할머니는 아래로 아들을 둘을 더 낳으셨다. 그걸로 끝이었으면 좋았을껄. 할머니는 아들을 낳고 난 다음에는 남편과 자식의 건강과 미래를 위해 다시 또 불안불안하고 힘든 미신과 관습의 굴레 속에 들어가셨다.


그렇게 애를 썼는데 할머니의 아들들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자식들의 결혼생활도, 손자들도, 불안 불안. 할머니는 마지막까지도 걱정을 안고 가셨을까. 요양원에 계시다 수년전 돌아가신 할머니는 엄마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셨다고 한다. 큰며느리에게도 전해달라며. 씰데없는 미신들, 나이든 사람들이 지키라 카는거 하나도 믿지 말라며 다 씨잘데기 없다고. 당신은 그거 다 지키며 사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엄마에게 그말을 전하며 큰며느리에게도 말해주라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셨다고 한다.


할머니의 유언 덕분일까. 고추하나 달고 나오지 그랬냐고 쯧쯧대어 치를 떨게 만들었던 어른들 덕분일까. 엄마는 몇년전 제사를 없앴다. 소식을 들었을 때는 진즉 없애야했다싶어 그냥 그랬구나 별생각없이 들었는데 엄마의 지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별생각없이 들어서는 안되는 선택이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가 아니라 엄마에게도 듣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가 말이다. 우리들 키우며 지낸 이야기도 엄마의 버전은 제대로 아는게 없다. 같은 사건도 엄마의 버전은 달랐지.


추석 연휴에 이렇게 맥없이 누워 있으니 답답하다. 귀한 시간이 지워져만 가는것 같아 많이 속상하고 아쉽다. 머리 속에는 이 생각 저 생각 흘러만 가고, 못하니 하고 싶은 것만 많아진다. 엄마랑 할일없이 수다도 떨어야 하는데 싶어서. 그래서였을까 어제 오늘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었다. 생전에 꽂꽂이 앉아 세배 받으시던 모습, 용돈이며 음식 챙겨주시던 일, 한참 정정하실땐 곱게 한복을 차려 입으시고 집에 놀러 오셨던 일, 요양원에 누워 계셨던때, 마지막 모습까지. 할머니 버전의 이야기를,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난 할머니를 알지 못한거지. 엄마에게는 그러지 말아야지. 해마다 때마다 생각한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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